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를 움직이는 사람들
IBS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 연구단 김경환 연구원
즐기다 보니 우수연구원 됐다논어(論語)의 옹야편(雍也篇)에 보면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라는 말은 여기서 파생됐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학문을 즐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IBS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 연구단의 김경환 연구원도 그중 하나다.
공부 안 하던 중학생이 우수 논문상까지 수상
KAIST(한국과학기술원) KI 빌딩에서 만난 김경환 연구원은 대구과학고등학교를 나와 KAIST에 입학해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IBS에 합류한 수재다. 재학시절 우수논문상을 받았고 IBS 합류 1년 만인 2014년에 우수연구원상까지 받았으니 누가 봐도 학창시절부터 최상위에만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대구에 있는 대곡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과학고에 들어가기에 빠듯했던 약간 우수한 학생일 뿐이었다. 한때는 반 석차 10위권을 맴도는 그저 그런 학생인 시절도 있었다.
"중학생 때는 정말 공부를 안 했습니다. 노는 걸 지나치게 좋아했죠. 다만, 과학 관련 성적이 다른 과목보다 잘 나왔을 뿐입니다. 재미있었거든요."
재미있게 공부를 하다 보니 과학경시대회 출전해 좋은 성과를 냈다. 덕분에 어렵게 과학고 진학에 성공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에 비해 성적이 좋지 않다 보니 담임선생님의 걱정도 많았다고. 하지만 김 연구원은 오히려 과학고에 들어가자 물 만난 고기가 된 듯했다. 원래 공부에 관심 없던 학생이었지만 좋아하는 과학을 맘껏 하게 되자 성적도 크게 상승했다. 화학 올림피아드(KChO) 에서는 대상까지 받았다.
고등학교에서 과학의 매력을 한껏 느낀 김 연구원은 연구를 계속하고 싶었다. 주변 친구들은 과학계에서 벗어나 의대 등으로 진로를 바꾸기도 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국제 올림피아드 도전을 위해 독학으로 관련 분야를 계속 공부했다. 어느 날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것이 대학에서 할 공부를 미리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왕 공부할 것이라면 대학에서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국제 올림피아드 도전을 포기하고 2학년을 마치고 곧바로 KAIST에 진학했다.
"연구를 계속하겠다는 생각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좋은 성과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아요."
힘들고 괴로우면 자신에게 보상하라
기초과학 분야에서 X선은 보통 결정상태의 분자구조를 밝히는 용도로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결정상태가 아닌 용액상태에서 분자의 구조나 변화를 구체적으로 추적하는 방법은 없었다. 김 연구원은 이 분야의 권위자인 연구단 내 이효철 그룹 리더(KAIST 교수)에게 지도를 받으며 집중적으로 연구해 성공했고, 이 내용을 정리한 논문으로 우수논문상까지 받았다. 이때의 인연으로 2013년 2월 학위를 받은 후 이 교수가 그룹 리더로 있는 IBS에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됐다. 그리고는 계속 관련 연구를 발전시켜 지난해에는 우수연구원상까지 받는 영광을 누렸다. 당연히도 김 연구원은 이러한 모든 성과가 재미있는 일을 즐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지금 좀 힘들고 괴로워도 참고 열심히 하면 좋은 날이 온다'라는 말을 믿지 않아요. 지금 하는 일이 즐거워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독서실에 앉아 참고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다만 일을 즐기는 방법을 안다고 봐야겠죠. 그런 것이 저의 최고 장점입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일단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입니다. 다만 자신에게 분명한 보상을 주는 것으로 위안으로 삼죠. 힘든 일을 마친 후에는 그만큼 본인에게 즐거움을 주는 겁니다."
아무리 과학이 즐겁다 하더라도 항상 좋은 일만 할 수는 없는 노릇. 하기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는 '자기보상'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자기보상의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김 연구원의 경우는 그냥 노는 거다. 게임을 하거나 그동안 못 봤던 드라마를 한꺼번에 몰아 보는 만행(?)을 스스럼없이 저지른다. 게임도 한 두 판하고 끝나는 종류가 아니라 오랜 시간이 투자되는 온라인 게임을 많이 해왔다. 그러한 이유로 주변인들에게 일은 안 하고 놀기만 한다는 시선을 받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그렇게 놀다가는 망한다는 소리도 많이 들어봤다. 김 연구원은 그러한 자기보상의 시간이 없었으면 연구를 즐길 수 없었을 것이며 쌓인 스트레스에 지금만큼의 성과도 낼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게임을 하면서도 연구 성과를 내면 어느 정도 인정해줄 줄 알았어요. 하지만 '게임을 할 시간에 연구를 더 했으면 더 큰 성과를 냈을 것'이라는 질책만 듣고 있죠. 하하하."
IBS 연구단의 일원으로 책임감과 부담감이 커
이효철 그룹 리더와는 8년 넘게 함께해온 사이. 덕분에 IBS 경력은 2년 정도지만 연구실 내에서는 선임급이다. 거기다 캠퍼스 연구단이다 보니 IBS 산하 연구단이 되었다고 해서 환경이 크게 바뀐 것도 없다. 연구실 분위기는 언제나 즐겁고 상하관계는 엄격하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즐겁게 연구할 수 있는 조건은 그대로다. 다만 연구비가 많아지고 인력이 늘어나니 그만큼 더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은 커졌다.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러울 수만은 없는 모양이다.
"IBS에 합류한 후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기보단 남들이 못하는 새로운 것을 해달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그것과 동시에 많은 연구비를 받았으니 그만큼 많은 실적을 내라는 압박도 함께 받고 있죠."
상반된 주문을 받으니 듣는 사람 입장에선 모순 같다. 김 연구원은 좋은 연구를 지속해서 하는 것과 많은 논문을 만들어 내는 작업은 조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성과를 내기 위해 좀 더 완성할 수 있는 연구를 급하게 정리해서 논문을 작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혹 이러한 부분이 IBS의 원래 목적과 어긋나는 부분은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때도 있죠. 하지만 즐거운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감사한 일입니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김 연구원은 좀 더 넓은 세상을 꿈꾼다. 학부 때부터 쭉 KAIST에만 있었으니 좀 더 색다른 곳을 경험해 보고자 하는 욕구도 강하다. 지금 하는 연구를 접목해서 연구할 수 있는 해외 기관이 있다면 가보고 싶은 맘도 있다. 지금과는 또 다른 새로운 부분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