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논문보다 ‘의미있는’ 연구 해야죠” “좋은 논문보다 ‘의미있는’ 연구 해야죠” 신현석 이차원 양자 헤테로구조체 연구단장 “좋은 논문보다 ‘의미있는’ 연구 해야죠” “이차원 양자 헤테로구조체가 대체 뭔가요?” 본격적인 여름이 다가오는 5월 말, 성균관대학교 N센터에서 신현석 이차원 양자 헤테로구조체 연구단장을 만났다. 신 단장은 차세대 반도체 미세공정을 위한 혁신적인 소재를 개발해 온 인물로 2024년 3월 IBS 신규 연구단인 ‘이차원 양자 헤테로구조체 연구단’을 총괄할 단장으로 선임됐다. 인터뷰의 첫 질문은 연구단의 이름을 보자마자 결정할 수 있었다. 양자 현상을 나타내는 이차원 물질을 연구 “그 질문 참 많이 받습니다(웃음). 이차원, 양자(quantum, 量子), 헤테로구조체로 나눠서 설명하면 이해하기 조금 쉬울 것 같아요. 그래핀 같은 이차원 소재를 이용하는데, 서로 다른 이차원 소재가 수직이나 수평으로 쌓여있을 때(이 때 헤테로구조체가 됨) 두 구조체가 결합된 부분에서 다양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특히 우리 연구단은 이 물질들에서 일어나는 양자 현상에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이차원 양자 헤테로구조체’ 연구단입니다.” 한두 번 받아본 질문이 아닌 듯, 신 단장은 책상 위에 놓여있는 명함 두 장을 손에 집어 들어 설명했다. 서로 다른 디자인을 가진 명함은 각각 다른 이차원 구조체를 뜻했다. 이차원 구조체는 이미 잘 알려진 물질, 그래핀(graphene)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래핀은 2004년 안드레 가임 당시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가 셀로판 테이프를 사용해 흑연에서 분리해 내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탄소 원자가 육각형 벌집 모양을 갖고 배치된 형태로 수직으로 추가 구조를 만들지 않은 채 단일 원자층으로 된 구조다. 당연히 두께도 탄소 원자 하나 정도로 얇다. 신 단장은 각 명함이 하나는 그래핀, 하나는 육방정계 질화붕소(hexagonal Boron Nitride, hBN)라며 예를 들었다. “그래핀을 시작으로 이차원 구조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이 새로운 물질이 대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연구하기 시작했죠. 그래핀 말고도 또 다른 이차원 구조체가 무엇이 있는지도 찾아 나섰습니다. 우리 연구단에서 현재 집중하고 있는 물질은 육방정계 질화붕소입니다.” 이차원 구조체는 알려진 역사 자체가 길지 않다. 그래핀과 육방정계 질화붕소 외에도 전이금속 칼코겐 화합물이나 흑린, 맥신(Mxene) 같은 물질이 이차원 구조체로 알려졌다. 이들이 가진 성질이나 이 구조체에 변화를 줬을 때 무슨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지금도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2008년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 부임하면서 처음으로 독립적인 연구실을 꾸리게 됐습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남들이 안하는 분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 그래핀을 제외한 다른 이차원 소재는 덜 주목받고 있었어요. 전이금속 칼코겐 화합물이나 육방정계 질화붕소 같은 다른 이차원 소재를 연구했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를 연구하다 보니 재미도 있고 성과도 잘 나왔답니다. 본격적으로 2012년 쯤부터 육방정계 질화붕소 연구를 시작해 2013년에 첫 논문이 나왔었죠.” 2016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공대 연구팀이 육방정계 질화붕소의 결함에서 단일 광자가 방출된다는 것을 발견한 뒤, 이차원 구조체의 양자 광원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다. 이와 함께 양자 육방정계 질화붕소의 대면적 합성법이나 물성을 연구해 온 신 단장의 연구도 함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육방정계 질화붕소를 양자광원에 응용하는 연구를 수행 중인 대표 연구팀들이 몇몇 있어요. 처음 단일 광자 방출을 발견한 시드니공대는 물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도 있죠. 경쟁하기 보다는 조금씩 전공 분야가 달라 서로 협력하는 관계입니다. 예를 들어 저희가 새 구조체를 합성하면 케임브리지대에서 물성을 연구하고 싶으니 구조체를 좀 보내달라고 하죠. 더 나은 성과를 위해 다 함께 손을 잡고 있어요.” 이차원 소재의 전주기적 연구가 목표 이차원 소재, 그 중에서도 육방정계 질화붕소를 중심으로 연구해온 신 단장은 IBS 신규 연구단장으로 선임되면서 융합 연구로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계획을 전했다. “이차원 양자 헤테로구조체 연구단은 융합 연구단입니다. 물리만 하는 것도, 화학만 하는 것도 아니죠. 제 전공은 재료화학으로 크게 분류하면 화학이지만 다른 분야 연구자들과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IBS는 우리나라 기초과학 수준을 세계 최고로 끌어올리는데 공헌한 연구기관이다. 해당 분야에서 최고로 꼽히는 과학자를 국적과 상관없이 연구단장으로 선임한다. 연구의 자율성을 갖는 만큼 연구단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신 단장 역시 미래 계획을 차분히 세우며 진행하는 중이다. “양자 관련 기술은 앞으로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분야로 꼽히지만 지금도 계속 연구되는 분야입니다. 양자 물질도 다양하게 찾고 있고요. 다이아몬드 같은 3차원 물질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죠. 우리 연구단의 시작은 양자 현상이 나오는 이차원 구조체를 찾는 겁니다.” 신 단장은 ‘이차원 소재의 전주기 연구’를 연구단의 목표로 삼았다. 양자 현상을 보이는 이차원 소재를 만들고 양자 정보 기술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까지 완성한다는 의미다. 첫 단계는 양자 현상을 보이는 이차원 소재의 전구체를 구상, 설계한다. 전구체는 화합물을 생성하기 위한 출발 물질이다. 산화그래핀을 만들기 위해서는 산화흑연을 먼저 만들어야하는데, 산화흑연은 흑연으로부터 만든다. 즉, 흑연이 바로 전구체다.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전구체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전구체를 토대로 만들어진 이차원 구조체를 대면적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나중에 이 물질을 양자 정보 기술에 활용하려면 반도체에서 리소그래피(Lithography)를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반도체를 만드는 실리콘 기판은 크기가 클수록 장점이 많아진다. 기판의 크기가 클수록 한 번에 더 많은 칩을 만들 수 있어서다. 양자 정보 기술에서도 마찬가지다. 양자 소재를 크게 만들기 위해선 대면적으로 합성하는 기술이 필수다. 두께가 얇고 유연성이 높은 이차원 소재는 더욱 가치가 크다. “융합 연구단인만큼 물리 현상을 연구하는 연구자분도 초빙할 계획입니다. 우리가 설계한 이차원 소재가 실제로 어떤 양자 현상을 보이는지 연구할 거예요. 함께 연구하다 보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겠죠.” 신 단장은 이차원 소재가 양자 정보 기술의 핵심, 단일 광자 방출기(양자 광원, Quantum Emitter)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광자를 양자 정보 기술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광자가 하나씩 방출돼야 한다. 형광등 같은 일반적인 광원에서는 광자가 여러 개가 묶여서 방출되기에 정보를 담기 어렵다. 즉 양자 정보 기술은 광자를 1개씩 내보내는 양자 광원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여기까지 오면 궁극적으로는 이를 이용해 반도체집적회로처럼 양자광집적회로를 만들 겁니다. 이 단계까지 오면 정말 산업계에 이 기술을 내보낼 준비가 되는 거예요. 물론 그 이후에 경제성, 다른 기술과의 호환성 등도 따져야 하지만요.” 20, 30년 뒤 기술적으로 사회에 공헌하는 연구를 해야 기초과학은 현실과는 다소 떨어져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자연을 향한 호기심이 실제로 인류의 삶에 와닿을 때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기 때문이다. ‘연구의 마지막 목표는 산업계로 내보낼 준비를 마치는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을 때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학자에게서 나오기 어려운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예전에 모셨던 총장님 한 분이 제게 ‘네이처, 사이언스 논문 쓴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이냐’고 질문하셨어요. 학생 때나 학생을 갓 벗어난 신임 연구자일 때는 좋은 논문을 써서 임팩트 팩터가 높은 저널에 게재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연구자로서 실적이 쌓이면서 계속 그 질문이 머릿속에 남았죠.” 신 단장은 기초과학에서 연구를 시작하더라도 언젠간 사회에 쓰였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현대 사회를 이끌고 있는 첨단 기술은 상용화되기 20~30년 전 기초과학에서 시작됐다. 1930년대 실리콘의 전기적 특성을 연구했던 기초과학이 1960년대 인텔(Intel) 설립으로 이어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앞으로 10, 20년 뒤에는 IBS에서 했던 연구들이 우리 사회에 공헌하길 바랍니다. 저도 그 한 축을 꼭 담당하고 싶고요.” 이를 위한 첫 단추는 연구단 구성원을 꾸리는 일이 급선무다. 신 단장 역시 현재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에게 어떤 연구자를 원하는지 물었다. “장비보다 중요한 게 사람입니다.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연구자와 함께할 수 있는지 여부가 연구의 성패의 갈림길에 있다고 행각해요.” 신 단장이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오픈 마인드’다. 공동 연구가 많이 필요한 융합 연구의 특성상 꼭 필요한 덕목이다. “연구단에 올 정도라면 이미 충분히 능력있는 연구자일 겁니다. 당장은 조금 손해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연구자이길 원해요. 이렇게 팀을 꾸려 10년 후에는 ‘이차원 구조체나 양자 광원은 어디가 잘하냐’는 질문이 왔을 때 곧장 한국 IBS의 신현석 팀이라는 답변이 나오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2024.09.13
  • 과학기술 도약을 만드는 복잡계 물리 연구의 세계 과학기술 도약을 만드는 복잡계 물리 연구의 세계 과학기술 도약을 만드는 복잡계 물리 연구의 세계 물리학은 흔히 '괴짜들의 학문'으로 묘사된다. 원자, 에너지, 상호작용 등의 단어로 설명되는 물리학은 우리 눈에 보이는 물체, 그 너머의 현상을 규명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실 세계와는 한참 동떨어진 학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김경민 선임연구원은 그가 연구하는 복잡계 물리학을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심오한 이론부터 방대한 시뮬레이션까지 통합하여 사용하는 융합적 학문이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리가 현실이라고 인식하는 이 세계는 수많은 입자의 복잡한 구조들로 구성돼 있다. 또, 자연 속에 그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식물에도 그 안에는 반드시 숨겨진 질서가 있다. 피보나치 수열에 따라 꽃잎을 이루는 백합과 장미, 가장 균형 잡힌 비율을 뜻하는 황금비가 그 예다. 이처럼 복잡계 물리학은 이상적인 상황을 기반으로 한 단순계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복잡한 상황을 해석하는 학문이다. 김 연구원은 최근 현상 해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초전력 반도체 등 '현실' 기술에 적용할 만한 물리적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혁신적 연구를 통해 과학기술의 도약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하는 물리학자 김 연구원을 만나 그의 연구 이야기를 들어 봤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 이론물리 연구단(PCS)의 김경민 선임연구원입니다. IBS에 합류하기 전에는 포스텍(POSTECH)에서 응집물질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마쳤습니다. 제가 전공한 응집물질 양자장론은 응집물질 물리학 중에서도 가장 '이론적인’ 물리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응집물질계에서 나타나는 복잡하고 다양한 특성보다는 단순하고 근본적인 원리를 규명하는 물리학이지요. Q. IBS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지금까지 해온 응집물질 양자장론의 관점을 뛰어넘어 새로운 학문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컴퓨터를 활용한 시뮬레이션 기법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레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복잡계와 같은 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물리계의 연구에 도전하고 싶다’는 열망이 일었습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방식의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소를 찾던 중, IBS의 복잡계 이론물리 연구단을 알게 됐습니다. 연구단에서 개최한 콘퍼런스에 참석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 연구단에 직접 와보니 훌륭한 연구자가 다수 포진해 있는 데다 연구를 위한 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연구 방향을 개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렇게 약 4년 전, 연구단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Q. 복잡계 이론물리 연구단은 어떤 곳인가요?   '복잡계'라는 이름 자체로 아리송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가장 '현실'에 가까운 물리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 다. 전통적인 순수 이론물리학은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현상을 탐구합니다. 예컨대 어떤 공간에 단 1~2개의 입자만 존재하는 상황에서의 물리 현상을 연구하는 식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이루는 물질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입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입자들끼리도 복잡하게 얽혀 상호작용합니다. 입자 간에 일종의 거미줄 같은 네트워크 구조가 존재하는 거지요. 복잡계 이론물리 연구단은 이처럼 현실 세계에 기반한 복잡한 물리학적 시스템 안에서의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복잡계를 실질적으로 연구하고자 효과적인 모델링 기법, 컴퓨터를 사용한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방법을 융합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Q. 연구단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오롯이 연구를 위한 기관인 만큼 대학과 같은 교육 기관에 비해 더 훌륭한 연구 시설을 갖췄으니까요. 하지만 시설보다 더 좋았던 건 이곳의 연구 문화였습니다. 