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체교정연구단 단장 김진수 서울대 교수
"유전체교정 기술로 세상을 바꾼다!"
▲ IBS 유전체교정연구단 김진수 단장이 최근의 연구성과를 발표한 유명 저널을 앞에 두고 그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Nature Biotechnology)', '네이처 리뷰 제네틱스(Nature Review Genetics)', '네이처 메서드(Nature Methods)'.
"유전체교정이라는 새로운 실험 기법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며 다양한 분야에 확산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를 통해 생명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을 할 뿐 아니라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고 동식물의 유전체를 개량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생명공학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세상을 바꾸는 것이 목표입니다."
서울대 화학부 건물에서 만난 IBS 유전체교정연구단의 김진수 단장은 연구단의 목표를 야심차게 밝혔다. 그는 지난 3월 18일 유전체교정연구단의 단장에 취임했다. 유전체교정연구단은 IBS에서 생명공학 분야가 아니라 융합 분야로 분류돼 있다. 김 단장은 "생화학의 한 분야에서 시작된 유전체교정기법이 생명과학을 넘어서 제약산업, 농축산업, 종자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융합 분야로 분류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전체교정 분야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는 김 단장으로부터 이 분야의 연구현황, 연구단의 성과, 사업화 가능성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에서 툴젠(ToolGen, Inc.)이란 생명공학 벤처를 공동 설립했다가 서울대 화학부 교수가 됐다.
전 세계의 주목 받는 '3세대 유전자가위' 개발
▲ 김 단장이 3세대 유전자가위 RGEN에 대한 연구성과의 의의를 밝히고 있다. 이 연구성과가 실린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논문은 지난해 국내 연구자가 발표한 5만 4000여 편의 논문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으로 확인됐다.
유전체교정 기법은 최근 각광받기 시작한 분자생물학의 신기술이다. 유전체교정은 유전자가위라는 효소를 이용해 유전체를 '수술'하는 것이다. 유전자가위는 DNA를 인식해 잘라주는 효소로 세포 내의 유전체에서 원하는 곳을 자르고 교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질병과 관계된 유전자를 제거할 수도 있고, 혈우병처럼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생기는 질병의 경우 그 돌연변이 부분을 잘라서 교정할 수 있으며, 치료용 유전자를 원하는 곳에 안전하게 삽입시킬 수도 있다.
김 단장이 유전체교정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MIT에서 박사후과정(postdoc)을 밟을 때 이 분야의 선구자인 칼 페이보(Carl Pabo) 교수의 지도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는 "페이보 교수 실험실에서 1세대 유전자가위의 소재가 되는 징크 핑거라는 DNA 결합 단백질을 연구했다"며 "이를 바탕으로 후에 2세대, 3세대 유전자가위를 개발했고, 그러면서 이 분야에 나름 기여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2013년 김 단장 연구팀은 한 해 동안만 '네이처 메서드(Nature Methods)',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Nature Biotechnology)' 등 세계적 저널에 4편의 논문을 게재했는데, 이 가운데 3월 3일자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실린 논문은 지난해 국내 연구자가 발표한 5만 4000여 편의 논문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으로 확인됐다. 그는 "3세대 유전자가위인 RGEN을 개발해 유전체 교정에 적용한 이 논문은 지금까지 200회 이상 인용됐다"며 "상위 0.01%에 해당하니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이라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개발된 3세대 유전자가위가 1세대, 2세대 유전자가위만 사용했을 때 소수만이 독점했던 유전자교정 기법을 '민주화'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만큼 전 세계의 많은 실험실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1세대, 2세대 유전자가위는 단백질이 DNA를 인식해서 DNA를 자르게 되는데, 3세대 유전자가위는 RNA 유전자가위로 RNA가 DNA 염기서열을 인식한다. 김 단장은 "RNA와 DNA가 상보적인 염기쌍을 이루기 때문에 RNA만 교체하게 되면 3세대 유전자가위를 쉽게 만들 수 있다"며 "1세대, 2세대 유전자가위에 비해 만들기 쉬워 학계의 관심이 굉장히 크고 전 세계 10만 개의 실험실이 다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김 단장은 한양대 김형범 교수와 함께 맞춤형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유전체교정 기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네이처 리뷰 제네틱스(Nature Review Genetics)' 5월호에 게재했다. 이에 따르면 2003년에 1세대 유전자가위인 징크 핑거 뉴클레아제(ZFN)가 유전체 교정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2011년 말에 개선된 2세대 유전자가위인 탈렌(TALEN)이 발표됐으며, 2013년 초에는 김 단장 연구팀과 미국 연구진들이 각각 독자적으로 3세대 유전자가위인 RGEN을 이용한 유전체교정 기법을 보고했다.
김 단장은 "1세대 유전자가위는 크기가 작아 유전자치료를 할 때 편리하고, 2세대 유전자가위는 1세대에 비해 좀 더 정밀하게 교정할 수 있다"며 "3세대 유전자가위는 무엇보다 만들기 쉽고 가격이 저렴해 누구나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불과 3년 전에 1세대 유전자가위를 연구용으로 쓰는 데 2만 5000달러(약 3000만 원)의 비용이 들었는데, 3세대 유전자가위는 60분의 1 수준인 50만 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가모, 셀렉티스, 그리고 툴젠
▲ 연구단의 실험실에서 연구원과 의견을 나누는 김 단장. 연구단에서 개발한 3세대 유전자가위 기법은 전 세계 실험실에서 사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는 1999년 툴젠을 공동 설립해 2005년까지 최고경영자(CEO) 및 최고과학책임자(CSO)로 역임했다. 어떤 계기로 회사를 설립한 것일까.
