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지하실험연구단, 하루 20GB 자료 분석하며 '윔프' 기다려
"존재 확인이 주요 연구…10년 기다림에도 좌절보단 희망 커"
17일 오전 대관령에 가까워지면서 주변 경치가 변했다. 남쪽에서는 봄소식이 들려오는데, 이곳은 온통 눈밭이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 외에는 야생동물의 흔적조차 없는 처녀설이다. 마법의 문 인양 대관령터널을 지나자 날씨마저 바뀌었다. 청명했던 시야는 흩날리는 눈발과 짙은 안개에 막혔다.
영동지역 폭설로 일정을 미뤘던 IBS 지하실험연구단(단장 김영덕)을 찾아 가는 길이다. 녹록치 않다. 평소 자주 다녀 익숙한 길임에도 안개와 곳곳의 눈길이 새롭게 여겨진다. 마치 오늘 찾아 가는 IBS 지하실험연구단의 연구과정을 이 길을 통해 넌지시 일러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IBS 지하실험연구단은 '암흑물질' 중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윔프(WIMP : 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를 연구하고 있다.
암흑물질이란 세상에 존재하되, 사람들이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연구단은 윔프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연구를 진행 중이다. 윔프는 고 이휘소 박사가 처음으로 제시한 암흑물질 후보 입자이다. 질량이 수소원자보다 무거울 것으로 생각되지만, 확인된 것이 없고, 그 정체를 확인하면 천체물리학에서 일대 혁명에 가까운 성과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한 핵심 연구시설이 강원도 점봉산 양양양수발전소 지하 700m에 있다. 양수발전소 터널 입구부터 약 2㎞ 정도 내려가면 왼편에 2층 규모의 조립식 건물이 나온다. 실험실이다. 2층은 주조정실이고, 1층에 윔프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검출기가 칠흑 같은 암흑 속에 놓여있다.
검출기는 김영덕 단장이 김선기 중이온가속기사업단장과 김홍주 경북대 교수와 함께 KIMS(Korean Invisible Mass Search experiments)를 구성하고 암흑물질 연구를 시작하면서 자체 제작했다. 양쪽에 광센서가 부착된 CSI(세슘·요오드) 결정체 12개가 핵심이다.
강운구 지하실험연구단 연구위원은 "윔프는 전자기적 상호작용이 없고, 오로지 핵과 아주 약하게 충돌한다고 알려져 있다"면서 "윔프가 지나가면서 CSI 결정체의 핵과 충돌한 흔적을 잡기 위한 장비"라고 소개했다.
가로 24㎝, 세로 32㎝, 길이 30㎝에 불과한 CSI 결정체 묶음을 동과 폴리에틸렌, 납, 액체섬광검출기 등이 둘러싸고 있다. 각각 10㎝, 5㎝, 15㎝, 30㎝ 두께다. 납은 30톤, 동은 3톤이 투입됐다. 철통같은 밀폐를 위해 가로·세로·높이 3m, 무게 35톤의 덩치가 됐다.
전기적 상호작용 없는 '윔프'…무거운 핵과 충돌 순간 파악이 관건
자연방사능·우주입자 영향 최소화 위해 지하에 검출시스템 설치
김영덕 단장은 "CERN 등 거대 가속기를 가진 연구진들도 암흑물질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우리 연구환경에서 첨단 입자가속기를 국내에 기대할 수 없어 가속기 없이 연구하는 방향을 잡은 것"이라고 검출기 제작 동기를 밝혔다.
김 단장은 "암흑물질 검출기는 공기 중의 라돈을 비롯한 자연방사능과 우주입자(muon)에도 반응하여 윔프 흔적과 비슷한 에너지대의 반응이 나올 수 있다"면서 "환경방사능과 우주입자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하를 택했다. 윔프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는 순수한 물질, 화학적으로 불순물을 모두 제거하는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액체섬광검출기가 우주입자를 측정하며 차단하고, 납은 외부 환경방사능, 폴리에틸렌은 중성자, 동은 광자를 차폐한다. 공기 중 라돈의 영향도 제거하기 위해 내부는 질소로 채워졌다. 광센서 손상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검출기가 있는 방에는 일반형광등도 설치하지 않았다. 이론상으로는 '전자기적 상호작용'이 없는 윔프 만이 모든 차폐막을 뚫고 CSI 결정체와 충돌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자연방사능을 완전히 막기란 불가능하다. 검출기 내부 방사능이 있기 때문이다. 광센서가 검출한 신호 5만개 정도가 하나의 파일에 저장되는데, 1기가바이트(Gbyte) 용량이다. 하루에 이런 파일이 약 20개 생성된다. 이를 현장에 있는 강운구 연구위원과 IBS 본원에 있는 연구진이 분석한다.
연구팀은 IBS 연구단 선정 이전인 2003년부터 이곳에서 실험을 진행해오고 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청평양수발전소 지하 실험기간까지 포함하면 13년 동안 한 우물만 파왔던 셈이다.
강 연구위원은 “지하실험 연구단에서는 암흑물질 탐색외에도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베타붕괴를 찾는 실험도 진행되고 있고, 이 실험에서는 핵의 특수한 붕괴를 측정하여 중성미자의 성질을 규명하는 것이 목적인데, 찾고 있는 특수한 붕괴가 현재로는 1025 년 이상 걸려서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단에서는 1027 년 까지 측정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우주의 나이가 1.37x1010 년 인것과 비교하면 정말 긴 시간이다.”고 말했다.
김영덕 단장은 "자연방사능 1조 개 시그널 중 암흑물질 시그널이 하나 이하일 것으로 보면 된다." 면서 "가속기가 강한 충돌로 입자를 생성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임무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밝혀지지 않은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혀서 우주 진화과정과 미래를 이해하는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암흑물질 연구는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홈스테이크광산의 LUX(럭스), 이탈리아의 DAMA, 미국의 제논 실험이 대표적이며, 이밖에도 일본과 중국 등 10여개 연구그룹이 진행 중이다.
1998년 이탈리아 DAMA 실험팀이 '윔프 시그널을 측정했다'고 밝혔지만, 지난 16년 동안 누구도 이를 재현하지 못했다. 김 단장팀은 2007년 이탈리아 연구팀의 실험결과는 윔프 신호가 아닐 수 있다라는 주장을 물리학계 최고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IBS 지하실험연구단은 지난해 11월 삼척시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미로면 두타산 지하 1400m 지점에 우주입자연구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현재보다 연구실 규모를 약 30배 확대하고, 50여 명이 상주하며 암흑물질 탐색과 이중베타붕괴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김영덕 단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손바닥 위로 암흑물질 입자 10만개가 지나가고 있을 수 있다"면서 "다시 한 번 이탈리아 연구진이 검출했다고 주장하는 암흑물질 발견 재현 실험에 나선다. 암흑물질을 찾아 어디에 쓰냐고 묻는다면 사실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모르는 것을 찾아 풀어가는 것이 과학자의 임무다.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의지를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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