이곳에선 연구자들이 서로의 연구 내용에 대해 활발히 토론하며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습니다. 여러 연구자가 모여 질문이 오가는 과정에서 제가 미처 생각지 못한 날카로운 지적을 받는 등, 연구자로서 성장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이곳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싶으셨나요? 2차원 자성체 등 현실적인 응집물질계에서 나타나는 복잡하고 다양한 특성 연구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효과적 모델링 기법, 컴퓨터를 사용한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방법을 접목하여, 이전에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응집물질 물리학의 도전적인 과제들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이처럼 실질적인 물리학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면 과학기술 발전에 보다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Q. 어떤 연구를 진행하셨나요? 대표적인 연구 성과는? 2차원 자성체(반데르발스 자성체)에서 불안정한 스핀 구조체를 안정화하는 방법을 구현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습니다. 자성체는 자성을 띠는 물체이며, 스핀 구조체는 자성체 내에서 스핀들이 복잡한 법칙에 따라 배열된 것을 말합니다. 스핀 구조체는 주변과 뚜렷이 구별되는 복잡한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어요. 이러한 독특한 특성 때문에 반도체 소자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정보 저장 및 전달 유닛으로 주목받고 현재까지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자화 방향이 자성체 표면에 수직한 방향을 가진 자성체(수직 이방성 자성체)에서만 안정적인 스핀 구조체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저는 자성체 두 겹을 서로 뒤틀어 접합하는 방식으로 수평 이방성 자성체에서도 스핀 구조체를 안정화하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수평 이방성을 띠는 자성체에는 '메론'이라는 스핀 구조체가 발생하는데, 보통의 자성체에서는 쌍소멸로 인해 메론을 안정화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메론을 안정화하는 방법을 찾아낸 건 이번 연구가 처음입니다. 이는 안정성이 부족해 메모리 소자에 쓰이지 못하던 메론과 같은 스핀 구조체들까지도 반도체 기술에 적용할 수 있게 됐다는 데서 의미가 큽니다. Q. 연구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맞습니다. 이 연구에서 다룬 뒤틀린 자성체는 대표적인 미개척 복잡계 분야입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연구하는 그룹이 10개를 넘지를 않아요. 국내에도 연구자가 드물어서 모르는 것이 있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었습니다. 필요한 지식과 자료를 모으기도 쉽지가 않았어요. 다만, 미개척 분야인 만큼 기회와 보상도 크리라 생각했습니다. 뒤틀린 자성체 자체는 복잡하지만, 제가 고심 끝에 찾아낸 핵심 원리는 간단합니다. 단순하게 설명해 드리면, 자성체 두 겹이 뒤틀린 채로 겹치면 겹친 면 사이에 보통의 자성체에는 없던 새로운 종류의 ‘포텐셜 우물’이 생깁니다. 마치 산과 산 사이에 깊은 계곡이 존재하는 것처럼요. 이렇게 만들어진 포텐셜 우물에 메론 쌍이 가둬지면서 쌍소멸로 인한 불안정성이 극복되고 결과적으로 안정화될 수 있습니다. 이 결과를 도출하는 데만 반년 이상 걸렸습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위한 코드를 짜는 데도 오랜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결과를 분석하고 논문을 쓰는데 또다시 1년 이상 걸렸지요. 길을 걸으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연구 생각에 빠져있던 기억이 납니다. 모든 과정이 고비였던 긴 시간이었지만, 원하던 대로 결과가 나왔을 때 느껴지는 행복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했습니다. Q. 연구 성과 발표 후 학계의 반응은 어땠나요? 이전에 없던 새로운 발견이기 때문에 꽤 재미있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실험물리학계에서도 질문이 들어왔 어요. 연구팀에서 실험을 진행해 어떤 결과를 얻었는데, 제 이론으로 그 결과를 해석할 수 있을지 묻는 등 흥미로운 접근이 많이 생겼습니다. Q. 그러한 관심이 다음 연구로 이어질 수 있겠네요. 네. 이번 이론 연구에서는 특정 물질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기 때문에, 향후 연구에선 특정 물질에 이론을 적용했을 때 어떤 특징이 나타나는지 탐구한다면 중요한 발견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재료공학자 및 실험물리학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번 이론을 실질화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Q. 연구를 이어나가는 데 필요한 지원책은 무엇일까요? 장기적인 목표를 가진 도전적 연구과제와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성과를 목표로 하는 연구과제가 적절히 분배되도록 섬세한 지원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또, 사회 전반적으로 연구자가 연구과제를 충분히 공부하고 제대로 이해해 이른바 '대박'에 가까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자율성을 주는 연구 문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IBS 복잡계 이론물리 연구단은 연구자가 주도적으로 자율성을 갖고 연구 주제를 재미있게 연구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한국 전반적으로 이렇게 연구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연구의 길을 걷는 모든 과학자는 자신만의 꿈과 포부를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 꿈과 포부를 깊이 있게 추구할 수 있도록 안 정적인 터전이 되어주는 연구 환경이 조성되길 바랍니다. 2024.08.14
  • 무궁무진한 탄소의 세계를 탐구하다 무궁무진한 탄소의 세계를 탐구하다 무궁무진한 탄소의 세계를 탐구하다 ‘보석의 왕’이자 탄소로 구성된 다이아몬드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특성에 흔히 사랑의 징표로 생각하지만, 뛰어난 강도와 높은 열 전도성으로 궁극의 반도체 물질로도 여겨진다. 하지만 천연 다이아몬드를 이용하기엔 값이 너무 비싸고, 실험실에서 탄생한 ‘랩다이아몬드’는 표준대기압의 5~6만 배 이상 고압과 수천도의 고온 속에서 제작해야 하는 등 과정이 무척 까다롭고 만들어낼 수 있는 크기도 한계가 있어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긴 어려웠다. 이 한계를 깨는 실마리가 기초과학연구원(IBS)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 손에서 나왔다. 바로 표준대기압에서 액체 금속 합금을 이용해 다이아몬드를 합성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또 빛을 이용·분석해, 다이아몬드 내 '실리콘 공극 컬러센터' 구조도 발견했다. 이는 다시 말해 액체 금속 합금 속 실리콘이 다이아몬드 결정 사이에 끼어든 구조를 말하는데, 양자 현상을 띠고 자기 민감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연구 성과는 지난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으며, 앞으로 한국의 관련 산업 발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성원경 연구위원은 다이아몬드 같은 탄소 물질을 연구하는 것이 낯선 친구를 조금씩 알아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탄소는 우리 주변의 많은 물질, 심지어는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아주 친숙한 재료이지만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무수히 다양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다. 그래서인지 성 연구위원은 "연구를 하며 매번 겸손을 배운다. 한 번 성공했다고 안심하거나, 결과에 맞춰 데이터를 해석하려는 태도를 경계한다"는 태도로 우리가 몰랐던 탄소의 세계를 탐구해 나가고 있다. 성 연구위원에게 그의 연구인생과 성과에 대해 물었다. Q.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기초과학연구원(IBS)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 연구위원이자, 박막 및 물성 분석팀의 팀 리더인 성원경입니다. 저는 성균관대에서 초전도 박막 성장 매커니즘 규명 및 물성 분석으로 박사과정을 마쳤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이후 미국 샌디에이고에 본사가 있는 퀀텀 디자인 한국지사 재료과학팀에서 근무하다가, 2017년 2월에 지금의 연구단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Q.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다양한 구조를 가지는 탄소 동소체 물질을 연구합니다. 탄소 동소체 물질로는 2차원 물질인 그래핀, 3차원 물질인 흑연과 다이아몬드가 대표적입니다. 연구단은 재료 그룹, 나노 광학 그룹, 합성 그룹, 분석 그룹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제가 소속된 재료 그룹은 단결정 그래핀이나 단결정 흑연 같은 단결정 2차원 물질, 다이아몬드와 같은 다양한 탄소 동소체를 성장 및 물성을 화학적 또는 물리적으로 제어하는 연구를 합니다. 나노 광학 그룹은 나노 크기의 빛을 이용해, 탄소 동소체의 미시세계를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 중입니다. 또한 합성 그룹은 새로운 고분자 합성 방법을 연구하고 있으며, 분석 그룹은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탄소 동소체의 미시적인 결정 구조, 원소 분석 및 실시간 성장 메커니즘 연구를 수행합니다. Q.박사님은 어떤 연구를 주로 하시나요? 연구에 빠져든 계기도 궁금합니다. 저는 팀원들과 단결정 그래핀이나 단결정 흑연과 같은 단결정 탄소 동소체를 성장시키고 그들의 기계적·구조적 특성들을 분석합니다. 또 시도되지 않던 방법을 통해 다이아몬드를 합성하고, 탄소 동위원소 분리방법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탄소 뿐 아니라, 모든 물질의 물리적인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결함이 없는 물질’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결함이 없는 물질들은 물질 고유의 특성을 제어했을 때 명확한 특성 변화를 보여 줍니다. 결함 없는 물질을 만드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이 중에서도 다이아몬드를 합성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복잡하기도 합니다. 이런 연구를 하다 보면, 물질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필요로 하기에 낯선 친구를 조금씩 깊이 알아가는 느낌입니다. 특히 탄소 재료는 우리 생활에 흔하게 접할 수 있고, 우리 몸 또한 탄소로 이뤄져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결합 구조 또한 매우 단단하며, 구조에 따라 다양한 특성을 가집니다. 이렇듯 친근하면서 신비로운 탄소물질의 매력에 빠져 연구를 시작했고, 지금도 탄소 물질의 새로운 특성들을 배워 나갈 때마다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Q.최근에는 관련해 어떤 연구 성과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연구는 학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1기압에서 액체금속을 이용한 다이아몬드 합성과 관련한 논문을 ‘네이처’지에 보고했습니다. 이 연구는 2017년 ‘사이언스’지에 언급된 ‘액체 갈륨을 이용해 메탄가스에서 수소를 분리해낸 연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액체금속을 이용해 메탄가스에서 분리된 탄소를 이용하면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탄소원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보통 다이아몬드는 고온 고압법으로 99%가량 합성되는데, 1,600도의 고온과 대기압의 5만 배의 고압 조건을 만들기 위해선 복잡한 기구들이 필요합니다. 또 고온 고압 조건을 만들기 위한 반응의 크기적 한계 때문에 합성되는 다이아몬드 크기도 1㎤로 제한이 됩니다. 저희의 연구는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또 초기 탄소 전구체 모양에 따라 흑연화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스몰’지에 보고했습니다. 그간 탄소섬유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뤄졌지만, 초기 탄소 전구체 모양에 따른 흑연화 과정에 대한 연구는 없었습니다. 저희의 이번 연구는 고분자 전구체의 기하학적 구조가 합성된 흑연의 결정성에 미치는 영향을 화학적 조성 및 열 처리 단계별 분자 배열 변화를 고려하여 심층적으로 분석했습니다. 본 연구를 통해 초기 전구체 모양을 제어하면 탄소 섬유와 같은 흑연화 과정이 필요한 탄소재료의 강도와 유연함을 동시에 제어가능한 다양한 탄소 복합재료를 합성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Q.실험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나요? 실험을 통해 매번 겸손해야 한다는 자세를 배우는 것 같습니다. 한 번 실험에 성공했다고 좋아하기보다는 재연 실험을 염두에 두고 실험과 데이터 분석을 좀 더 꼼꼼히 살펴보며, 좋은 결과를 얻어도 흥분하지 않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Q.연구자의 길을 걸어가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연구도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이 가장 어려우면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팀원들과 대화를 많이 하면서 친해지려 하는 편입니다. 실험 등에 대해 팀원의 고민이 있다면 같이 나누고, 결정이 필요한 부분에서도 협의를 통해 진행해 나가려고 합니다. 왜 우리가 문제에 봉착했는지,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고민하면 동료 의식을 갖고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향후 연구 계획이 궁금합니다. 팀원들과 △대면적 단결정 그래핀의 기계적인 특성에 대한 연구 △기존 단결정 그래핀의 문제점과 수율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단결정 그래핀의 합성법 △손쉬운 탄소 동위원소 분리법에 대한 연구를 해나갈 것입니다. Q.향후 연구에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해외에 훌륭한 연구소가 많지만, 국내에도 훌륭한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소들이 많습니다. 또 한국의 연구 성과는 급진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성실하고 스마트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연구자분들이 한국에서 연구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훌륭한 한국 연구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할 것 같습니다. Q.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학위 과정, 박사 후 연구원 과정, IBS에서 많은 연구적 경험을 쌓았으며, 많은 분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연구단에 합류할 새로운 연구진들 또한 저와 같은 경험을 할 것이라 믿습니다. 앞으로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에서 훌륭한 연구가 지속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4.07.04
