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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두 가지 지도, 정원과 도시
1000억은 큰 수다. 우리은하 안에 있는 별의 숫자가 대략 그 정도다. 그런데 인간은 모두 머릿속에 이 큰 수를 품고 있다. 바로 뇌 안에 들어 있는 신경세포의 수다.
하지만 뇌에서 더 중요한 것은 신경세포가 아니가 이들 사이의 연결(시냅스)이다. 대뇌의 가장 바깥 조직인 신피질에 있는 200억 개의 신경세포는 각각 평균 7000개씩의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되어 있다. 대뇌 전체로 보면 약 150조 개의 시냅스가 있다.
1000억 개의 별이 있는 우리은하를 한눈에 보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별 자체가 아니라, 별과 별을 잇는 150조 개의 미세한 끈이 주인공이라면 더더욱 난해해진다.
뇌의 지도를 그려라!
뇌지도는 이런 뇌를 좀더 제대로 항해하도록 도와줄 획기적인 도구다. 뇌지도를 만드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 아이디어가 있다. 큰 곳에서 시작해 자세히 들어가는 방법과, 작은 곳에서 시작해 큰 지도를 만드는 방법이다.
구글지도를 보자. 세계지도가 보일 것이다. 확대하면 아시아, 한반도 순으로 나타나고, 잠시 뒤에는 여러분이 사는 동네까지 볼 수 있다. 조금만 더 확대하면 집의 형태나 마당의 모양까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원을 장식한 꽃의 종류까지 확인할 수 있을까. 아직은 한계가 있다. 언젠가는 극복될 한계지만.
도시계획가라면 위성지도만으로 충분하다. 정원사는 다르다. 세계지도나 한반도, 도시의 도로 구조보다는 마당이 궁금한데, 위성으로는 마당 안쪽을 볼 수 없다. 대안은 직접 가보는 것이다. 가서 마당의 크기를 측량하고 꽃의 종류를 기록한다. 지나는 사람의 동선을 관찰하고, 필요하면 직접 대화도 나눈다.
정원사의 방법은 느리고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하지만 궁금한 정보를 더 확실히 얻을 수도 있고, 때로는 유일한 방법일 때도 있다. 도시계획가의 인공위성 지도와 정원사의 마당 지도 중 어느 것이 더 낫다고는 말할 수 없다. 둘은 각각 쓰임이 다를 뿐이다.
크게 보기: 영역과 변화
뇌지도도 비슷하다. 뇌라는 하나의 대상을 놓고 지도를 그리기 위해 도시계획가와 정원사가 출동했다. 뇌의 도시계획가가 주로 사용하는 것은 첨단 영상장비다. 약 20년 사이 뇌과학 연구의 상징이 된 fMRI(기능자기공명영상)와 PET(양전자방출단층사진), MRI의 특수한 변형인 DTI(확산텐서영상)가 대표적이다. 영상장비의 단점은 빨라야 초 단위 간격으로만 측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진처럼 한 순간의 뇌 활성을 측정할 수는 있지만, 변화는 잴 수 없다. 또 해상도(사물을 구분해 보는 능력)가 높지 않아 자세히 보는 데 한계가 있다. fMRI와 PET은 약 2~4mm 정도의 뇌 영역을 구분할 수 있다. 가장 성능이 뛰어난 MRI는 이보다 약간 나은 1mm 정도를 구분할 수 있다.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은 뇌파(EEG)와 뇌자도(MEG) 등 전자기 신호 분석으로 보완할 수 있다. 해상도는 계속해서 기기의 성능을 높여 해결하고 있다.
최근 각광받는 분야로는 '그래프 이론'이 있다. 요즘 유행하는 '네트워크 과학'의 수학 버전으로, 점과 점 사이를 연결하는 방법에 대한 이론이다. 네트워크 이론에서는 네트워크를 점과 선, 노드와 링크로 나누어서 각 노드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연결이 집중되는 특정 노드는 무엇인지 찾아내고 네트워크의 특성을 분석한다. 이런 '선긋기 놀이'는 뇌 안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놀랄 일은 아니다. 뇌의 본질이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아니라, 이들이 만드는 150조 개의 연결, 즉 시냅스이기 때문이다.
