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를 움직이는 사람들
IBS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 서경희 연구원
과학계 '그랜드 슬램' 뒤에는 그가 있었다 연말 극장계에 영화 '인터스텔라' 열풍이 불고 있다. 수백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이 영화 덕에 연일 감독과 출연 배우들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실 영화가 흥행함에 따라 감독과 배우들이 주목받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영화가 완성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을 흘리는 스텝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런 훌륭한 영화의 탄생이 가능했을까.
과학계도 마찬가지다. 사이언스, 네이처 등에 논문이 발표되고 노벨상을 포함해 각종 과학 분야 상을 휩쓰는 연구결과에는 말할 것도 없다. 세계 3대 과학 학술지(사이언스, 셀, 네이처)에 차례로 연구 성과를 발표하며 소위 말하는 '그랜드 슬램' 달성과 '호암상' 수상에 빛나는 남홍길 IBS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장의 뒤에도 숨은 조력자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식물재배를 담당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그랜드 슬램'도 '호암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잡지사 기자가 식물 재배에 뛰어들다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의 연구에서 식물이 가장 중요한 재료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특히 '애기장대'라는 조그마한 속씨식물은 이 연구단의 핵심이다. 애기장대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으면 연구 자체가 불가능하다. 남홍길 단장의 곁에서 15년 넘게 '애기장대'의 재배를 책임져 온 이가 바로 서경희 연구원이다. 서 연구원은 독일어 전공으로 대학원까지 진학했지만, 사실 식물 재배에 대한 노하우가 전혀 없었다. 졸업 후 대구에서 한 잡지사의 기자로 활약하던 그녀는 남편의 직장 때문에 포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하지만 여기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시 포항에는 여자가 할 만한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원 강사 등을 하면서 지냈는데 어느 날 포스텍에 있던 남홍길 단장님 연구실에서 사람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죠. 그게 1999년이었습니다."
당시 남홍길 단장의 연구실은 막 발돋움을 시작하던 시기. 그래서 다양한 인력이 필요했는데 특히 식물 재배 쪽 일손이 부족했다. 대부분 학생 위주로 꾸려진 연구실이라 이왕이면 연배가 있는 사람을 원했는데, 이러한 사정을 들은, 남 단장의 부인이 직접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건너고 건너 서경희 연구원까지 추천이 들어간 것이다. 소개를 받아 연구실에 찾아갔지만, 식물 재배에 대해 전혀 경험이 없던 터라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남 단장을 직접 만난 후 그의 인품에 반해 팀에 합류하기로 했다.
그렇게 팀에 합류한 후 거짓말같이 연구실이 승승장구했고 처음의 두려움은 보람으로 변했다. 독문학을 전공하긴 했으나 학창시절 생물, 화학 교과를 좋아했던 것도 일에 큰 도움이 됐다. 포스텍에 연구실이 있던 초기에는 임평옥 교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임 교수는 서 연구원이 모르는 부분을 특별히 꼼꼼하게 설명해 줬다고 한다. 서 연구원도 당시의 경험과 배움이 지금까지 오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포스텍에 있을 때는 지금과는 다른 환경이었다. 인원 대부분이 학생이라 동생, 조카 같아 연구실의 엄마 역할까지 겸했다. 학생들은 때론 엄마 같고 때론 누나 같던 서 연구원에게 연구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위로받았다. 학생들을 돌봐주는 일은 남 단장이 그에게 직접 부탁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연구용 식물 재배는 일반 재배와는 다르다
연구용 식물을 키우는 것은 대단히 까다롭다. 일반 관상용이 아니 연구용이라 재배하는 목적부터 다르다. 일정한 성장 속도는 물론 색상, 크기까지 항상 같은 조건으로 키워야 한다. 연구에 사용되는 식물이 일정하지 않으면 결과 데이터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영양제, 물 주는 것 하나까지 전부 계산해서 키운다. 조금의 실수로 식물이 잘 못 자라면 연구에 사용할 수 없어서 굉장히 공이 들어간다.