  • 인공지능 향상의 단서…뇌 과학에서 찾았다 인공지능 향상의 단서…뇌 과학에서 찾았다 인공지능 향상의 단서…뇌 과학에서 찾았다 인간을 따라 하던 인공지능은 이미 일부 분야에서 인간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데이터 학습을 넘어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생각했던 추론과 논증에도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보다 ‘인간 같은 인공지능’의 탄생을 눈앞에 둔 것이다. 인간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의 비밀은 바로 ‘인간’에 있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이창준 단장과 수리 및 계산 과학 연구단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 차미영 CI 공동 연구팀은 인공지능의 학습 능력을 높일 수 있는 단서를 인간의 뇌에서 찾았다. 인공지능 모델의 기억 및 학습 메커니즘이 인간의 뇌 기억 통합 과정과 유사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인공지능 학술대회 ‘신경정보처리시스템학회(NeurIPS)’에 지난 12월 채택됐다. 인간의 단기 기억은 뇌의 한 부분인 해마에서 장기 기억으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신경세포에 있는 NMDA 수용체가 신경 연결의 강도를 조절하면서 기억 형성에 관여한다. 연구팀은 특정 조건에서만 이온의 통로가 되는 NMDA 수용체의 ‘비선형성’에 주목했다. 그리고 인간의 뇌와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모델에서도 NMDA 수용체와 비슷한 비선형성을 보인다는 점을 발견했다. 인공지능도 해마의 기억 통합 과정과 유사한 방식으로 장기 기억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공동) 제1저자인 김동겸 박사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유사성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의 성능을 향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동겸 박사를 만나 연구 배경과 성과 등에 대해 들어봤다. Q.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IBS 수리 및 계산 과학 연구단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의 박사후연구원 김동겸입니다. 2022년 박사학위를 딴 뒤 연구단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Q.데이터 사이언스 그룹은 무엇을 하나요? 데이터 사이언스는 빅데이터 속에서 숨겨진 패턴을 찾고 분석해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IBS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은 그중에서도 사회적 난제를 인공지능을 활용해 해결해 보려는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출입 세관신고서만 보고도 위장 반입이나 원산지 조작 등 불법 행위를 적발하는 인공지능 세관원을 개발하거나 수면 시간이 지리나 문화적 영향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하기 위한 알고리즘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위성 영상으로 북한의 경제 변화를 포착하거나 기후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팀과 협력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Q.이번 연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저는 원래 뇌 과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던 이창준 단장님 그룹의 권재 박사님을 만나게 돼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 자리에서 인공지능 모델 작동 방식이 뇌의 해마에서 이뤄지는 계산 과정과 유사하다는 기존 연구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고, 이를 기반으로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 모델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할 지점이 보이게 됐습니다. Q.뇌 분야에 원래 관심이 많았나요? 박사 과정 때 인공지능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는 연구를 하는 등 뇌 과학으로 인공지능을 분석하려는 시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뇌 과학에는 fMRI와 같은 뇌 신호 데이터를 분석하는 툴이 굉장히 많은데 이러한 툴을 이용해 인공지능 모델을 분석해 보는 연구도 했었습니다. 최근에는 제가 2저자로 참여해 뇌 과학 분석툴로 인공지능을 분석한 논문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게재되기도 했습니다. Q.이번 연구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인간의 뇌가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변환하는 프로세스를 ‘기억 통합’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기억 통합이 인간뿐 아니라 인공지능 모델에서도 비슷하게 관찰됐다는 게 이번 연구의 주요 발견점입니다. 인공지능 모델은 데이터를 ‘셀프어텐션층’과 ‘피드포워드층’의 단계를 통해 처리합니다. 이전 연구를 통해 셀프어텐션층의 데이터 처리 과정이 인간 뇌의 해마가 정보를 저장하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인공지능의 ‘피드포워드층’에 집중했고, 이 부분의 비선형성이 해마의 NMDA 수용체의 비선형성과 매우 비슷한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을 밝혀낸 겁니다. Q.연구 성과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나요? 단기 기억에서 장기 기억으로 전환되는 효율을 증가시키면 적은 양의 에너지로도 장기 기억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소한의 학습량으로도 장기 기억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겁니다. 앞으로 나올 ‘저비용 고성능’ 인공지능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Q.연구 중 어떤 것이 가장 어려웠나요? 저는 뇌 과학이나 신경과학 분야를 잘 몰랐고, 뇌 과학 분야 연구자들은 인공지능 모델에 대해 모르다 보니 용어나 모델링 등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융합 연구를 통해 제가 연구하던 분야를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시냅스 연결 간의 가중치를 ‘알고리즘의 학습 과정을 통해서 변환시킨다’ 고만 이해하고 있는데, 뇌 과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가중치가 왜 주어지는지, 어떤 생물학적 과정을 통해 나타나게 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연구합니다. 이러한 뇌 과학 연구들이 인공지능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Q.앞으로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있을까요? 인공지능의 문제점 중 하나가 민감한 정보들도 모두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고 기억을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참전용사들이 전쟁의 기억으로 인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 겁니다. 이렇게 비슷할 것 같은 인공지능과 인간의 ‘기억법’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대언어모델(LLM)이 어떤 데이터를 잘 기억하려 하고, 나아가 어떻게 하면 특정 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지 등을 연구해보려 합니다. Q.앞으로 연구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이번 연구에서는 IBS의 GPU클러스터를 활용해서 필요한 계산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LLM 모델을 연구하려면 좀 더 규모가 큰 계산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큰 장비가 필요합니다. 마침 IBS의 슈퍼컴퓨터 ‘올라프’가 2024년 3월부터 정식 운영할 계획이라고 하니 관련 장비를 사용할 수 있으면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2024.04.22
  • “국적과 상관없이 함께 도전하는 과정이 즐거워요” “국적과 상관없이 함께 도전하는 과정이 즐거워요” “국적과 상관없이 함께 도전하는 과정이 즐거워요” 좌측부터 샹(Xiang Lyu,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리디아(Lidiya Getachew Gebeyehu, 혈관 연구단) 필리페(Luiz Felipe Vecchietti, 수리 및 계산 과학 연구단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 연구에 매진하느라 바쁜 과학자 3명을 한 자리에 모으는 일은 쉽지 않았다. 본원과 KAIST 캠퍼스 연구단에 나눠져 있기도 했고, 수시로 있는 학술 세미나에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했다. 새롭게 완공한 IBS KAIST 캠퍼스 2층 라운지에서 리디아(Lidiya Getachew Gebeyehu, 혈관 연구단), 필리페(Luiz Felipe Vecchietti, 수리 및 계산 과학 연구단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 샹(Xiang Lyu,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연구원을 만났다. Q.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리디야(이하 리): 에티오피아에서 온 의사 리디야입니다. 혈관 연구단에서 림프관 발달과 그로부터 생기는 파생 질병에 대해 연구하며 박사 학위를 준비하고 있어요. 루이즈 필리페 베케티(이하 필): 브라질에서 온 루이즈 필리페 베케티입니다.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수리 및 계산 과학 연구단) 선임연구원입니다. 인공지능(AI)를 사용해 단백질을 연구하는데요. 단백질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알아보거나 설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샹 류(이하 류): 중국에서 온 샹 류 선임연구원입니다.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에서 연구하고 있어요. 탄소와 수소를 이용해 락탐을 합성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Q. IBS에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리: 2년 전에 한국에 왔습니다. 에티오피아에 있을 때부터 더 나은 환경에서 연구를 하고 싶었어요. 혈관 연구단에서 하고 있는 실험에도 관심이 있었고요. 필: 학부생 때(2013년)이었는데 브라질 정부에서 지원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처음 왔었어요. 그 때 한국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죠. 브라질에 돌아가 석사 학위를 받았고 2017년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사 과정으로 왔습니다. 박사 학위는 로보틱스 관련 연구로 받았고요. 그 때 차미영 CI의 AI 관련 연구에 대해 듣고 그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현재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류: 2018년 영국 사우스햄프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박사 학위 디펜스 과정에서 장석복 단장님에 대해 알게 됐죠. 유기 화학 분야에 워낙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박사 학위를 마치고 박사후연구원 자리를 찾는데 때마침 연구단에서 채용 공고를 올렸어요. 바로 지원했고 IBS에 오게 됐죠. Q. IBS에서의 연구 생활은 어떤가요? 리: 재미있고 흥미로워요. 어려운 연구도 도전할 수 있도록 연구비를 아낌없이 지원한다는 점에서 만족하고 있어요. 장비도 좋고, 자료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줍니다. 필: 힘들고 어려운 문제를 앞장 서서 도전하는 부분이 매력적입니다. 멘토링을 해주는 선배 연구자들도, 함께 연구하는 후배들도 다 좋은 사람들입니다. 힘든 때가 있어도 연구실에 오는 건 두렵지 않을 정도로 즐겁게 연구하고 있어요. 제 스스로가 한 단계씩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류: IBS는 팀웍이 좋은 곳입니다. 도와주고, 밀어주는 동료들이 주변에 많아요. 연구단에는 여러 분야 전문가가 함께 있는데요. 다른 분야 전문가가 제 연구를 보고 도와주면 더 완벽한 결과가 나오곤 해요. 이 부분이 IBS 연구단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안 좋은 점은 없나요? 류: 없어요(웃음). 필: (데이터 과학자라서)데이터가 넘쳐나는 시대라서 연구가 힘들어요. 그런데 그건 모든 연구자들이 겪는 문제죠. Q. IBS에 적응할 때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리: IBS에 적응할 때 보단 먼 타국에 왔기 때문에 힘들었어요. 가족과 멀리 떨어진 게 힘들었죠. 가족 행사에 참여하기도 어렵고요. 필: 문화적 차이가 힘들었어요. 학부생 때 왔을 때는 한국 문화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어요. 어차피 짧게 있을 거라 변화를 받아들이기도 싫었고요. 하지만 박사 과정과 연구를 위해 들어왔을 때는 길게 보고 적극적으로 적응했어요. 새로 온 연구자들도 저와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될텐데요. 인내심을 갖고 적응해보길 추천합니다. 류: 반대로 전 중국과 한국 문화가 비슷한 게 많아서 문화적 어려움 없이 금방 쉽게 적응할 수 있었어요. 박사후연구원을 시작했을 때 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여행이나 교류가 다 막혔던 것이 어려웠네요. Q. IBS에 바라는 점이 있을까요? 리: 여러 국가에서 젊은 연구자들이 IBS에 올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필: 다른 연구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연구단 내부가 아니라 아예 다른 연구단과도 교류하고 싶어요. 또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연구가 많이 진행됐으면 합니다. 류: 기숙사가 너무 좋은데 1년 밖에 못 쓰는게 아쉽네요(웃음). 다른 연구단을 방문할 수 있는 오픈 데이 같은 행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연스럽게 서로 교류도 하고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계획이 듣고 싶어요. 리: 현재 박사 학위 과정 중에 있어서 일단은 학위를 받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이후엔 임상 시험 쪽 연구를 하고 싶어요. IBS에 관련 분야가 있다면 계속 이곳에서 일하고 싶죠. 하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답니다. 필: 당분간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할 거 같아요. 기후 변화 같은 것 말이죠. 장기적으로는 교수가 되고 싶어요.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이 저를 롤모델로 삼을 수 있도록 좋은 사례로 남고 싶습니다. 류: IBS에서 일하면서 생화학 관련 연구를 하고 싶어요. 신약 개발처럼 지속가능한 연구 모델을 찾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어떤 과학자가 되고 싶나요? 리: 절대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가진 연구자가 되고 싶어요. 림프 부종을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할 겁니다. 필: 함께 연구하는 동료가 성공한다면 나도 성공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연구자가 될 겁니다. 류: 효율적이고 좋은, 새로운 화학 반응을 발견하는 생화학자가 될 거예요. 2024.03.18
