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정복의 마스터키 찾는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공식적으로 종료됐지만 연구현장 최전선에서는 끝나지 않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한 세기 전 스페인독감을 포함해 에볼라, 지카, 사스, 메르스, 코로나19까지 다양한 이종 감염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는 팬데믹을 겪었으며 그 발병 주기도 점차 짧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 팬데믹 출현을 가정하고 선제적으로 대비책을 찾을 사람들이 필요한 이유다.
코로나19 이후를 생각하기엔 다소 일렀던 2021년 기초과학연구원(IBS)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는 이 같은 임무를 부여받고 출범했다. 이들이 특히 지향하는 목표는 팬데믹 정복의
마스터키(만능열쇠)를 찾는 것이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 이른바 리보핵산(RNA) 바이러스로 불리는 신변종 바이러스들의 공통된 ‘급소’를 찾아 집중 공략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런 구상은 최근 3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의 자매지인 ‘사이언스 시그널링’ 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연구에 참여 중인 김현준 선임연구원은 스스로를 ‘오가노이드 박사’라고 소개했다. 실험실에서 쉽게 감염 실험을 할 수 있는 장기 모형 오가노이드를 연구 플랫폼으로 삼아 마스터키를 더 효율적으로 찾는 일에
앞장서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그는 “다양한 신변종 바이러스의 전사체와 후성전사체 데이터베이스를 확립하면 ‘팬(범용적인) 항바이러스 제제’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위해 20여종의 동물과 사람 장기를
모사한 오가노이드 생체 은행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오가노이드의 선행 연구가 된 개구리 배아 발생 연구를 대학생 때부터 20년간 매진한 ‘개구리 박사’였으며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유전자 지도를 완성해 학계 주목을 받은 김빛내리 IBS RNA
연구단장(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밑에서 RNA 연구의 기본기도 닦았다. 팬데믹 정복을 꿈꾸는 그의 연구 인생과 성과를 들어봤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IBS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 선임연구원 김현준입니다. 저는 원래 개구리 배아를 이용해 배아 발생 과정을 연구하는 ‘개구리 박사’입니다. 2003년 학부생 때부터
2022년까지 20년을 줄곧 이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이후 2022년까지는 김빛내리 RNA 연구단 단장님과 배아 발생 과정을 조절하는 RNA 후성전사체 기능을 연구했고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 RNA 바이러스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지금은 오가노이드 모델을 이용해 다양한 RNA 바이러스를 이해하는 연구를 수행 중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오가노이드 박사’로 불리고 싶습니다.
Q.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는 무슨 일을 하나요?
다음 팬데믹을 일으킬 신변종 바이러스를 발굴하고 선제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 감시, 세포 증식 메커니즘, 동물 모델에서의 바이러스성 질병에 초점을 맞춰 바이러스 기초 연구의 기틀을 다지고자 합니다.
또 감염병은 인류가 함께 당면할 과제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대한민국과 전 세계의 감염병 안보를 위해 연구 및 정책 측면에서 전 세계 연구기관 및 정책기관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습니다.
신변종 바이러스 발굴→세포 증식 메커니즘 연구→동물 모델에서의 바이러스성 질병 연구로 이어지는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의 3단계 연구 체제는 미지의 바이러스에 대한 기초 연구 역량을 강화하는 데 최적화해
있습니다. 정부와 국민의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으며 출범한 만큼, 우리 연구소 모든 구성원은 앞으로도 바이러스 기초 연구를 통해 인류의 감염병 안보에 공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Q. 선임연구원님은 주로 어떤 연구와 역할을 맡고 계신가요?
저는 바이러스 연구 3단계 중 두 번째, 즉 신변종 바이러스의 세포 증식 메커니즘에 대한 기초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을 감염시키는 이종 감염 RNA 바이러스 전체의 전사체와 후성전사체
데이터베이스를 확립하고자 오가노이드 모델을 활용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기관의 유전체 교정 연구단과 협력해 기도, 폐, 신장, 소장, 간, 유선 등 20여종의 야생 동물과 사람의 장기를 모사한 오가노이드의 생체 은행을 구축 중이죠. 이렇게 구축된 오가노이드를 다양한
바이러스를 발굴하고 그 특성을 연구하는 데 활용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이종 감염 RNA 바이러스의 전사체·후성전사체 데이터베이스를 확립하는 감염 모델로 오가노이드를 활용할 계획입니다.
Q. 코로나19 팬데믹이 이미 끝난 지금 바이러스 연구가 여전히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류는 스페인독감, 홍콩독감, 에볼라, 에이즈, 뎅기, 지카, 사스, 메르스,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종 감염 바이러스로 고통을 받았고 그 발병 주기는 점차 짧아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료됐지만 새로운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감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연구가 바탕이 돼 새로운 항바이러스 제제 개발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Q. 관련해서 지난달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시그널링’에 발표한 연구성과를 봤습니다.
