기초과학의 미래를 꿈꾸다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 단장 명경재 UNIST 특훈 교수
DNA 복구 과정 밝혀 암과 노화 수수께끼 푼다"2월 1일부로 IBS 연구단의 이름을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Center for Genomic Integrity)'으로 바꿉니다. 유전체 항상성이란 유전체가 대부분은 나쁜 쪽으로 변하는데, 그렇게 변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메커니즘이죠."
명경재 UNIST 생명과학부 특훈 교수는 지난해 12월 15일 IBS '유전체 보전 연구단'의 단장으로 선정됐다. 명 단장은 2002년 미국 국립보건원(NIH) 인간유전체연구소(NHGRI) 연구원으로 들어가 2009년부터 종신연구원으로 활동해 왔다.
DNA 복구(repair)와 게놈 안정성 연구 분야의 석학으로 알려져 있는 명 단장을 UNIST 내 IBS 연구단에서 만나 그동안의 연구이력과 연구단의 활동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암, 노화, 그리고 진화의 공통점
"생명의 청사진 DNA는 외부 요인뿐 아니라 복제 중에도 변합니다. 방사선(radiation), 해로운 화학물질에 노출될 때 유전체에 문제가 생기고, DNA 복제 중에도 알게 모르게 에러가 발생하는데, 세포 내에서 이런 문제나 에러를 복구해 항상성을 유지합니다. 유전체 차원에서 항상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DNA가 정상적으로 복구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복구 과정에서 잘못되면 돌연변이가 나타나고, 때로 암 같은 것이 생깁니다."
명 단장은 연구단 내에서 DNA 복제 동안 외부 환경에 의해서 DNA가 손상(damage)을 입었을 때 이를 어떻게 복구해 내고 그 유전체가 어떻게 항상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지를 연구할 계획이다. 연구단의 최종 목표는 인체의 DNA 복구 과정을 완전히 규명한 뒤 암, 노화에서부터 인류 진화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먼저 암은 외부 환경에 의해 돌연변이가 생겨 세포가 변형된 것인데, 더 이상 주변 세포로부터 컨트롤을 받지 못한다. 명 단장은 "암세포를 보면 DNA 복구 기능이 고장 나 있는 경우가 많다"며 "암세포는 유전체가 한두 개 변한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몇십 종류 변해 있다"고 말했다. DNA 복구 과정에 문제가 있으면, 더 많은 돌연변이가 생기고 쌓여 암이 된다는 뜻이다. 그는 "이 과정을 연구하게 되면 암 생성 과정뿐 아니라 암 치료 방법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포는 돌연변이가 생기게 되면, 대부분 이로 인해 죽게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노화 현상이 일어난다. 명 단장은 "조로증(早老症)이란 유전병인 워너 증후군(Werner syndrome)에 걸린 환자는 DNA 복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가 고장 났음이 밝혀졌다"며 "DNA 복구를 제대로 못하니까 노화도 빨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워너 증후군 환자는 40대에 거의 70, 80살 된 노인으로 변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최근에는 쥐에서 DNA 복구 관련 유전자가 고장 났을 때 극심한 노화 현상이 일어나는 결과가 관찰됐다"며 "NIH 내에는 DNA 복구와 노화만 연구하는 연구단이 있다"고 밝혔다.
유전체에 변화가 일어나면 대부분은 안 좋은 변화지만, 만에 하나 돌연변이가 좋은 형질을 갖기도 한다. "돌연변이가 좋은 형질을 획득해서 그것이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된다면 그게 바로 진화입니다. 박테리아, 효모 등 실험동물을 특정 환경에 두고 유전자를 약간씩 변형시키면,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가 일어나죠. 그 변화의 선택 과정에서 DNA 복구 과정이 중요한데, DNA 복구 과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에 따라 자연선택이 빨라지거나 느려진다고 합니다."
DNA 손상과 관련된 3가지 대표 성과
히로시마 원폭 사건 이후 미국 정부에서 방사선의 영향에 의한 DNA 손상에 주목했고, DNA 복구를 연구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됐다. 미국 내에 국립연구소(National Laboratory)가 로스알라모스, 버클리, 롱아일랜드 등에 설립되면서 DNA 복구에 대해 상당히 집중적인 연구가 진행됐다.
명 단장은 "최근 DNA 복구가 암, 노화, 일부 신경질환 등과 연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DNA 복구에 대한 연구 분야가 점점 확장되고 있다"며 "그리고 DNA 복구 연구는 유전체 염기서열뿐 아니라 그 주위를 싸고 있는 히스톤 단백질이 어떻게 변화되는가에까지 관심이 넓어지면서, 유전체 항상성은 히스톤에 따라 유전자가 다르게 발현되는 후성학적(epigenetical) 문제까지 관련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동물학과에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분자생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브라운대에서 분자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흥미롭게도 학부 때부터 DNA 복구에 관심을 갖고 관련 연구에 참여했다고 한다. 학부 때는 DNA 이중가닥 중 하나만 고장 날 때 이를 고치는 '뉴클레오티드 절단 복구(Nucleotide Excision Repair, NER)'를, 대학원 때는 방사선 조사나 항암제 치료 시 뚝뚝 부러지는 DNA를 수리하는 '이중가닥 파손 복구(Double Strand Break Repair)'를 연구했다.