  • 단일 원자의 스핀 제어로 새로운 양자컴퓨터 플랫폼을 만들어간다 단일 원자의 스핀 제어로 새로운 양자컴퓨터 플랫폼을 만들어간다 단일 원자의 스핀 제어로 새로운 양자컴퓨터 플랫폼을 만들어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극미소(極微小)’의 세계에는 우리가 사는 거시 세계와 다른 물리 법칙이 작용한다. 양자 중첩, 양자 얽힘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 현상을 이용한 ‘양자 컴퓨터’가 상용화 되면 현재의 컴퓨터가 처리하지 못하는 방대한 양의 계산을 눈깜짝할 사이에 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상용 컴퓨터의 기본 계산 단위인 비트(Bit)는 0 또는 1의 상태만 표현할 수 있지만 양자 컴퓨터의 기본 단위인 큐비트(Qubit)는 0과 1의 상태가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은 지난 5월 단일 원자의 전자 스핀을 이용해 큐비트 개발에 성공했다. 한국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새로운 방식의 큐비트로 양자 컴퓨터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이 나온다. 이번 연구를 이끈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 박수현 연구위원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2006년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후 서울대학교 산화물전자공학연구단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산화물 표면과 초기 성장에 대해 연구했고요. 2010년부터 5년간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자기나노구조 연구를 했습니다. 이때의 연구 주제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한국에 돌아온 후 2017년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 초기 설립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했습니다. 양자나노과학연구단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기 전인 2019년부터 2020년까지는 미국 산호세에 위치한 IBM 연구소에서 원자 사슬 구조의 자기적 성질, 고주파 신호를 이용한 단원자 스핀의 양자상태 제어 등을 연구했고요. 당시에 얻었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현재 양자나노과학연구단에서는 주사터널링현미경(STM)과 전자스핀공명(ESR)을 이용해 고체 물질 표면과 나노 구조의 양자역학적 성질을 원자분해능(atomic resolution)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소속 연구단인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에 대해서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은 2017년 1월에 설립돼 현재 약 35명의 연구 인력과 10여명의 행정 및 기술 지원 인력이 서로 도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단에서는 고체 표면 위에 놓인 단일 원자 및 분자의 양자역학적 성질을 연구합니다. 그리고 알아낸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원자 및 분자들로 만든 나노구조에 적용해 양자 정보•계산•센서 분야 등에서의 응용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연구 방법은 양자역학적 현상을 이용하는 STM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STM을 이용해 개별 원자나 분자, 또는 이들을 이용해서 만든 인위적인 구조에 대한 전자기적 상태를 제어하고 측정합니다. 저는 현재 양자나노과학연구단에서 ‘원자 스케일 전자스핀큐비트’ 프로젝트를 맡아 연구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연구자 생활을 하다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귀국을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단순히 이야기하자면 대학원 생활까지 한국에서 했기 때문에 기회가 있다면 고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고요.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약 5년간 나노 자석의 원자분해능 연구를 했는데, 해당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이 당시만해도 한국에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경험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와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양자나노과학연구단의 핵심 연구 성과를 소개해주세요. 지금까지의 핵심 연구성과로는 먼저 STM과 ESR 기술을 결합해 2018년에 고체 표면 위 단일 원자의 핵스핀을 상태를 측정하는데 성공한 건이 있습니다. 2019년에는 마이크로파 펄스를 표면 위 단일 원자(티타늄)에 순간적으로 가해 전자 스핀 상태를 제어하고 측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올해 5월에는 표면 위 단일 원자 스핀의 큐비트 제어에도 성공했습니다. 이어서 여러 큐비트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멀티 큐비트 시스템도 구현했습니다. 이 세 연구 결과가 모두 사이언스지에 게재됐습니다. 올해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전자스핀 큐비트 논문 내용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이번 연구에서는 산화마그네슘으로 만든 얇은 절연체 표면 위에 놓인 여러 개의 티타늄 원자들로 구조를 만들고 이를 복수 큐비트 플랫폼으로 구현했습니다. 양자 컴퓨터를 이루는 큐비트를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향후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는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졌나요. 연구팀은 먼저 STM의 탐침을 이용해 각 원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조작해 여러 원자 스핀들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복수 티타늄 원자 구조를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이후에는 센서 역할을 할 티타늄 원자에 탐침을 두고 원격제어 방식을 적용해 센서 및 원거리에 놓인 여러 티타늄 원자들을 하나의 탐침으로 동시에 제어‧측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각 티타늄 원자가 개별 큐비트의 역할을 하고 양자역학 법칙에 의해 서로 상호 작용하게 되는데, 이를 이용해 양자정보처리에 핵심적인 기본 연산인 'CNOT'와 'Toffoli' 게이트를 구현했습니다. 원자 스케일 스핀 큐비트는 상용화된 큐비트들과 다른 형태인데, 완전히 새로운 큐비트 개발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상용화 측면에서 현재 ‘초전도접합큐비트’와 ‘이온트랩큐비트’가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양자 컴퓨터 분야의 발전 정도가 실용화 단계까지 갔을 때 누가 승자가 될지 아직 알 수 없는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직 연구실 연구 단계이기 때문에 전 세계의 연구 그룹들이 각자 최고의 전문성을 가진 연구 방법을 기반으로 큐비트 플랫폼을 개발하고 발전시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연구단은 STM을 이용한 개별 원자, 분자의 조작과 측정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전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개별 원자, 분자의 스핀을 이용한 큐비트 플랫폼을 구현하게 된 것입니다. 원자 스케일 스핀 큐비트가 다른 큐비트와 비교했을 때 가지는 장점은 무엇인가요. 원자 스케일 스핀 큐비트는 원자 하나 하나의 스핀을 이용하고, 개별 원자의 위치를 조작해서 여러 원자 스핀을 원하는 모양으로 배치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큐비트 간 정보 교환을 원자 단위에서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 있지요. 또 큐비트 한 개가 차지하는 공간이 1나노제곱미터에 불과해 다른 종류의 큐비트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습니다.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하면 큐비트의 집적도를 높이는데 있어 독보적입니다. 연구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STM을 이용한 실험 방법의 구조적 한계에서 오는 어려움이 가장 컸습니다. STM은 끝이 원자 하나로 된 탐침을 이용해 표면 위 원자의 위치를 조작하고, 원자분해능으로 신호를 측정하는 기구입니다. 지금까지는 탐침과 매우 가까운 원자스핀만 직접 제어 및 측정이 가능했지요. 하지만 큐비트를 만들려면 여러 원자들을 개별적으로 제어하고 측정해야 합니다. 이번 연구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중요한 진보는 탐침으로부터 거리가 먼 큐비트를 제어하고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이를 여러 큐비트 구조에 적용한 것입니다. 일명 ‘원격 큐비트’ 개발에 성공한 것이죠. 논문이 게재된 후 학계에서는 어떤 반향이 있었나요. 이번 연구는 양자 컴퓨터 분야와 STM 으로 원자, 분자를 연구하는 분야 양쪽의 연구자들이 모두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었습니다. STM을 이용한 연구를 하는 분들은 원자 스케일에서 새로운 양자 정보 플랫폼을 만들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STM 기술을 보다 고도화한 예이고, 적용 분야를 넓히는 셈이거든요. 양자 컴퓨터 분야를 먼저 연구하고 있던 분들에게는 아직은 ‘새로운 시도’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다른 큐비트 플랫폼들이 이미 앞서 달려가고 있기 때문에 원자 스케일 스핀 큐비트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죠. 원자 스케일 스핀 큐비트의 상용화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이시는지요? 상용화까지 이어지려면 소자의 신뢰도와 집적도에 대한 축적된 연구가 필요한데 이제 막 시작한 단계인 우리 양자플랫폼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당연히 큐비트가 엄청나게 많아야 하는데 현재 우리 연구단이 구현에 성공한 큐비트의 개수는 3개에 그칩니다. 또 큐비트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정보처리와 저장에 있어서의 신뢰도 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정보를 저장한 후 나중에 확인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이 정보가 처음 저장한 상태와 동일한 것인지, 여전히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겠지요. 정보를 얼마나 정확히 처리하고, 오래 저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후속 연구도 필요합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오래 연구된 기존 양자플랫폼들에서 확립된 집적도와 신뢰도를 주로 결정하는 물리적,화학적 특성들을 고려해 우리 플랫폼의 연구 방향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후속 연구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앞서 언급했듯 큐비트의 수를 늘리는 것, 그리고 여러 양자연산 게이트를 연속 수행하는데 필요한 충분히 긴 연산 시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번 연구에서 소개한 복수 큐비트 구조와 제어 방식으로는 최대 5~6 큐비트를 연결하고 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현재 가장 앞서나가는 초전도물질 큐비트나 이온트랩 큐비트가 100 큐비트 이상 집적된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해 보이지만, 연구 시간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물질계에서 양자플랫폼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초전도물질과 이온트랩을 제외하면 동시에 제어•측정이 가능한 큐비트의 수가 수 개를 넘지 못하고 있어서 전체 양자플랫폼 연구와 대비해 생각해보면 우리 연구가 그리 뒤쳐져있는 것도 아닙니다. 향후 연구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앞으로는 5~6 큐비트 시스템을 만들어 먼저 이론적으로 제안된 여러 기초적인 양자연산 알고리즘을 적용해 볼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원자 스케일 스핀 큐비트의 실용성과 미래를 예측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향후에는 큐비트들 간의 연결 방식과 측정 방식을 더욱 개량하고 보완해서 10 큐비트 이상을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연구가 필요하겠지요.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연구도 이어져야 하고요. 향후 연구에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요? 어떤 새로운 개념이나 발상이 연구의 대상이 된 후 상용화 되기까지는 대략 다음의 세 단계를 거칩니다. 1)실험실 연구 2)기초과학•기술응용 분야 전문가들 협동을 통한 실용성 연구 3) 기업체에서의 상용화 연구 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 연구단과 같은 연구 기관이 맡고 있는 실험실 연구 단계는 아직 잘 모르는 대상의 성질을 알아내고 이전에 없던 방법을 정립하는 과정입니다. 당연히 수많은 새로운 시도가 실패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이 계속 더해져서 점점 더 좋은 아이디어에 대한 시험을 하다가 매우 쓸모 있는 대상과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이거든요. 때문에 장기간의 지속적인 관심과 따뜻한 시선이 필요합니다. 현재 양자정보과학 선진국들에서 초전도물질 및 이온트랩 기반 양자플랫폼에 대해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지원했던 것처럼, 성과가 있을 때 뿐 아니라 새로운 시도와 실패가 반복되는 때에도 지속적인 관심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2024.01.23