연구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애기장대'의 경우 본래 야생초이던 것을 양식하다 보니 오히려 더 민감해졌다. 당연히 재배에 더 많이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이러한 연구용 식물 재배는 기존 문헌을 찾기 힘들어 경험을 통해 측정치를 찾는 방법밖에 없다. 서 연구원은 15년 이상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공식을 만들었다. 이제는 새로 연구단에 합류한 인원들에게 전수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현재 보통 두 달에 한 번 수확할 수 있는 애기장대는 유전자 변형으로 한 달, 6개월, 1년까지 성장하는 품종도 함께 키우고 있다. 서 연구원은 "연구용 식물은 맞춤형으로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여러 각도로 생태환경을 다양하게 만들어서 실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연구단에서 식물 재배를 함께하는 인원은 그를 포함해서 총 5명이다. 아직 포항에서 생활 중인 서 연구원은 출근 시간만 1시간 30분이 걸린다. 이런 불편함에도 연구단을 따라온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후배 양성이었다. 또한, IBS 연구단으로 선정되면서 여러 연구원이 합류하다 보니 온실도 넓어져 그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현재 기르고 있는 식물은 애기장대가 90% 이상이며 담배, 벼 등도 재배를 시작했다.
"IBS 연구단이 되고 나니 연구원들도 많아져서 식물 양이 거의 2~3배는 늘었습니다. 다들 의욕적인 분들이다 보니 부수적인 요구사항도 많아졌죠. 그래서 지금은 완벽한 온실 환경과 가장 좋은 식물을 제공하려는 전문적인 마음가짐이 생겼습니다. 항상 긴장하고 있죠."
보람 있는 연구단 생활. 하지만 이것만큼은
후배 양성이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남홍길 단장과 인연을 이어주는 다른 원동력도 분명 있을 것 같다. 서 연구원은 그 첫 번째로 보람을 꼽았다.
"솔직히 급여만 생각한다면 이렇게 오래 함께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저 단장님과 실험실이 계속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는 것이 매우 좋았습니다. 단장님을 포함한 연구진들이 제가 하는 일을 바탕으로 결과를 딱딱 보여주니 보람이 넘쳤죠."
거기다 남 단장의 끊임없는 격려와 인정이 역경을 이기는 데 큰 도움을 줬다. 남 단장은 "연구의 가장 기본인 식물이 올바르게 성장하지 않으면 결과를 낼 수 없다"면서 자긍심을 심어 줬다. 말뿐이 아니다. 올 남 단장의 호암상 수상식 때는 서 연구원을 직접 초대해 기쁨을 함께했다.
"호암상 후보자 서류를 넣고 난 다음, 발표시점이 되자 제가 더 흥분됐었습니다. 거기다 직접 시상식 자리에 함께 있을 수 있다니요. 너무 큰 영광이었죠. 작은 부분이지만 단장님의 연구에 일조해서 영광스런 자리에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는 자체만으로 아주 기뻤습니다.
또한, 단장의 권위적이지 않고 누구라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친화력도 긴 시간 함께할 수 있었던 힘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단장과 격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는 뜻. 서 연구원은 남 단장의 인문학적 소양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IBS 연구단에 대한 소속감이 부족한 것도 그중 하나다. 서 연구원은 밖에서 DGIST 소속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아직은 IBS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본원에서 소속감을 높일 수 있도록 프로그램 개발 등에 신경 써 줬으면 하는 바람도 밝혔다.
특히, 서 연구원과 같은 연구 지원 업무를 맡은 단원들의 직군이 뚜렷하지 않은 것에도 아쉬움을 내비쳤다. 명함에 연구원이라 표시되어 있으나 전문 연구직도 아니고 행정원이나 기술직이라고 하기에는 업무가 너무 상이하다. 행정원이나 기술직에는 일반, 선임 등의 체계가 있으나 서 연구원 같은 업무에는 아직 적용되지 않는다. 연구단에 꼭 필요한 업무를 하는 만큼 제대로 된 평가와 직급을 원하는 것이 큰 욕심은 아닐 것이다. 서 연구원은 "'언제까지 일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소 있는 듯하다"며 "소속감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했다.
어찌 됐건 서 연구원은 IBS가 계속 성장해서 자신이 퇴직하기 전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물론 그게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에서 나오면 더 좋겠다는 말을 빼먹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연구용 애기장대 재배에 대해 지침서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체계적으로 연구용 식물재배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그의 다년간의 경험과 노력이 더 좋은 연구 결과로 성장해, 다음엔 그녀가 노벨상 시상식에 함께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