뇌 기능 연구에서 '선긋기'에 주목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뇌는 특정 영역이 특정 기능을 도맡아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뇌의 일부가 망가져도 다른 영역이 그 일을 대체하곤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뇌 가소성'이라는 성질이다. 이는 특정 영역이 망가져도 특별히 많은 링크를 보유하는 '허브'를 통하면 그 기능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뇌과학자들도 이런 영역별 연결성에 주목하고 있다. '휴먼커넥톰프로젝트'다. 2009년부터 5년 동안 미국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3850만 달러(약 432억 원)의 예산을 받아 진행 중인데, 뇌의 기능적, 해부학적 연결성을 함께 파헤치는 게 목적이다.
원래 커넥톰은 신경신호가 지나는 '길'을 모은, 일종의 뇌 네트워크 지도다. 1986년 과학자들은 예쁜꼬마선충의 뇌에 있는 302개의 신경세포를 현미경으로 관찰해 그 안에 있는 모든 시냅스(7000개 이상)를 찾고 이를 뇌지도로 만들었다. 휴먼커넥톰프로젝트는 이를 확장해 사람의 뇌 네트워크를 찾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세포를 하나하나 연결해 추적하는 게 아니라, 뇌의 영역간 네트워크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기능적 네트워크).
이 연구는 두 개의 연구 그룹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300쌍의 쌍둥이와 그 형제 1200명의 뇌를 fMRI, 뇌자도, 확산MRI 등 다양한 장비로 관찰해 유전자와 함께 비교하는 워싱턴대-미네소타대 연구팀이 있다. 두 번째인 하버드대, UCLA, 메사추세츠병원 연구팀은 이런 영상 기기의 성능을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구 결과는 알츠하이머, 자폐, 조현병 등 뇌질환을 고치는 데 활용할 예정이다.
세밀하게 보기: 시냅스의 골목길
뇌의 정원사는 대상과 가까운 시각으로 본다. 그래서 미세한 세포와 세포 사이의 연결(시냅스)까지 추적할 수 있다. 여기에는 영상장비보다는 생물학적인 방법을 이용한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엠그래스프(mGRASP)'라는 기술이다. 녹색형광단백질(GFP)로 뇌세포의 연결, 즉 시냅스를 찾은 뒤 광학현미경으로 추적하는 기술로, GFP 분자를 두 부분으로 나눈 뒤 서로 가까워지면 마치 스위치가 켜지듯 형광을 내도록 조작하여 이들이 시냅스의 양 쪽 끝에서 빛을 내는 것을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방법이다.
광학기술을 이용해 시냅스를 추적하는 기술에는 그밖에도 신경세포에 다양한 형광색소를 주입한 뒤 무작위로 붙여 개별 신경세포를 확인하는 '브레인보우' 기술(결과 영상을 보면 세포 하나하나가 각각 빛나 알록달록한 무지개 빛으로 보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과 '투명뇌' 기술, 그리고 소수지만 광유전학 기술 등이 뇌지도를 그리기 위해 경합하고 있다.
시냅스를 연구하는 기술과, 뇌의 전체적인 '영역'과 기능 변화를 보는 기술은 전혀 다르다. 신경섬유의 길이는 밀리미터나 센티미터 단위로 길지만, 굵기는 나노미터나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매우 가늘다. 결국 나노미터부터 센티미터까지 함께 연구해야 하지만 (해상도가 mm 수준인) 현재의 MRI로는 불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반대로 '도시계획가'들은 세포 사이의 연결을 추적하는 '정원사'의 기법이 아직 뇌 전체의 영역을 거시적으로 연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환자를 보면 (임상적으로는) 전혀 다른데, 분자나 세포 수준에서 보면 비슷해진다. 세포 수준에서는 (연구가 쌓여) 이해도가 높아졌지만, 아직은 임상과의 연결 고리가 느슨한 것이다.
그래도 뇌지도 연구자들은 꿈을 버리지 않는다. 만약 정원 지도와 위성지도를 합칠 수 있다면, 지구를 처음 보는 외계인에게 "지구란 바로 이런 모습이다"라고 한번에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뇌지도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 전에 두 지도를 각각 완성하는 게 먼저다. 그것만으로도 뇌는 무한한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