  • 우주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지구상에 없던 희귀핵 찾는 '개척자’ 우주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지구상에 없던 희귀핵 찾는 '개척자’ 우주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지구상에 없던 희귀핵 찾는 '개척자’ 우주의 근원을 찾고자 시공간을 넘나드는 과학자가 있다. 지구에 없던 원소를 젭토초(10해분의 1초)라는 찰나의 순간 동안 관찰하고, 140억년에 달하는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는 핵물리 연구자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보잘것없는 인간이 우주와 자연의 경이로움에 도전하는 지난한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황종원 기초과학연구원(IBS) 희귀핵연구단 연구원은 "핵물리 연구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원자핵을 보면서도 거대한 우주의 근원을 찾는다"며 "시간적으로도 핵물리 실험에선 젭토초처럼 가장 짧은 순간부터 수백억년 전 태동한 우주라는 가장 오래된 시간을 탐구한다"고 밝혔다. 황 연구원은 지난 8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도쿄공업대 연구진과 공동연구한 '산소-28' 논문을 발표했다. 산소-28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불안정한 희귀핵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산소는 대부분 산소-16으로 안정한 상태다. 원소는 물질을 이루는 기본 성분으로 원자라고 부른다. 원자는 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고, 이중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다. 양성자와 중성자의 개수에 따라 원자핵의 종류가 결정되는데, 황 연구원은 이러한 핵의 성질과 그 기반에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 간 상호작용 원리 등을 연구하고 있다. 산소-16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8개씩 존재하지만, 산소-28은 양성자 8개, 중성자 20개를 지닌다. 양성자 수는 같지만 중성자 수가 다른 '쌍둥이 원소'인데 이를 동위원소라고 부른다. 원자핵에서 양성자나 중성자가 2, 8, 20, 28, 50, 82, 126과 같이 특별히 안정되는 개수를 '마법의 수'라고 부른다. 안정적 상태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니 '마법'이라고 부른 것이다. 산소-28은 그동안 존재할 수 있는 한계치, 끝에 있는 동위원소로 여겨졌다.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동위원소는 인공적으로 만들어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실험 자체가 어려웠다. 하지만 황 연구원과 공동 연구팀은 RIKEN의 중이온가속기, ‘방사성동위원소 빔 생성시설’(RIBF)을 이용해 산소-28을 세계 최초로 관측하고 그것이 마법의 수를 지닌 핵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현재 황 연구원은 지르코늄-80에 대한 연구 등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원자핵을 찾는 개척 연구 중이다. 아래는 황 연구원과의 일문일답.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해외 연구소 탐방을 하면서 일본 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KEK)를 봤습니다. 그때 거대한 시설에서 연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재밌겠다' '나도 해보고 싶다' '우주의 기원을 탐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 IBS 중이온가속기(RAON) 건설 계획이 나왔고 자연스럽게 핵물리 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당시 서울대 대학원에서 월드클래스유니버시티(WCU) 프로젝트를 통해 사토 요시테루 교수님을 모셔 왔고 이분 밑에서 희귀핵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SAMURAI(다중입자 측정 실험 장치)를 이용해 산소-28을 비롯한 다양한 희귀핵을 실험했고 그 데이터를 활용해 논문을 쓰고 졸업했습니다. 2017년 5월부터 도쿄대 산하 핵과학연구센터(CNS)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3년을 보내고 2020년 4월 IBS에 들어와 후속연구를 수행 중입니다. 소속 연구단인 IBS 희귀핵연구단은 어떤 곳인가요. 우선 기초과학은 자연이 왜 이렇게 생겼는지, 우주가 왜 이런 구조이고 물질이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지 일종의 존재론적 탐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희귀핵 연구는 주로 원소의 기원을 찾아갑니다. 인류는 모든 원소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모릅니다. 특히 철부터 우라늄과 같은 무거운 핵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지 못합니다. 원소들의 생성 과정에 희귀핵이 큰 연관이 있고, 희귀핵 연구를 통해 우주에서 원소들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조금 더 잘 파악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양성자·중성자 포획과정과 같은 천체물리학적으로 중요한 핵반응에 대한 실험을 수행하고, 원자핵이 존재할 수 있는 한계선인 양성자·중성자 드립라인(Dripline), 새로운 마법수 등의 핵구조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황 연구원님 중점 연구 분야가 궁금합니다. 산소-28과 같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불안정한 희귀핵연구가 대표적입니다. 산소-28은 양성자 8개와 중성자 20개로 이뤄져 있습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산소-16에 비해 중성자를 12개 더 가지고 있어 불안정합니다. 최근에는 지르코늄-80 연구도 수행 중입니다. 지르코늄-80은 중성자가 아니라 양성자가 더 많습니다. 산소-28과 반대 구조의 동위원소 성질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산소-28이나 지르코늄-80과 같은 동위원소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물질의 성질을 나타내는 기본 단위는 원자입니다. 원자는 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저희가 초점을 맞추는 원자핵은 물리학적으로 원자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돼 있고, 세상의 모든 종류의 원자핵은 두 입자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서로 다른 성질을 나타냅니다. 두 입자들의 조합이 세상의 다양성을 창조하는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핵물리 연구는 이들 입자 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합니다. 상호작용이 빚어내는 다양한 현상들을 파악해서 안정하거나 불안정한 원자핵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산소-28 연구 성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존재 한계 너머에 있는 원자핵의 특성을 밝혔다는 게 의미가 큽니다. 원자핵은 양성자나 중성자가 특정한 개수를 만족하면 안정적인 특성을 나타내곤 합니다. 원자핵에서 양성자나 중성자가 2, 8, 20, 28, 50, 82, 126과 같이 특별히 안정되는 개수를 '마법의 수'라고 부릅니다. 안정적 상태인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니 마법이라고 불렀던 겁니다. 산소-28은 양성자 8개와 중성자 20개로 이뤄졌고, 이 때문에 마법의 수를 두 개나 가진 유력한 핵 후보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RIKEN의 RIBF를 이용해 산소-28을 세계 최초로 관측하고 중성자 측 마법의 수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원자핵 존재 한계 너머에 있는 매우 희귀한 동위원소 성질을 실험적으로 밝혀냈다는 의미입니다. 일종의 극한환경에 대한 원자핵의 성질을 규명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산소-28을 만드는 과정도 쉽지 않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존재 한계선 밖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산소-28은, 양자적 공명 상태로서 10의 21승분의 1초인 젭토초 정도 존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가속기를 통해 생성된 빔을 표적에 충돌시켜 원자핵으로부터 핵 일부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산소-28을 생성했습니다. 간략히 설명하면 칼슘-48 → 플루오린-29 → 산소-28로 가는 과정을 통해 산소-28의 성질을 관측했습니다. 과학자들이 예측한 마법은 없었습니다. 대다수 안정적 원자핵과 달리 극한 영역에 있는 원자핵의 성질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산소-28과 같이 극도로 불안정한 원자핵 실험 데이터는 양성자와 중성자 간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이번 기초연구가 응용될 수 있을까요. 기초과학의 가장 큰 의의는 인류가 가진 지평을 넓히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과학기술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저는 과학과 기술은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 중의 하나이고, 특히 기초과학은 인문학이나 예술과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이나 예술의 발전이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지만, 인류의 정신적인 풍요와 문화적인 번영에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기초과학도 지식의 지평을 넓힘으로써 인류 문화 발전에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 응용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 당장은 모르겠지만 100년, 1000년 후 실질적으로 인류에 도움이 되는 공학 기술 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100년 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공학기술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응용할 수 있는 분야는 많아지리라 여겨집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연구를 하다 보면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핵물리 실험을 하면서 제가 생각보다 잘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핵물리 실험에서는 검출기를 직접 설계하고 제작을 하기도 합니다. 직접 도면을 그리거나 회로를 설계하고, 검출기에서 나오는 전기적 신호를 컴퓨터가 읽을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도 해야 합니다. 다양한 지식들이 많이 필요한데 제가 학부 때 프로그래밍을 부전공했고 어렸을 때부터 전자제품을 분해해보는 등의 다양한 경험을 좋아했습니다. 핵물리 분야에서는 연구 책임자가 실험 전체를 설계하고 실험에 필요한 다양한 것들을 숙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보니 핵물리 연구가 더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연구하는 과정이나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근 RAON 빔을 통해 실험적으로 희귀핵종을 만들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도 이걸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세계적으로 역량을 쌓는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뿌듯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연구는 가속기를 이용해 핵폐기물을 재처리하는 연구가 있습니다. 원자로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이 있는데 가속기를 활용해서 다른 원소로 바꿔주면 처리가 용이해집니다. 그런 컨셉을 가지고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일종의 연금술과도 같은데 연내 논문 작성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황 연구원님 어린시절은 어땠나요. 초등학교 때부터 과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때 과학책을 많이 접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웃집 아주머니께서 본인 아들이 다 컸다고 집에 있던 과학잡지 뉴턴 2~3년치를 저희 집에 주셨습니다. 워낙 신기한 내용들이 많았고 잡지 자체가 컬러풀해서 많이 읽었습니다. 그때부터 과학책 읽기를 좋아했고, 이것저것 만드는 걸 좋아하면서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근원을 좇으면서 결국 자연이나 우주의 기원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물리학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연구 커리어 중에 일본에서 3년간 박사후연구원을 지내셨는데 국제협력 필요성을 체감하셨나요. 국제협력을 하면서 연구시설의 중요성을 많이 체감했습니다. 핵물리 실험은 중이온가속기 같은 거대 연구시설이 필수적입니다. 우리나라도 RAON이 완공돼서 이용자에게 개방을 앞두고 있지만, 이전에는 실험시설이 전무했고 주로 해외에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대학원에서 연구를 수행할 때도 일부 제약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국내에도 가속기가 들어서는 만큼 그동안 쌓아왔던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싶습니다. ‘황 연구원님에게 핵물리학이란’ 이 질문에 대답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제가 핵물리, 혹은 기초과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자연과 우주에 대한 경이로움, 그리고 그에 비해 작고 보잘것없으나 그것을 탐구하려는 인간이 가지는 가능성입니다. 핵물리는 다양한 스케일을 다룹니다. 핵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우주와 연관돼 있습니다. 초신성 폭발이나 별의 진화는 결국 핵의 반응, 혹은 원소의 생성과 연관이 돼 있습니다. 시간적으로도 우주의 나이는 백억 년이 넘지만, 실험에선 나노초, 마이크로초처럼 가장 작은 스케일을 다룹니다. 이런 연구를 하다보면 우주와 자연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시공의 유한함을 지닌 인간이 호기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구 외적인 생활은 어떠신가요. 악기 중에 비올라를 다룹니다. 연구를 하다보면 방향성을 잡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나의 연구 논문을 쓰고 나면 다른 주제를 찾아야 하는데 어떻게 찾을지 고민이고, 커리어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합니다. 악기를 연주하면서 그런 상념을 조금 덜어내는 것 같습니다. 악기 말고는 주로 독서를 합니다. 기초과학 분야에 처음 입문하는 분들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창백한 푸른 점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리처드 파인먼의 물리학 강의도 물리학을 바라보는 관점에 도움이 됩니다. 기초과학 이야기지만 굉장히 철학적인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나중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성실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기초과학 분야 업적은 사실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 업적이 세간의 인정을 받는 것은 연구자의 영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분야에서 성실하게 꾸준하게 연구를 해왔고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람으로 각인되고 싶습니다. 동료들에게도 같이 연구하는 것이 즐거웠던 기억되고 싶습니다. 향후 개척하고 싶은 분야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초과학연구원의 차세대연구리더(YSF)를 통해 지르코늄-80에 대한 연구를 수행 중입니다. 최대 3년간 9억원을 지원받는데, 원자핵 형태 공존에 대한 연구를 실험적으로 검증해 보고 싶습니다. 더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고 싶습니다. 일본 연구진이 2016년 새로 발견한 원소에 니호늄(Nh·주기율표 113번째)이란 이름을 붙인 것처럼 원소를 찾아내는 연구에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주도하지 않더라고 언젠가 원소를 찾아내는 연구를 함께 하고 싶습니다. 2024.01.03
