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남창희 IBS 초강력레이저과학연구단장
"세계 최고 시설로 인류에 공헌하는 성과 만들 것"
"초고출력 레이저를 이용하면 여태껏 인류가 도달하지 못한 극한상황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누구도 보지 못한 현상을 새로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습니다."
12일 GIST 극초단광양자빔특수연구동에서 만난 남창희 IBS 초강력레이저과학연구단장(GIST 교수)은 "레이저를 이용한 연구는 ▲기술개발 ▲연구·실험 ▲이론 설계 및 검증 등이 함께 진행돼야 하는 집단연구"라며 "IBS 연구단에 선정돼 비로소 체계적인 연구단을 꾸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연구 장비 준비단계였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된 것"이라며 이 같은 목표를 제시했다.
남창희 단장은 서울대와 KAIST에서 학·석사과정을 거친 뒤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프린스턴 플라즈마물리연구소를 거쳐 1989년부터 KAIST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12월 GIST로 자리를 옮겼다. GIST가 지난 9년 동안 600억 원을 들여 2010년 최고 출력 1PW(페타와트, 1000조W) 레이저에 이어 2012년 1.5PW 시설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우선 최고출력 단위인 PW가 낯설다. 남 단장을 비롯해 연구원들은 웃으며 '60W 형광등 20조개를 동시에 켠 밝기'라고 설명했다.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다. 또 전 세계 발전용량을 모두 합치면 3∼4TW(테라와트, 1조W)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에서 발전 가능한 전기를 총 동원해도 도달할 수 없는 세기의 빛이다.
이를 이용해 ▲TeV 입자가속 ▲양자전자동역학 ▲실험실 우주물리 ▲암흑물질 연구 등에 도전할 수 있다. 전기장의 경우 가속기를 이용해 10만V/cm를 만들 수 있지만 레이저를 이용할 경우 1조V/cm의 세기를 구현할 수 있다. 초전도자석을 이용해 100만G 세기 자기장을 만들 수 있지만, 레이저는 100억G 이상까지도 만들어낸다. 최고 온도 역시 핵융합발전용 연료기체 용기인 토카막이 10억K인 반면 레이저로 도달할 수 있는 온도는 1조K에 달한다. 인간이 생각하기도 힘든 극한의 조건을 구현할 수 있어 아직 누구도 접근하지 못한 우주의 신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프랑스, 미국, 캐나다, 독일, 영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이 초강력 레이저 개발을 통한 연구에 매진하는 이유다. 하지만 현재까지 PW 레이저 장비를 적극적으로 연구에 응용하는 데 있어서는 한국이 제일 앞서있다. 한국 과학계에 대한 외국의 시선도 180도로 변했다.
연구원들은 이구동성으로 PW 레이저 장비 구현 이전, 학계에서 한국은 철저한 변방으로 취급됐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하지만 세계 최고 출력의 연구 장비를 자체 설계해 구현한 뒤에는 각종 학회에서 외국 학자들이 먼저 다가와 연구결과에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듣는다. 또 장비를 이용한 공동연구를 먼저 제안하고, 장비 사용 가능 여부에 대한 문의가 줄을 잇는 상황이라고.
남 단장은 "PW급 연구 장비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유럽 등지에서 우리를 벤치마킹하려고 한다. 자부심과 함께 격세지감이 느껴진다"고 소감을 밝히며 "연구 시스템은 우리 과학자들에 의해 설계되고 구축됐지만 일부 부품에 대한 해외 의존도가 높은 만큼 세계 최강의 연구팀이 되기 위해서는 이를 순조롭게 활용하도록 레이저 엔지니어, 기술자 등의 뒷받침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 단장이 이끄는 초강력레이저과학연구단은 ▲레이저그룹 ▲고밀도 레이저 플라즈마 그룹 ▲저밀도 레이저 플라즈마 그룹 ▲이론그룹 ▲아토과학그룹 등 총 5개 연구그룹으로 구성된다.
레이저그룹은 관련 기술 개발을 담당한다. 현재 1.5PW의 최고 출력을 4PW로 향상시키는 것을 진행 중에 있다. 또 현재 30펨토초(1000조분의 1초)인 펄스폭을 20펨토초로 축소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물론 주요 부품의 국산화 노력도 경주한다.
고밀도 레이저 플라즈마 그룹은 고체, 저밀도 레이저 플라즈마 그룹은 기체가 주 연구 대상이다. 이론그룹은 실험에 앞서 레이저 플라즈마 이론을 시뮬레이션하고 장비 성능 향상에 따라 추가 발생 가능한 현상 등을 예측한다.
남 단장은 "처음 레이저가 발명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쓸모가 뭐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상 못할 정도로 큰 파급효과를 남겼다"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시설과 연구팀을 꾸려 지원을 받는 만큼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성과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레이저가 발명된 1960년 이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중 20여 명이 레이저 개발 혹은 레이저를 활용한 연구 업적으로 영광의 무대에 섰다. 레이저 발명 이후 노벨물리학상 수상을 통해 레이저가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주요 수단이 됐음을 증명한 셈이다.
남 단장은 "이종민 GIST 교수가 초강력 레이저 연구 장비 구축을 주도하고 은퇴했다. 후학들을 위해 선배 학자가 일류 연구토대를 마련해준 것"이라고 감사의 뜻을 전하고 "이제 얼마나 좋은 성과를 내느냐는 후학들의 몫이다. 최고 수준의 장비를 통해 최상의 성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연구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연구단장으로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한편 그는 최근 과학계 일선에서 불거지고 있는 IBS 논란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했다. 다양한 상상력을 살리는 저변 확대도 옳지만 집단융합으로 추진하는 대형 프로젝트 역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남 단장은 기초과학 지원을 '사막에서 나무 키우기'에 비유하며 "표시는 나지 않지만 계속 물을 공급받으며 생존에 성공한 나무는 뿌리가 튼튼하다"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경우 어떤 답이 있을지, 어떻게 찾아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접근하는 풀뿌리 연구 지원도 당연히 필요하고, 집단융합연구를 할 경우 더 큰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기에 이에 대한 길을 개척하는 것도 한국에서 도전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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