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토슈 그쥐보브스키 인공지능 및 로봇 기반 합성연구단장
“AI의 이름 딴 화학·촉매 반응도 나올 수 있다”
‘바르토슈 그쥐보브스키’는 IBS 첨단 연성물질 연구단의 그룹리더로 익히 알려진 과학자다. 나노와 미세영역 화학 시스템 분야 선구자로 컴퓨터 기반 합성의 대가다.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발표한 20여 편을 비롯해 논문 300여 편을 발표했으며 그의 연구는 3만 7000회 이상 인용됐다.
그가 인공지능 및 로봇 기반 합성 연구단장으로 새롭게 선임됐다. 그쥐보브스키 단장을 울산과학기술원 내 위치한 연구단에서 직접 만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었다.
IBS 신규 단장으로 선임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왜 인공지능 및 로봇 기반 합성 연구단인가요?
현대 과학은 데이터를 이용해 발전하고 있습니다. 빅데이터를 이용해 학습하는 인공지능(AI)이 대표적이죠. 저는 AI가 아직 인간이 찾아내지 못한 자연의 법칙을 연구할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혁명인 거죠.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고요. 단백질 분자 구조나 반응을 연구할 때 사용하는 AI, 알파폴드처럼 말이죠.
IBS의 새로운 연구단을 제안할 때 이런 학계의 흐름을 반영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화학 반응을 발견하기 위해 AI를 활용하려는 시도는 전세계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독일이나 네덜란드가 있는 유럽에서도 몇몇 연구팀이 꾸려지고 있죠.
아시아에서는 우리 연구단이 최초일 겁니다.
언제부터 AI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20년 전 쯤부터 화학에서 AI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화학에서 새로운 발견을 할 때 우연에 의존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알고리즘을 통해 화학 반응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1995~2003년에 미국 하버드대에 있었는데, 당시에 체스 AI를 만드는 사람들과 알고 지냈습니다. 체스를 두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화학 분자에 대해서도 학습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 끝에 2005년에 첫 논문을 발표했죠.
AI와 로봇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AI는 화학 실험을 진행하는 방향을 제안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분자 종류는 우주에 있는 원자 종류보다 많기 때문에 무작위로 시도한다면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할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AI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전 과학자들은 단순하게 자동화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험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무작위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죠.
AI가 학습을 한 뒤 로봇에게 어떤 실험을 해야하는지 방향성을 알려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로봇이 결과를 내면 AI는 이를 학습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되죠. 둘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순환하는 것처럼 작동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어떤 결과를 만들고 싶은 건가요?
우리 연구단은 새로운 화학 반응이나 촉매를 발견하고, 우리가 선택한 재료의 특징, 실험 조건, 거의 모든 것을 AI와 로봇을 활용해 연구합니다. 새로운 화학 반응이나 촉매를 찾고, 실험에 사용한 시약이나 효소에 따라 어떤 화학적 변화가 발생하는지 연구합니다. 보통 새로운 반응을 발견하면 발견자의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스즈키 반응(2010년 노벨화학상 수상)’ ‘그럽스 촉매(2005년 노벨 화학상 수상)’처럼요. AI를 활용하면 하나하나에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것에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은 반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연구단에서는 AI에게 그 공로를 돌리고 있습니다. 최근 논문에서는 새로 발견한 반응에 MACH-1, MACH-2로 이름을 붙였어요. 여기서 MACH는 ‘machine(기계, AI를 의미)’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실험하는 것보다 로봇을 활용하는게 유리한가요?
2024년에 19세기처럼 사람이 하나씩 할 순 없어요. 로봇은 이 과정을 빠르게 할 수있도록 돕습니다. 화학 반응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결과를 알려주죠. 박사후연구원이 하루에 실험을 3개 정도 진행할 수 있는데요. 로봇을 이용한다면 하루에 1000개 정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실험을 많이 할 수 있다면 화학 반응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할 수 있죠.