  • 50년 묵은 난제를 해결한 한국의 젊은 수학자 50년 묵은 난제를 해결한 한국의 젊은 수학자 50년 묵은 난제를 해결한 한국의 젊은 수학자 1972년 한 다과회에서 수학자 에르되시 팔은 동료 라슬로 로바스, 밴스 파버와 수학 문제 하나를 떠올렸다. 그래프이론과 관련된 간단한 명제였다. 세 수학자는 쉽게 증명해 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 문제는 수십 년 동안 풀리지 않았고, 그렇게 영원한 수학계 난제로 남는 듯했다. 50여 년이 흐른 2021년, 마침내 문제가 풀렸다. 수많은 수학자가 골머리를 앓았지만, 애석하게도 풀리지 않던 수학계 묵은 난제는 젊은 한국 수학자의 손에서 해결됐다. 박사학위를 받은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이뤄낸 놀라운 성과였다. 문제를 제시한 수학자 라슬로 로바스는 미국 수학과학 전문잡지 ‘콴타’를 통해 “아름다운 작품과 같다”며 “연구의 진전을 보게 돼서 기쁘다”고 밝혔다. 문제를 해결한 주인공은 강동엽 IBS 극단 조합 및 확률 그룹 차세대 연구리더(Young Scientist Fellow, YSF)다. 강 연구리더는 올해 6월, YSF로 IBS 극단 조합 및 확률 그룹에 합류했다. Young Scientist Fellowship은 는 IBS 차세대 연구리더 육성 프로그램으로, IBS가 젊은 수학자와 과학자들의 우수한 연구 성과 창출을 목표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 10월, 강 연구리더는 그간의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2023년도 대한수학회 상산젊은수학자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상은 박사 학위를 받은 지 5년 이내의 젊은 수학자 중 수학 분야에 업적이 뛰어난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매년 세 명이 선정된다. 50년 난제를 해결한 젊은 수학자 강동엽 연구리더를 만나 연구 배경에 대해 들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강동엽 IBS 극단 조합 및 확률 그룹 차세대 연구리더입니다. KAIST에서 전산학과 수학을 전공하고, 2020년 KAIST 수리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지도교수님은 현재 같은 연구단에 있는 엄상일 IBS 이산수학 그룹 CI입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는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 3년 동안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었고, 현재는 IBS 극단 조합 및 확률 그룹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소속 연구단인 극단 조합 및 확률 그룹은 어떤 곳인가요? 홍 리우 IBS 극단 및 확률 조합 그룹 CI가 이끄는 연구그룹으로 2022년 3월 출범했습니다. 수리 및 계산 과학 연구단에 설립된 네 번째 연구그룹이죠. 극단 조합 및 확률 그룹에서는 극단 조합론, 확률론적 조합론, 이산 기하학 등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강 연구리더는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시나요? 극단 조합론과 확률론적 조합론을 연구하고 있어요. 극단 조합론은 제약 조건이 있는 상황에서 조합적 매개변수의 최적값을 찾는 분야입니다. 확률론적 조합론에서는 특정한 조합적 구조와 연계된 확률 공간을 연구합니다. 언뜻 관련 없어 보이지만, 두 분야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입니다. 예를 들어 극단 조합론에서 쓰는 방법론을 확률론적 조합론에 적용하는 식이죠. 이 분야가 진지하게 연구된 지는 약 100년 정도 됐습니다. 대수학, 정수론과 같은 고전적인 수학 분야보다는 최근 연구 분야죠.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연구가 활발해졌어요. 실생활 문제를 컴퓨터로 해결할 때, 수학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연구 분야가 실생활에도 관련이 있다고요? 내비게이션을 이용해 최적의 경로를 탐색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저희 연구 분야에서 주로 다루는 대상 중 하나가 그래프인데요, 그래프는 ‘꼭짓점(node)’과 그 사이를 잇는 ‘간선(edge)’으로 이뤄진 구조를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네트워크라고 말하는 것이죠. 내비게이션의 경우 지점은 점으로, 도로는 간선으로 표현해 알고리즘 문제로 바꾸는 것이죠. 구조적 그래프 이론은 특정 성질을 갖는 그래프의 알고리즘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확률론적 조합론은 무작위 알고리즘의 설계와 관련이 깊고요. 그래서 SNS 친구 추천, 포털사이트의 검색 등의 알고리즘을 설계할 때도 이런 수학 이론이 이용됩니다. 2021년 ‘콴타 매거진’에 강 연구리더의 연구가 소개됐습니다. ‘에르되시-파버-로바스 추측’을 유한개의 경우를 제외하고 증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선형 하이퍼그래프가 N개의 꼭짓점을 가지면, 그 하이퍼그래프의 겹치는 간선들을 다른 색을 가지게끔 칠하는 데 필요한 색의 개수는 N 이하다’라는 명제입니다. 여기서 하이퍼그래프는 수학적으로 각 간선이 2개 이상의 꼭짓점을 포함할 수 있게 허용한 그래프입니다. 수학에서는 비교적 간단한 명제이기 때문에 쉽게 해결될 거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50여 년 동안 풀리지 않은 난제가 됐죠. 연구 주제는 보통 어떻게 선택하나요? 저는 즉흥적으로 연구 주제를 선택하는 편입니다. 그게 잘 맞기도 하고요. 보통 연구 주제를 선택하면 오랜 시간 지속해야 하니 주제에 충분히 매력을 느끼고 흥미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주로 워크숍에 가서 소개된 문제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 공동 연구자들에게 제안이 오기도 해요. 제가 먼저 제안할 때도 있고요. 그럼 ‘에르되시-파버-로바스 추측’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영국 버밍엄대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을 때였어요. 다니엘라 쿤 교수님과 데릭 오스투스 교수님이 멘토였는데요, 어느 날 두 분이 이 문제를 시도해 보자고 제안하셨어요. 사실 뜬금없었죠. 워낙 긴 시간 해결되지 않은 난제였으니 농담하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진심이었죠.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걱정했던 것만큼의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처음 교수님들은 한 논문 결과를 이용하면 된다고 생각하셨어요. 막상 문제를 풀려고 보니 교수님들께서 착각하셨던 것이었죠. 사실 이런 일은 수학자들에게 흔한 일이에요. 우연은 여기서 시작됐어요. 당시 저와 버밍엄대 동료들이 연구하던 문제가 있었는데요, 아이러니하게 그 문제에 이용한 아이디어가 에르되시-파버-로바스 추측에 적용됐어요. 마침 팀에 그래프 이론의 채색 문제를 연구하던 연구원도 있었죠. 우연의 연속으로 좋은 팀이 만들어져, 추측을 반년 만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50년 된 난제를 반년 만에 해결했다고요? 제 연구경력에서도 손에 꼽히는 일이었어요. 수학 문제를 해결할 때 중간에 막히는 일은 빈번하죠. 막힌 부분을 해결하는 데는 일주일, 길게는 수십 개월이 걸리기도 하죠. 그런데 이번 연구는 유독 순탄하게 진행됐어요. 중간에 막혀도, 며칠 만에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오죽하면 멘토이신 교수님들도 “마법 같다”고 말하실 정도였어요. 이번 연구결과는 분야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번에 저와 동료들이 해결한 문제는 선형 하이퍼그래프 채색에 관한 추측 중 가장 간단한 예시 중 하나예요. 그래프 채색에 관한 브룩스(Brooks)의 정리나 비징(Vizing)의 정리와는 달리, 이제껏 선형 하이퍼그래프 채색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정확한 결과가 나온 경우가 거의 없어요. 보통 근사적인 결과를 얻어 끝내곤 하죠. 근사치가 아닌 정확한 결과값을 냈다는 데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저는 제 연구 분야에서 다뤄지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목표가 있는데, 이번 연구결과가 그 여정의 교두보라고 생각됩니다. 연구성과 덕분일까요? 최근에는 상산젊은수학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동시에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어요. 역대 수상자 목록을 보니 쟁쟁한 수학자들이 많았거든요. 제겐 과분한 상이 아닌가 싶기도 했죠. 조금 부담도 됐지만, 연구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연구에 더욱 매진할 계획입니다. 그런데 원래 꿈은 수학자가 아닌, 프로그래머였다고요? 어릴 적부터 프로그래머가 꿈이었어요. 중・고등학생 때 정보올림피아드(청소년 컴퓨터 프로그래밍 대회)를 참여했을 정도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좋아했어요. 당연히 대학도 컴퓨터과학을 다루는 전산학부 진학만을 생각했죠. KAIST 전산학부에 입학한 뒤에는 1학년 때 2학년 수업을 미리 다 들을 정도였어요. 정작 2학년 때 들을 수업이 없었죠. 그러다 친구 따라 수학과 수업을 들었어요. 엄밀한 수학을 다루는 ‘해석학’ 과목이었어요. 저는 프로그래밍 중에서도 알고리즘 설계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게 넓게 보면 수학이에요. 그래서 엄밀한 수학을 공부하면 알고리즘 설계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이후 완전한 수학자로 진로를 바꾸셨어요. 전산학과는 크게 컴퓨터과학과 컴퓨터 엔지니어링으로 나뉘어요. 저는 이론에 초점을 둔 컴퓨터과학에 관심이 있었죠. 알고리즘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싶었는데, 이를 위해서 결국 수학을 더 공부해야 했습니다. 컴퓨터 알고리즘에서는 그래프 알고리즘을 다루는데, 이 그래프는 수학에서 연구하는 대상이니까요. KAIST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영국 버밍엄대로 가셨습니다. 김재훈 KAIST 수리과학과 교수님 영향이 있었어요. 제가 KAIST 석사과정 당시 박사후연구원들이 주최한 워크숍에서 김 교수님을 처음 뵀어요. 김 교수님은 곧 영국 버밍엄대로 박사후연구원을 가실 계획이었죠. 버밍엄대는 제 연구 분야에 정통한 연구자도 많고, 연구단도 큰 곳이에요. 그때 전 대학원생이었으니 막연히 버밍엄대에서 연구하면 좋겠다는 생각만 있었죠. 이후 2018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열린 워크숍을 갔는데요, 그곳에서 홍 리우 교수님, 김 교수님과 함께 버밍엄대 교수님들을 만났습니다. 훗날 저의 멘토가 된 교수님들이었죠. 마침 버밍엄대에 박사후연구원 채용이 열렸는데, 어차피 전 박사과정이 1년 남은 상태라 염두에 두지 않았죠. 그런데 버밍엄대에서 1년을 기다리겠다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지원을 제안했습니다. 더군다나 훌륭한 멘토가 많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곳이라 버밍엄대를 선택했습니다. 이후 IBS YSF로 합류했습니다. 합류 과정이 궁금해요. 버밍엄대 박사후연구원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홍 리우 교수님께서 IBS YSF 지원을 제안해 주셨죠. 코로나19로 영국에 나간 3년 동안 한국에 들어오지 못해 향수병도 있었고요. 해외에도 YSF와 비슷한 제도가 있을 것 같은데, IBS YSF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먼저 연구비 지원이 풍족합니다. 순수수학은 고급 실험장비가 필요하지 않지만, 해외 학회에 참석하려면 이동과 체류 비용이 필요합니다. 또 한국에서 워크숍을 열어 해외 학자나 연사를 초청하는데, 연사들의 체류 비용을 여유롭게 지원할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워크숍을 주최할 수 있죠. 세계적으로 봐도 파격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연구자들이 행정 업무를 처리를 힘들어하는데요, IBS에는 행정 업무를 비롯해 연구자들을 지원해 주는 직원들이 많아서 연구자들이 독립적으로 연구만 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비교적 오래 연구가 가능합니다. 보통 박사후연구원의 계약기간은 2~3년 정도인데, IBS YSF 같은 경우는 3년 계약에 추가로 2년 연장계약이 가능해요. 최대 5년까지 연구를 할 수 있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니 연구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죠. 해외와 비교했을 때 IBS YSF의 장점이 큰가요? 세계 다른 기관들과 비교해도 파격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외국인 연구자들이 한국을 선택하는 데는 몇 가지 장애물이 있습니다. 수학 워크숍이나 학회는 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열리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지고요. 언어적 문제도 있죠. 그럼에도 IBS 지원과 인프라가 뛰어나서 외국인 연구자들이 유입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IBS에는 뛰어난 외국인 연구자가 많이 근무하고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제도가 더 활성화돼야 한국 수학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IBS에는 대학원생 연구자가 많은데요, 유능한 연구자들이 한국에 많이 모이면 한국 학생 연구자들이 공동연구할 기회를 얻고 더욱 실력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죠. 앞으로 연구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저와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수학자들이라면, 모두 선망하는 문제들이 있어요. ‘램지 수’에 관한 미해결 문제들이 대표적이에요. ‘에르되시-하이날(Erdős–Hajnal)의 추측’을 비롯해 수학자 에르되시 팔과 동료들이 남긴 수많은 미해결 추측들도 있죠. 언젠가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어요. 또 저와 동료들이 에르되시-파버-로하스 추측을 해결했는데, 그 다음 단계 문제도요. 아마 제 연구 분야의 문제들이 해결될수록 응용 측면에서 더욱 효율적인 무작위 알고리즘을 설계할 수 있을 거예요. 현재 알고리즘이 이용되는 분야가 매우 많은데, 계산에 걸리는 시간을 크게 줄이거나 복잡도를 낮추는 등의 기여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2023.12.01