이 분야에서 그에 대해 물어 보면, 관련 연구자들은 '총체적 염색체 재배열(Gross Chromosomal Rearrangement, GCR)', 방사선 관련 유전자인 RAD5, DNA 복제와 관련된 유전자 ATAD5라는 세 가지를 얘기한다고 한다. 명 단장이 이 세 가지와 관련된 연구성과로 이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다.
우선 명 단장은 박사후연구원 시절 지도 교수와 함께 'GCR'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는데, 이는 염색체 일부가 뚝 끊겨 옮겨가서 다른 염색체에 붙는 전좌(translocation)뿐 아니라 염색체 일부 구간이 뒤집히는 역위(inversion), 염색체 일부가 사라지는 결손(deletion)처럼 큰 단위에서 염색체상의 변형을 포괄한다. 그는 효모에서 GCR을 확립하고 세포 내 메커니즘이 어떻게 GCR을 조절하는가를 수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셀(Cell)'에 발표했다. 특히 'DNA 손상 체크포인트'가 고장 났을 때 GCR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는 효모에서까지 발견된 RAD5의 동족체(homologue)를 포유동물에서 발견해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했다. 이전에는 방사선 관련 유전자인 RAD 유전자들은 효모에서 스크린해 1번부터 60개 정도가 알려졌고, 포유동물에서도 RAD5를 제외하고 모두 발견됐었다. 그는 “포유동물에서 발견한 RAD5는 굉장히 많은 그룹에서 연구하고 있다”며 “이는 DNA 복구에 중요할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또 명 단장은 DNA 복제를 도와주는 증식세포핵항원(Proliferating Cell Nuclear Antigen, PCNA)을 DNA로부터 떨어뜨리게 하는 단백질을 암호화한 유전자 ATAD5를 포유동물에서 찾아냈다. PCNA는 DNA 복제 시 중합효소(polymerase)를 비롯한 여러 효소를 데려와 복제를 돕는데, DNA 복제가 끝나면 DNA에서 떨어진다. 그는 "ATAD5가 DNA에서 PCNA를 제대로 분리하지 못하면, 돌연변이가 많이 생겨 결국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명 단장은 그동안 네이처, 셀, PNAS 등 저명한 국제 저널에 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NIH에서는 4년마다 리뷰를 받는데, 최근 2차례 리뷰에서 모두 '최우수(outstanding)' 평가를 받았고, DNA 복구 관련 여러 학회에서 연사로 수차례 초청받았다고 한다.
NIH 종신연구원 벗어던진 이유
그는 왜 NIH 종신연구원을 벗어던지고 UNIST와 IBS로 자리를 옮겼을까. "10년간 안정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IBS의 제안이 매력적이었을 뿐 아니라 UNIST의 좋은 환경에서 많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UNIST는 최첨단 현미경장비, X선결정학 장비, 핵자기공명(NMR) 장비 등을 갖추고 있으며, 젊은 교수들의 아이디어와 의욕이 넘쳐 좋았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으면 학생들을 교육해 후학을 키우기를 원했습니다."
명 단장은 DNA 복구 연구에서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특히 NIH 내 NCATS(National Center for Advancing Translational Sciences)에서 수십만 개의 작은 화합물(compound)을 모아 희귀병 환자에게까지 혜택을 줄 수 있는 약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인데, 명 단장은 이 많은 화합물 중에서 일부가 틀림없이 DNA 손상과 관련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가능성 있는 300개를 찾아냈다. 그는 "300개 화합물이 10개 정도의 DNA 복구 메커니즘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연구하고 있다"며 "특정 화합물이 DNA 복구 메커니즘에 관여하는 단백질의 억제제(inhibitor)나 작용제(agonist)로 역할을 해 특정 복구 메커니즘을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연구단은 어떻게 조직하고 운영할까. 명 단장은 "부단장 급의 시니어 레벨 연구자 2~3명, 연구를 전담할 주니어 레벨 연구자 7~8명을 영입할 계획"이라며 "대부분의 연구자도 박사후연구원 경력이 있고 본인이 연구에만 매진하겠다는 사람으로 선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공동연구시설(core-facility)을 전담할 전문 인력도 중요하다"며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할 고가의 장비는 전문인이 다루고, 사용자를 교육해야 연구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UNIST의 다양한 장점도 십분 활용할 예정이다. "UNIST는 바이오 분야와 메디컬 분야만 있는 NIH와 달리 바이오 분야 외에도 공학, 과학 관련 연구자가 모여 있어 나노 분야, 화학 분야, 재료공학 분야, 물리 분야의 연구자와 융합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가능하다면 울산시의 병원과 연계해 신약, 새로운 진단법 개발과 관련된 응용 연구도 진행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