코로나19를 포함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지속적으로 변이하며 인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백신과 치료제에 대항해서 계속 새로운 생체 침투 기작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발표한 논문은
‘KLK5’라고 하는 생체 효소가 다양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생체 침투에 공통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규명했습니다.
이를 통해 KLK5의 기능을 억제하면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 출현할 미지의 코로나 바이러스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안했죠. 이는 ‘항KLK5 제제’가 미래 팬데믹에 대한 선제적인
항코로나바이러스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현재는 항KLK5 제제를 새롭게 발굴하고 고도화해 부작용이 적은 효과적인 약물을 개발하는 연구를 국내외 연구기관들과 협력해 추진 중입니다.
Q.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코로나19의 오미크론 변이체가 병원성은 떨어지면서 전파성은 높아지는 현상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또 오미크론 변이체가 기존 코로나19 항바이러스 제제에 대해 더 큰 저항성을 갖는 원리가 무엇인지도 궁금했고요.
그렇게 시작한 이번 연구에서는 오미크론 변이체의 특이성을 새로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연구 과정에서 KLK5 효소의 중요성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KLK5가 코로나19 바이러스뿐 아니라 사스,
메르스 같은 다양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생체 침투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죠.
Q.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에 합류한 계기도 여쭙습니다.
배아 발생 연구와 RNA 연구를 통해 쌓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RNA 바이러스 전반에 관한 의미있는 연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팬데믹을 일으킨 바이러스 대부분은 RNA 바이러스였기에 미래의 팬데믹도 RNA
바이러스가 일으킬 가능성이 크죠.
지난 경력도 마침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에서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박사과정 지도교수인 한진관 전 포항공대 교수님, 드 로버티스(De Robertis)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님께 배운 개구리 배아 발생 연구는 오가노이드 모델 활용으로 이어졌고 김빛내리 단장님께 배운 RNA 연구는 RNA 바이러스 관련 연구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Q. 향후 연구계획은 무엇인가요?
다양한 신변종 바이러스를 발굴하고 그 특성을 조사하는 연구 플랫폼으로서 20여 동물 모델의 오가노이드 생체 은행을 구축했습니다. 앞으로 오가노이드로 다양한 이종 감염 RNA 바이러스 특성을 연구하고
궁극적으로는 바이러스 전체의 전사체·후성전사체 데이터베이스를 확립하고자 합니다.
Q. 연구과정에서 특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요?
오가노이드 생체 은행을 구축하려면 다양한 동물의 조직을 최초 1회에 한해 살아있는 상태로 확보해야 합니다. 저희는 국내 유수의 기관들과 협력해 야생 동물을 포함한 다양한 동물을 확보하고 그 조직을 얻어서
오가노이드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한된 채집 횟수로 인해 다양한 동물 조직을 확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Q. 그렇다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부 지원책도 있겠군요.
만약 동물원과 교류·협력해 자연사나 병사 직전·직후의 동물 조직을 얻을 수 있다면 오가노이드 생체 은행 구축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동물 관련 법으로 인해 동물원의 동물을 실험용으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면 감염병 연구에 한해서라도 법령을 완화하거나 새로운 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정부와 국회, 국민의 많은 관심과 지지가 필수적이죠.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앞으로 저희 연구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Q. 최근 딥마인드의 ‘알파폴드’ 같은 인공지능(AI)이 생명과학 분야에서도 갈수록 역할을 키우고 있습니다. 연구자로서 이 변화를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
한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체계적이고 방대한 질병 데이터를 축적해 왔습니다. 축적된 데이터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국내에 특화한 AI 모델 구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AI
모델을 오가노이드 연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 내 BI팀과 긴밀히 교류하며 공동 연구를 수행 중인데, 오가노이드 절편을 면역 염색한 이미지를 AI 모델로 학습해 개별 오가노이드의
특성을 분석하는 데 활용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IBS 앞마당에는 ‘기초과학 연구로 인류 행복과 사회 발전에 공헌’이라는 기관의 비전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문구를 볼 때마다 늘 가슴이 뜁니다. IBS의 기초과학 연구는 당장의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보다는 인류가
당면했거나 당면하게 될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감염병 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부터 전 세계 곳곳에서 누군가는 감시와 선제적 대응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쌓이고 쌓인 경험과 성과가 새로운 팬데믹을 헤쳐나갈 동력이 될 것입니다. IBS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는 점증하는 바이러스 및 감염병의 위협에 대응해 대한민국과 인류의 감염병 안보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