  • 망가진 사회성도 교육으로 회복한다…뇌과학자가 찾은 희망의 메시지 망가진 사회성도 교육으로 회복한다…뇌과학자가 찾은 희망의 메시지 망가진 사회성도 교육으로 회복한다…뇌과학자가 찾은 희망의 메시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내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은 나에게 영향을 준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회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본능이라고 얘기하고, 다른 이는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통해 학습한 능력이라고 표현한다.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이도윤 연구위원은 “우리의 뇌에는 사회성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뇌 기능은 사회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뇌 발달이 저해돼 나타나는 질환 중 하나인 자폐스펙트럼장애(ASD)는 사회적 행동을 저해하고 다른 이들과의 상호작용에 문제를 일으킨다. 다양한 종류의 신경 세포가 복잡하게 연결된 뇌는 과학자들에게도 미지의 대상이다. 구조와 기능이 워낙 복잡한 탓에 본격적인 뇌 연구도 실험 기법이 발달한 최근에야 시작됐다. 이 때문에 뇌질환과 사회성의 연관성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많이 남아 있다. 많은 과학자들이 찾고 있는 그 실마리는 이 연구위원의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다. 그는 뇌에서 상대방을 인식하는 세포를 찾아내고 이 세포가 사회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 ASD로 인한 사회성 저하가 반복된 교육을 통해 회복될 수 있음을 밝혀냈다. 사회성이 우리가 타고난 뇌에 의해 결정되더라도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이뤄지는 ASD 치료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물론 ASD의 새로운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번 연구가 ASD를 앓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을 만나 이번 연구 결과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대 분자생물학과에서 학사, 석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 의대 생리학교실에 진학해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에는 미국 하워드휴즈의학연구소(HHMI) 자넬리아리서치캠퍼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습니다. HHMI에서는 해마를 연구했습니다. 해마는 뇌의 일부분으로 장기적인 기억과 공간 인식에 중요한 역할을 해 뇌과학에서 중요한 연구 주제입니다. 2015년부터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개체 정보를 인식하는 세포와 사회적 행동과 관련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소속 연구단인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은 어떤 곳인가요.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은 뇌과학을 기반으로 인지, 사회성과 뇌 질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IBS가 설립되면서 가장 처음 만들어진 연구단이죠. 별세포를 연구하는 이창준 단장과 학습 및 기억을 연구하는 강봉균 단장을 필두로 4개 연구그룹이 있습니다. 인지 기능은 다양한 뇌 질환과 사회성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뇌의 기능을 이해하고 뇌 질환을 극복할 수 있는 치료법을 찾는 연구가 우리 연구단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연구위원님은 어떤 연구를 주로 하고 계시는가요. 오랜 시간 동안 해마를 연구했습니다. 해마는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특히 에피소딕 메모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에피소딕 메모리(episodic memory)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기억을 말합니다. 가령 내가 일주일 전에 누구를 만나서 무슨 일을 했는지에 관한 기억을 말하죠. 반면 자전거를 타는 방법처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의식적인 기억은 프로시저럴 메모리(procedural memory)라고 부릅니다. 에피소딕 메모리에는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흔히 육하원칙이라고 부르는 것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장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쥐는 뇌에서 해마가 차지하는 비율이 큰 편에 속하는데, 쥐는 공간 정보를 처리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7년에 해마에서 위치 정보를 인식하는 장소세포(place cell)를 발견한 과학자들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해마 연구와 사회적 행동에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저는 해마가 장소 뿐 아니라 에피소딕 메모리의 모든 요소를 처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해마에서 여러 종류의 정보를 인식하고 이를 종합해 기억을 만든다는 생각이죠. 에피소딕 메모리는 사회적 행동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그렇다면 해마에는 다른 사람을 인식하는 기능도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올해 5월에는 쥐의 해마에서 특정한 상대방에 대해서만 활성화되는 신경세포를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자폐스펙트럼장애(ASD)와 관련된 뇌 기능 연구 성과를 발표했습니다. 자폐스펙트럼장애(ASD)의 행동치료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ASD는 사회적 행동에 문제를 겪는 뇌 질환입니다. 실제로 뇌의 또 다른 중요 부위인 전두엽을 살펴보면 ASD 환자는 사회적 신호와 비사회적 신호에 대한 반응이 큰 차이가 없습니다. 문제는 마땅한 ASD 치료제가 없다는 점입니다. 증상을 일부 완화할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치료는 불가능한 질환이죠. 그래서 ASD 환자는 어린 시절부터 행동치료를 받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행동치료가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논란이 있습니다. 행동치료 과정에서 주어진 상황에서만 효과를 낸다고 보는 사람들과 새로운 상황에서도 사회적 행동을 가능케 한다는 사람들이 모두 있습니다. 실제로 행동치료가 얼마나 효과 있는지 알 수 있는 과학적인 근거는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행동치료의 원리는 사회적인 행동을 했을 때 보상을 주고 이를 실제 생활에서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모든 상황을 교육할 수 없으니 학습하지 않은 새로운 상황에서도 적절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느냐입니다. 즉 사회적 행동을 관장하는 뇌 부위의 기능을 행동치료로 회복할 수 있는지, 회복된 뇌 기능을 다른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연구가 ASD 정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쥐는 냄새로 다른 쥐를 파악합니다. 자폐증에 걸린 쥐에게 다른 쥐(사회적 신호)와 쥐가 아닌 다른 냄새를 내는 물질(비사회적 신호)을 제시했을 때 뇌 전두엽의 신호를 분석했습니다. 정상인 쥐는 두 종류의 신호에 다르게 반응했는데, 자폐증에 걸렸을 때는 신호를 전혀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사회적 신호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의미죠. 그런데 다른 쥐를 만났을 때 보상으로 물을 주는 훈련을 반복하자 전두엽의 신경세포에서 사회적 신호와 비사회적 신호를 구분하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행동치료가 ASD 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인 연구 결과입니다. 학계에서는 이번 연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꽤 의미 있는 연구 결과라고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연구에는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어요. 행동치료가 어떤 신경 회로를 통해서 사회적 행동을 회복하는지는 제시하지 못했거든요. 논문을 검토한 다른 전문가도 이런 점을 지적했죠. 그럼에도 학술지 편집장이 이번 논문을 게재한 이유는 행동치료가 ASD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신경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자폐증을 극복할 방법에 대한 후속 연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논문이라고 평가받았습니다. 실험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아무래도 쥐와 직접 의사소통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행동을 연구하려면 과제를 복잡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변수를 최대한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행동 과제가 복잡해질수록 쥐가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커집니다. 처음에는 쥐에게 보상으로 준 물을 받아먹게 하는 것도 어려웠어요. 사람이었다면 말로 가르칠 수 있었겠지만, 쥐는 스스로 경험을 통해서 가르쳐야 하죠. 자폐증 쥐를 얻기도 어려운데 실험에서 제시한 행동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쥐는 그중에서도 일부분입니다. 이런 점이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실험에 쓰는 장비도 직접 만드시나요. 필요한 실험에 맞춰서 행동 과제를 짜야 해 장비 제작은 필수입니다. 그런데 원래 하던 일이 아니다 보니 처음에는 쉽지 않았어요. 초기에는 유튜브를 보고 독학을 했고, 지금은 간단한 소프트웨어는 직접 만들 정도로 능숙해졌지만요. 그런데 실험이 점점 복잡해지다 보니 주변 전문가들의 도움도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다행히도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전문가들이 많아서 도움받을 분을 쉽게 만날 수 있어요. 최근에는 아이들 친구의 부모에게서 도움을 받았어요. 아이들 행사에서 우연히 만난 분들도 대부분 연구자이다 보니 이런 식으로도 인연을 쌓고 있습니다. 사회적 행동을 연구하시면 평소에도 주변인들의 행동에 관심이 많을 것 같습니다. 직접적으로 연구와 관련된 건 아니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재미있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과 같은 사회적 동물들이 타고나는 사회적 행동 중 ‘소셜 오리엔팅’이라 부르는 현상이 있는데요. 가령 고속도로에서 흔히 트럭 뒤에 눈 모양 스티커를 붙인 걸 쉽게 볼 수 있잖아요. 이게 눈에 상당히 잘 띄는 데, 갓난아이들도 똑같이 눈 모양에 집중합니다. 우리 뇌가 본능적으로 하는 행동입니다. 또 ‘카멜레온 효과’라는 행동도 있습니다. 자기가 속한 그룹의 행동 양상을 따라하는 현상입니다. 저희 가족은 경상도 출신인데, 지금은 대전에 살고 있죠. 그러다 보니 경상도 사투리보다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일이 많아집니다. 무의식적으로 대전 사람들의 말투를 따라 해 친밀감을 높이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연구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우리 연구단의 주요 연구 주제가 사회적 신호인 만큼 ASD에 관한 연구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특히 보상과 관련된 연구에 관심이 있습니다. 보상 회로와 사회적 정보의 처리가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는 최근 뇌과학자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 미처 마무리하지 못했던 행동치료가 뇌 기능을 회복하는 과정을 밝히는 연구를 이어 갈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 연구가 뇌 기능의 비밀을 푸는 것뿐 아니라 질병의 정복에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뇌 질환은 아직 그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원인을 모른다면 치료법도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건강한 삶을 위한 연구를 이어가겠습니다. DOYUN LEE LAB AT IBS 바로가기 https://www.ibs.re.kr/glia/ <최근 연구성과> Reward learning improves social signal processing in autism model mice Cell Reports | VOLUME 42, ISSUE 10, 113228, OCTOBER 31, 2023 https://www.cell.com/cell-reports/fulltext/S2211-1247(23)01240-8 2023.11.01
