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가 과량의 에너지원에 노출되면 어떤 변화가 발생할까요? 동물이 필요 이상으로 영양분을 많이 섭취하면 체내에 지방의 형태로 축적되듯이, 세포도 과량으로 흡수된 에너지원(포도당, 지방산 등)을 중성 지질로 변환해 지질 방울(Lipid droplet)이라고 불리는 세포 소기관에 저장하게 됩니다. 그동안 지질 방울은 여분의 중성 지질을 저장하는 단순한 에너지 저장소로 알려졌었습니다.
하지만 지질 방울이 단순히 에너지를 저장하는 역할을 넘어 지질 대사 조절, 세포 보호, 신호 전달, 단백질 저장 및 조절 등 다양한 생리적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밝혀냈습니다. 특히 지질 방울의 양, 크기, 분포가 비만, 알코올성 지방간 등 현대 사회에서 유행하는 대사 질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지질 방울 연구는 질병의 초기 진단과 진행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중요한 도구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세포 내 지질 방울을 분석하는 가장 직관적인 접근법은 현미경으로 직접 관찰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형광 현미경법이 지질 방울 관측을 위해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물로 이뤄진 세포 내에서 소수성을 띠는 지질 방울 내부는 선택적으로 형광 염료를 염색하기 용이하고, 강한 형광 신호를 생성해내 지질 방울의 양과 크기를 빠르게 관찰하는 데 매우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형광 현미경을 이용한 지질 방울 분석은 내부 지질 성분과 양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형광 염료의 특성상 특정 지질 성분에 대해 정량적인 분석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형광 염료는 광표백 현상을 겪어, 시간이 지나면서 형광 신호가 약해지거나 사라지게 돼 세포에서 지질 방울의 대사 과정을 장기간 연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형광 현미경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다양한 대체 현미경 분석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적외선 현미경은 시료가 적외선 빛을 흡수하는 현상을 분석해 시료의 성분과 양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효과적인 분석 방법입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은 세포 내 마이크로미터 이하 크기의 지질 방울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적외선 현미경 개발에 힘써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광열 현상에 주목했는데, 광열 현상은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한 물질이 흡수한 에너지를 열로 전환하는 현상입니다.
광열 현상을 적외선 현미경의 공간 분해능 향상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간단한 광학 지식이 필요합니다. 광학 현미경에서 두 입자를 구분하는 능력은 광원이 시료에 집광될 때 생성되는 초점의 크기에 의해 결정됩니다. 초점이 작을수록 더 작은 입자를 구분할 수 있는데, 초점의 크기는 사용된 광원의 파장에 비례합니다. 일반적인 적외선 현미경은 파장이 긴 적외선 광원을 사용해, 공간 분해능이 수 마이크로미터 수준에 그쳐 세포 내 작은 지질 방울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외선 광열 현미경(Infrared photothermal microscopy)에서는 파장이 다른 두 가지 레이저 광원을 사용해 적외선 현미경이 가진 공간 분해능 한계를 극복했습니다. 하나는 분석 대상의 적외선 흡수에 따른 광열 효과를 유도하는 적외선 광원이며, 다른 하나는 광열 현상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한 가시광 영역의 광원입니다. 이 방식에서는 적외선 광원이 단지 광열 현상을 유도하는 데 사용되고, 짧은 파장을 가진 가시광원이 발생한 광열 현상의 정도를 감지합니다. 따라서 공간 분해능은 가시광에 의해 결정돼 수백 나노미터 크기의 작은 지질 방울도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림 1] 적외선 광열 현미경의 원리
(a) 적외선 광원과 가시 광원을 동일한 광학계로 집광할 때 초점의 크기 비교. 일반적으로 가시광선 영역의 빛은 대략 400nm에서 700nm 영역에 존재해 중적외선 대비 매우 작은 초점을 형성할 수 있다.
(b) 분자 내 화학 결합의 적외선 흡수 및 비복사 이완 과정 상의 에너지 변화 도표. 분자 내 화학 결합은 특정한 에너지 준위를 갖고 있으며, 동일한 에너지를 갖는 파장의 적외선 광원만을 선택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c) 적외선 광원을 일시적으로 조사했을 때 시간에 따른 시료 주변 온도의 변화 양상. 적외선 광열 현미경에서는 특정 주기로 매우 짧은 시간 동안 광열 효과를 반복 발생시킨 후 주파수 영역에서 발생 신호를 선택적으로 분리하는 방식으로 신호 감도를 향상시킨다.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은 적외선 광열 현미경 분석법을 활용해 살아있는 세포가 과량의 지방산에 노출될 때 개별 지질 방울에서 중성 지질 합성이 촉진되는 현상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연구진은 중성 지질 합성을 효과적으로 추적하기 위해 중수소로 치환된(탄소-중수소 결합을 포함한) 지방산을 사용했습니다. 특히 자체 개발한 이중 색상 광열 현미경법을 도입해, 새로 합성된 중수소로 치환된 중성 지질과 기존 중성 지질에 해당하는 광열 신호를 서로 다른 주파수 영역에서 발생시키고, 두 신호를 동시에 간섭 없이 분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를 통해 측정된 신호와 적외선 흡수 계수를 바탕으로 개별 지질 방울에서 두 중성 지질 성분의 상대 비율 변화를 시간에 따라 추적하며 지질 합성 과정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림 2] 이중 색상 적외선 광열 현미경을 통한 지질 방울 내 지질 합성 관측
(a) 과량의 지방산 처리 시 세포 내 중성 지질 합성 촉진 메커니즘
(b) 중수소로 치환된 지방산 처리 후 시간에 따른 이중 색상 적외선 광열 이미지. 기존 중성 지질 성분은 초록색으로, 새롭게 합성된 중성 지질은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중성 지질 합성이 촉진되면서 시간에 따라 지질 방울의 수가 증가하며 지질 방울의 색이 붉게 변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c) 중수소로 치환된 지방산 처리 후 시간에 따른 지질 방울의 대표 적외선 스펙트럼. 새롭게 합성된 중성 지질이 포함하고 있는 탄소-중수소 결합을 나타내는 2000-2200 cm-1 영역의 적외선 흡수 신호는 증가하고, 기존 중성 지질이 포함하고 있는 탄소-수소 결합을 나타내는 2800-3000 cm-1 영역의 흡수는 감소함을 확인할 수 있다.
지질 방울은 이제 단순한 에너지 저장소를 넘어 세포 내 중요한 생리적 기능을 담당하는 중요한 소기관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관련 연구는 지질 방울이 비만, 알코올성 지방간 등 현대 사회에서 유행하는 대사 질환과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질 방울 연구는 질병의 초기 진단과 진행 상태 모니터링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의 연구 결과는 적외선 광열 현미경을 이용해 지질 방울 내 중성 지질 합성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음을 입증했고 이로써 지질 방울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은 향후 질병의 이해와 개인화된 치료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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