게다가 AI와 로봇을 활용하면 실험에 드는 자원도 줄일 수 있습니다. 실험 1개가 성공하기 위해선 수백 개가 넘는 실험이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용되는 용매나 독성물질의 양은 어마어마하죠. AI가 실험 방향을 결정하면 로봇은 낭비 없이 최소 용량으로 최대 결과를 만듭니다. 자원을 절약하는 것은 물론 환경적으로도 이점이 많습니다.
AI가 실험을 계획하고 로봇이 수행한다면 정작 과학자들은 무엇을 하나요?
우선 이 일이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실제로 AI가 아무리 발전한다고 한들 과학자의 할일이 없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증기 기관을 처음 발명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당시 사람들은 증기 기관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 생각해 기계를 파괴하는 운동까지 벌였습니다. 하지만 일자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변화했죠. 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학 반응과 촉매를 더 빠르게 만들고 실험할 수 있다면 새로운 질문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AI라는 도구를 사용해 새로운 지식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게 되는 거죠. AI가 방향성을 제시해도 그 결과를 따를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촉매를 예로 들어볼까요? 촉매는 에너지와 자원 소비를 줄여주는 중요한 물질입니다. 지난 400년 동안 대부분 우연히 발견됐죠. 새로운 촉매을 발견하기 위해 19세기처럼 계속 우연에 의지해야 할까요?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 만큼 새롭게 발전한 도구를 잘 이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연구단에서 사용하는 로봇은 어떻게 개발하나요?
우리 연구단에서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는 그동안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분야입니다. 당연히 딱 맞는 로봇을 만들어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죠. 연구단의 젊은 연구자들과 힘을 모아 제작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움직이며 실험해야 할지 직접 코딩하고, 제작도 하죠. 즉 화학 AI와 로봇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 우리만의 AI와 실험을 위한 로봇을 직접 설계, 제작하고 있습니다.
다재다능한 인재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앞으로 연구단을 어떻게 꾸려갈 계획인가요?
화학은 당연하고 AI와 로봇 공학에 관심이 있는 화학자가 함께하기를 바랄 수 있어요. 코딩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거죠. 인공지능 및 로봇 기반 합성 연구단은 이제 막 출범하는 연구단입니다. 앞으로 준비해야 할 부분이 많이 있어요. 3개 그룹, 60~70명 정도 규모를 계획 중입니다.
AI 및 로봇 기반 화학 연구에 있어 세계에서 첫 번째이자 최고 연구단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한국 연구자들이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나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로 갈 기회가 있어도 우리 연구단에 오고 싶도록 만들고 싶어요. 그만큼 독특한 연구단으로 만드려고 합니다.
1. 연구단에서 사용하는 로봇은 연구원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코딩하고 기계를 조립해 제작한
다. 2. 이렇게 만든 로봇은 한 번에 대용량으로 실험할 수 있어 과학자들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특별히 원하는 인재상이 있을까요?
혁신적인 성격을 가진 열정적인 인재를 원합니다. 과거의 방식과 상관없이 우리만의 새로운 연구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연구단에는 현재 9~10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모두 서로 다른 문화를 갖고 있는 만큼 서로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죠.
특히 규칙에서 자유롭길 원합니다. 규칙이 많으면 위계 질서가 만들어지고, 사고가 경직되기 마련이거든요. 우리 연구단의 유일한 규칙은 네이처나 사이언스처럼 과학자들에게 인정받는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고 큰 발견을 하는 것입니다.
과학의 아름다움을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거대 연구단을 이끄는 리더로서 스트레스도 많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소하나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면 운동을 합니다. 공간을 조금 투자해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연구단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풀수 있도록 사비로 탁구대를 장만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반년 동안 쓴 투자 중 최고 효율을 보인다고 생각해요. 사람들과 만나서 게임을 하며 이야기하고 소통할 수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