  • 화학 반응 중 순식간에 사라지는 중간체, 카메라로 사진 찍듯 잡아낸다 화학 반응 중 순식간에 사라지는 중간체, 카메라로 사진 찍듯 잡아낸다 화학 반응 중 순식간에 사라지는 중간체, 카메라로 사진 찍듯 잡아낸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이 화학 반응 도중 빠르게 생성됐다가 사라지는 중간체의 모습을 잡아내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연구단은 탄화수소를 질소화합물로 변환시키는 화학반응에서 생겼다가 사라지는 '전이금속-나이트렌' 중간체 구조와 반응성을 규명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 8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실렸다. 질소화합물은 의약품의 약 90%에 포함될 정도로 생리 활성에 중요한 분자다. 제약뿐만 아니라 소재, 재료 분야에서도 중요한 골격이 된다. 화학자들이 석유, 천연가스 등 자연에 풍부한 탄화수소를 질소화합물로 바꾸는 아민화 반응(질소화 반응)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촉매 개발에 몰두하는 이유다.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은 2018년 다이옥사졸론(아마이드 골격 합성에 쓰이는 시약)과 전이금속(이리듐) 촉매를 활용하여 탄화수소로부터 의약품의 원료가 되는 락탐을 합성하는 촉매반응을 개발한 바 있다. 당시 아민화 반응을 유발하는 핵심 중간체가 바로 전이금속-나이트렌이라는 분석을 내놓았고, 이후 세계 120여 개 연구팀이 다이옥사졸론 시약을 활용한 아민화 반응 연구를 이어갔다. 하지만 계산화학적으로 구조를 파악할 뿐, 전이금속-나이트렌 중간체의 모습을 직접 관찰한 적은 없었다. 대부분 촉매반응은 용액 상태에서 이뤄진다. 용액 내 분자들은 끊임없이 다른 분자와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전이금속-나이트렌과 같이 빠르게 반응하고 사라지는 중간체를 규명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팀은 고체상태의 시료에 빛을 쬐며 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구조 변화를 단결정 엑스선 회절 분석을 통해 관찰하는 광 결정학 분석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 결과, 고체 시료에서 화학 결합이 끊어지며 중간체가 생성되고, 중간체가 다시 다른 물질과 반응해 새로운 화학 결합을 형성하는 전 과정을 마치 카메라가 사진을 찍듯이 포착했다는 의미다. 제 1저자인 정회민 연구원은 “촉매 화학반응이 진행되며 어떤 촉매 중간체를 거쳐 가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반응의 진행 경로를 면밀히 이해하는 동시에 더욱 효율이 높은 차세대 촉매를 개발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설명했다. 정 연구원에게 연구의 성과와 배경, 전망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이하는 일문일답.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기초과학연구원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박사후연구원 정회민입니다. 올해(2023년) 2월에 KAIST 화학과에서 장석복 연구단장님 지도하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또한, 같은 학과 백무현 부연구단장님께도 공동으로 지도를 받았습니다 Q. 소속 연구단인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자들을 더욱 가치 있는 물질로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석유와 같은 자연계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탄화수소 자원을 의약품이나 차세대 재료의 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촉매 반응을 개발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연구단은 2012년 12월 장석복 연구단장님의 연구 착수 이래로 10년 이상 지속되어 왔고, 백무현, 홍승우 부연구단장님 리더십 아래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장석복 단장님 그룹은 앞서 말씀드린 탄화수소 활성화 촉매 반응 개발 및 메커니즘 연구를 진행 중이고, 백무현 부단장님 그룹은 화학 반응의 시뮬레이션(전산모사)를 기반으로 신개념 촉매 및 반응 조절 원리를 탐색 중입니다. 홍승우 부단장님 그룹에서는 촉매 반응 개발과 더불어 의약화학에 적용 가능한 반응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장석복 단장님 그룹에서는 주로 탄화수소 물질에 질소 작용기를 도입하는 촉매 반응 연구를 진행 중인데, 주로 전이금속 촉매와 다이옥사졸론이라는 질소 작용기 전구체를 활용하여 이를 가능케 하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Q. 정 연구원님의 중점 연구 분야가 궁금합니다. 저는 탄화수소 원료물질에 아마이드 작용기를 도입시키는 촉매반응을 개발함과 동시에 촉매 반응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반응 메커니즘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장석복 단장님 그룹에서는 주로 반응 개발과 실험적인 메커니즘 연구를 수행하였고, 백무현 부단장님 그룹에서는 개발한 반응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촉매 반응의 기작(메커니즘)을 연구하거나 개선할 방향을 찾는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두 그룹에서 시너지가 날 수 있는 부분인 반응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반응성과 선택성을 가지는 촉매 반응을 개발하는 연구를 중점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Q.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제가 대학원에 입학한 2018년은 이리듐 촉매와 다이옥사졸론 시약을 활용하여 의약품의 원료 물질인 감마-락탐을 손쉽게 합성하는 연구가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시점이었습니다. 당시에도 해당 촉매 반응을 일으키는 핵심 중간체인 이리듐-아실나이트렌 화합물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해당 중간체의 높은 반응성으로 인해 직접 그 모습을 관찰하는 것은 매우 도전적이었습니다. 저도 대학원 입학 이후 초반에는 다이옥사졸론과 다양한 루테늄, 로듐과 같은 다양한 전이금속 촉매와의 반응성을 관찰하며 더 선택성이나 반응성이 높은 탄화수소의 아미노화 반응을 개발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당 반응을 일으키는 촉매반응의 중간체인 전이금속-나이트렌 화합물을 직접 관찰하여 그 성질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면 더욱 효율이 좋은 촉매반응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Q. 언제부터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사실 해당 중간체의 검출을 위해 연구단에서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용액상에서 전이금속-나이트렌을 분광학적으로 검출하고자 하는 노력도 있었고, 계산화학에 기반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전이금속-나이트렌 중간체의 성질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도 함께 이루어지기도 하였지만, 직접적으로 해당 중간체를 검출하는 것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광결정학을 통해 불안정한 중간체 물질을 관찰할 수 있다는 보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금까지 연구단에서는 한 번도 수행하지 않은 접근 방식이기 때문에 해당 방법을 활용하면 중간체 검출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였습니다. Q. 어떤 성과가 있었나요? 특히 2023년에는 탄화수소에 질소 작용기를 도입하는 아민화 촉매 반응의 핵심 중간체를 규명한 성과를 내어 사이언스지에 게재하기도 하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연구단에서는 전이금속-나이트렌 중간체가 탄화수소 아미노화 반응의 핵심 중간체일 것이라고 예상한 바가 있었지만, 해당 중간체를 실제로 관찰한 것은 이번 성과를 통해 처음 이루어졌습니다. 대부분의 촉매반응은 용액 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이금속-나이트렌과 같이 빠르게 반응하고 사라지는 중간체를 규명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체상태의 시료에 빛을 쬐며 원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구조 변화를 단결정 엑스선(X-ray) 회절 분석을 통해 관찰하는 광 결정학 분석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내었습니다. 해당 실험을 위해 빛에 반응하는 로듐(Rh) 기반 촉매를 새롭게 고안하였는데요, 이 촉매와 다이옥사졸론이 결합한 복합체는 빛을 받으면 탄화수소에 아민기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전이금속-나이트렌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하였습니다. 이 과정을 포항 가속기연구소의 방사광을 활용한 광 결정학 방법으로 분석한 결과, 기존 관찰된 적 없는 ‘로듐-아실나이트렌’ 중간체의 구조와 성질을 세계 최초로 규명할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로듐-아실나이트렌 중간체가 다른 분자와 반응하는 과정도 광 결정학으로 분석하였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고체 시료에서 화학 결합이 끊어지며 중간체가 생성되고, 중간체가 다시 다른 물질과 반응해 새로운 화학 결합을 형성하는 전 과정을 마치 카메라가 사진을 찍듯이 포착했다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Q. 광 결정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광결정학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빛 광(光)과 결정학의 조합으로 영문으로는 ‘photocrystallography’라고 합니다. 엑스선 결정학의 경우 결정 시료(crystal)에 엑스선을 조사하여 나타나는 회절 패턴을 분석함으로 분자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하는 방법입니다. 이에 더하여, 결정을 이루는 분자들이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본 경우에는 엑스선이 아닌 다른 빛)으로 인해 화학적인 변화가 생길 수 있는데, 이렇게 외부 빛에 따른 변화를 원자 단위에서 실험적으로 관찰하거나 추적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광결정학(photocrystallography)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의 실험실 수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장비로 엑스선 회절 실험을 진행하면, 몇 시간에서 하루를 넘어갈 때도 있기 때문에, 광결정학 분석을 수행하기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이러한 점은 방사광 가속기의 활용을 통해 보완이 가능해집니다. 가속기에서는 회절 데이터 수집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고(수 초 ~ 분 단위) 강한 엑스선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소개해 드린 연구도 포항 가속기 연구소에서 단결정 엑스선 회절 실험을 진행하였으며, 해외에서의 많은 광결정학 분석도 여러 방사광 가속에서 수행되고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이 두 가지 중에 결정학(crystallography)과 그와 관련된 엑스선 회절 분석법에 대한 소개가 필요합니다. 결정학은 일반적으로 임의로 정의될 수 있는 격자 구조의 반복성과 대칭성을 다루는 분야인데, 그 반복과 대칭에 관한 정보를 실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하는 물리적 현상이 회절입니다. 분자들이 옹스트롬(Angstrom=0.1나노미터) 단위로 반복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결정 시료에 대해, 역시 옹스트롬 단위 파장에 해당되는 엑스선 조사하는 엑스선 회절 분석법을 이용하면, 맨눈으로 관찰할 수 없었던 원자 단위의 여러 가지 정보, 예컨대 원자간 거리, 각도나 위치, 금속 원자의 주위 배위 환경 등을 세세히 알 수 있습니다. 엑스선을 쬐어준다고 하면 병원에서 흔히 진행하는 뼈의 골격 구조를 알기 위한 엑스레이 검사가 떠오르실 것 같은데요, 궁극적인 맥락은 이와 유사한 것이 맞습니다. 다만, 그 대상과 목적이 화합물의 시료와 그 구조를 규명하기 위한 것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Q. 연구를 수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어떻게 해결했나요? 아무래도 가속기와 같은 연구 자원이 한정된 빔타임을 여러 연구자가 공동으로 배정받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정된 빔타임 시간에 최대한 효율적인 작업을 수행하여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또한, 정해진 빔타임 시간까지 광결정학 실험에 적합한 시료를 준비한다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연구단의 김동욱 박사님께서 방사광 가속기를 활용한 실험을 이전에도 진행하시던 분이었기 때문에 광결정학 실험을 위한 셋팅 부분에서는 큰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광결정학 실험에 적합한 시료를 찾아 나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큰 어려움이었는데, 가속기 빔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실험이 가능할 것 같은 시료들을 최대한 준비하여 광결정학 실험을 수행하였습니다. 거듭된 실패 끝에 로듐 복합체의 구조를 보완해 가며 2022년 11월에 로듐-아실나이트렌의 구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동료 연구자분들과 주변 교수님들께서 많은 조언을 해 주셨고, 빔타임 시간 공유 등과 같은 현실적인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감사하게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Q. 연구 성과를 활용하면 어떤 차세대 촉매를 개발할 수 있나요? 아민화 반응의 핵심 중간체 모습을 포착한 것이 앞으로 일상생활에 어떻게 변화를 줄지 궁금합니다. 본 연구가 가지는 의의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는, 기존에 관찰하기 어려웠던 반응성이 높은 중간체를 고체상태에서 관찰해 내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촉매 반응의 핵심 중간체의 구조를 규명해 내 향후 반응이 일어나는 기작을 설명할 때, 큰 통찰을 제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해당 실험에서 이해한 로듐-나이트렌 중간체의 반응 성질을 이해함으로 기존에 관찰하지 못한 새로운 반응을 개발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합니다. 두 번째로는, 반응물질에서 생성물이 생기는 전 과정을 단계별로 포착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촉매화학 분야에서 빠르게 일어나는 반응 과정에 대해 반응이 일어나는 과정을 단계별로 촬영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로 이어진다면, 촉매 반응 개발 과정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 1] 아민화 반응의 핵심 중간체 포착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은 유용 물질인 질소화합물을 생성하는 아민화 반응 도중 생성되는 중간체 ‘전이금속-나이트렌’의 구조와 성질을 세계 최초로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Q. 앞으로 어떤 연구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앞으로도 촉매화학 분야에서의 난제로 손꼽히는 연구를 수행하고 싶습니다. 최근 들어 대두되고 있는 에너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이산화탄소나 메탄가스와 같은 온실가스를 고부가가치 물질로 전환시키는 연구가 중요합니다. 또한, 플라스틱과 같이 잘 썩지 않는 물질을 다시 원료 물질로 되돌리는 연구 역시 환경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촉매화학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여 환경문제에 기여할 수 있는 과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Q. 추후 연구에 필요한 지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성과도 혼자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것이었는데, 특히, 결정구조해석을 담당하신 김동욱 연구위원의 도움이 가장 든든한 지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추후에도 좋은 동료 연구자를 만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해당 연구의 방향성이나 방법론은 사실 2019년 정도에 정립하여 연구를 수행하였습니다. 하지만 본 연구 결과가 세상에 공개되기까지는 4년이라는 꽤나 긴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긴 호흡의 연구를 수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단기적인 성과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큰 임팩트를 주는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장, 부단장님과 기초과학연구원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순수하게 우리나라의 자원을 가지고 이러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23.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