"미국에서 공부하며 보니까 암젠(Amgen), 젠자임(Genzyme) 같은 회사가 작은 실험실 벤처로 시작하더군요. 그런 회사들이 매출도 없는데 연구개발 업적으로 바탕으로 나스닥에 올라가고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면서 10년 사이에 삼성전자보다 더 큰 회사가 되더라고요. 기초과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산업을 창출한 것이죠. 사실, 인적 자원과 자본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겠더라고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투자받기가 쉽지 않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2005년 서울대로 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서울대에서 개발한 기술(3세대 유전자가위)을 바탕으로 툴젠이 사업화를 해서 지금은 회사 상황이 굉장히 좋아졌고, 특히 올해는 코스닥의 전단계라고 할 수 있는 코넥스에 올라갔다.
그는 "툴젠의 장점은 1‧2‧3세대의 유전자가위를 모두 개발한, 전 세계에서 유일한 회사이며, 지난해에는 3세대 유전자가위를 세계 최초로 사업화했다는 것"이라며 "툴젠은 가능성이 높은 회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세대, 2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을 바탕으로 한 해외 기업의 사례를 소개했다.
1세대 유전자가위를 개발한 회사인 미국의 상가모(Sangamo)는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고, 2세대 유전자가위를 바탕으로 한 프랑스의 셀렉티스(Cellectis)는 한 달 전쯤에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와 2조 원대 계약을 했다고 한다. 그는 "화이자가 2세대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항암치료제(세포치료제)를 개발하겠다고 계약한 것인데, 이는 사상 유래가 없는 것"이라며 "그러면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을 보유한 툴젠 같은 회사는 더 큰 계약을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툴젠은 미국, 유럽 등에서 많은 연락을 받고 있고, 지난해에는 유럽의 종자회사 키진(Key Gene)과 계약하기도 했다.
"창조경제의 시작은 기초과학"
김 단장은 3세대 유전자가위를 개발한 과정에서 기초과학의 연구방식과 그 중요성을 깊이 있게 깨닫게 됐다.
"학교에서는 좀 더 장기적 관점에서 원천기술을 개발할 수 있고, 당장의 문제 해결이나 산업적 활용을 전제로 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순수하게 과학기술자의 호기심을 추구하는 모험적인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렇게 호기심을 추구하는 연구를 한 덕분에 진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3세대 유전자가위가 바로 그런 경우였지요."
3세대 유전자가위의 메커니즘은 세균의 면역체계에서 비롯됐다. 일부 세균은 파지라는 바이러스의 공격에 대응해 크리스퍼(CRISPR) 시스템을 갖추게 되는데, 다시 파지가 공격하면 이 시스템이 작동한다. 즉 Cas9이라는 단백질과 작은 RNA가 결합해 그 RNA에 들어맞는 상보적인 파지의 DNA를 잘라 없애는 것이다.
김 단장은 "이런 세균의 크리스퍼 시스템에서 RNA만 교체해 도입함으로써 인간 및 동식물의 유전체교정에 사용할 수 있는 3세대 유전자가위를 개발하게 됐다"며 "이것은 인간 질병 치료와는 무관해 보이는 미생물의 면역체계를 연구하면서 얻은 결과인데, 유전병, 암 등 다양한 인간 질병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으로 큰 기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 김 단장이 DNA 모형을 앞에 두고 유전체교정 기법을 설명하고 있다. RNA를 이용한 3세대 유전자가위 RGEN은 세균의 면역체계에서 비롯됐으며, 연구단의 기법은 DNA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는 또 "기초과학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원동력"이라며 "창조경제의 시작은 기초과학이며, 기초과학 없이 창조경제를 하겠다는 것은 사상누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연구단은 최근 자체 기술로 3세대 유전자가위를 인간 배아줄기세포에 전달해 정밀하고 효과적인 유전체 교정에 성공했다. RNA 유전자가위를 구성하는 Cas9 단백질을 정제해 작은 RNA 분자인 '가이드 RNA'와 결합시킨 후 전기 자극을 가해 세포 내에 직접 전달함으로써 유전체 교정을 효과적으로 해 낸 것이다. 이 내용은 올해 '게놈 리서치(Genome Research)' 6월호의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그는 "우리 방법은, Cas9 단백질을 직접 세포에 도입하는 대신 이를 지정하는 플라스미드 DNA를 사용하는 일반적인 방법과 달리, 아예 DNA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성 면에서 유리하고 가축, 농작물 종자에 적용했을 때 GMO 이슈를 피해갈 수 있다"며 "기존 육종 방법보다 안전하고 정교하며 훨씬 빠른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개발한 유전체교정 방법은 종자산업과 제약산업에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을 겁니다. 신약 개발이라는 경쟁에서 철기를 써야 하는데, 석기를 쓴다면 도태되겠죠. 이미 해외 제약사들은 활발히 움직이고 있어요. 유전체교정 기술로 세상이 완전히 바뀔 겁니다. 우리 몸의 유전자뿐 아니라 가축, 농작물, 어류, 애완동물의 유전자도 교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질병 치료보다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 데 먼저 쓰일 겁니다."
유전체교정 기술로 세상이 바뀔 때 IBS 유전체교정연구단이 주역이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