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세상에 없는 신기한 것들을 상상해 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2010)은 하늘에서 맛있는 음식이 비처럼 내려온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감독은 1978년 출판 이후 100만 부 이상이 팔린 동명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여, 누구나 해봤음직한 상상을 더욱더 선명하고 실감나게 스크린에 옮겼다.

그런데 이 유쾌한 애니메이션이 알고 보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과학자의 이야기라며 진지하게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 IBS 나노의학 연구단의 손민주 연구원이다. 그는 이 영화가 실제 연구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직면하는 문제와 그들의 고민을 보여줄 뿐 아니라, 과학자가 고려해야 할 연구의 파급 효과에 대한 경고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며 추천했다.

영화와 비슷한 실제 과학 연구의 세계

영화 속 주인공 플린트는 과학자로, 여러 가지 신기하고 유용한 물건들을 만들어보지만 거듭 실험에 실패한다. 그러던 중, 그가 힘겹게 만들어낸 '슈퍼음식복제기'가 하늘로 올라가 우연히 작동하면서 하늘에서 음식 비를 내리게 된다. 그는 일약 스타 과학자로 떠오르고,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음식을 받아먹으며 마냥 기뻐한다. 하지만, 출세에 눈이 먼 시장 쉐블론은 플린트에게 더 많은 음식 비를 내리도록 설득한다. 플린트는 시장의 설득에 넘어가 기계를 조작하고, 과부하가 걸린 슈퍼음식복제기가 엄청난 크기의 음식들을 쏟아내면서, 마을 섬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된다. 플린트와 친구들은 기계를 멈추기 위해 함께 힘을 모으게 된다.

▲ 마을 아이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오렌지 주스를 받아 마시고 있다. 이 장면은 동명의 원작 소설 내용 그대로를 재현한 장면 중 하나이다.

손 연구원은 거듭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플린트의 자세가 눈에 띄었다고 말한다. 슈퍼음식복제기가 우연히 하늘로 올라가 작동하게 된 것 또한 실제 과학적 발견의 우연성과 닮았다고 했다. 또한, 플린트가 실험을 위해 무단으로 전기를 끌어다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연구가 성공하려면 필요한 자원이 적절히 지원돼야 한다는 지적도 했다. 과학자에게 지역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사명감이 필요한 것도, 과학 기술이 맹목적으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도 모두 이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 과학 연구에서도 크고 작은 실패는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영화 주인공 플린트처럼 실패에 굴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죠. 어려운 실험은 결과를 얻기까지 많은 시련을 주지만, 성공했을 때 얻는 보람도 그만큼 큽니다. 저는 난이도를 조절하면서 조금씩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는 방법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슈퍼음식복제기, 과학적으로 추론해본다면

▲ 음식의 주문량이 많아짐에 따라 슈퍼음식복제기에 이상이 생긴다. 과부하가 걸린 기계 주변에 음식 찌꺼기들이 들러붙으면서 점점 거대해지는 모습이다.

영화상에서 주인공이 만든 슈퍼음식 복제기의 원리는 물 분자를 음식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물을 음식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에는 음식물에 필요한 탄소, 질소, 황 같은 원소가 없기 때문이다. 손 연구원은 만화 속 상상에 불과하다면서도 대기 를 구성하는 원소들을 잘 섞어서 단백질 등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언젠가 슈퍼음식복제기와 같은 발명도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슈퍼음식복제기가 망가지는 과정은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하는 과정과 닮았어요. 음식 주문량이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기계는 과부하 상태가 돼버렸죠. 세포들도 생체 신호가 지나치게 전달되면서 통제되지 않으면, 암세포로 변하는 것입니다. 결국, 고장 난 슈퍼음식복제기의 음식 배출구를 막아서 기계를 터뜨리는데, 이 장면 역시 항암제로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과정과 닮아 보입니다."

만화 같은 상상, 과학자라면 플린트처럼

이 영화가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주인공이 만화 같은 상상을 현실화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후반에는 슈퍼음식복제기가 섬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지만, 사실 초반만 본다면 주인공 플린트는 실제 과학자들이 부러워할 과학자다. 손 연구원이 어린 시절 꿈꿨던 상상은 무엇이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 손민주 IBS 나노의학 연구단 연구원은 형광 현미경을 통해 암세포의 신호전달 과정을 규명하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원하는 것을 주문하면 무엇이든 원자 수준에서 조립해 물건을 만들어내는 자판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대학원 면접 때도 교수님께 이런 꿈을 말씀드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교수님은 황당하셨겠죠. 학부 시절 처음에 화학과를 선택할 때도 분자 구조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좋았어요."

손 연구원은 '내가 암세포라면' 이라 가정하고, 암세포의 신호전달 과정이나 항암제로 암세포가 죽는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해내는 상상을 해본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분자 수준의 화학작용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다면, 사람들의 이해를 도움은 물론,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도 일반인들에게 자신의 연구를 설명하는 역량을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상상들을 앞으로 실현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연구 소신과 성과 사이에서 균형 맞추기

손 연구원은 형광 현미경을 이용해 단분자 수준에서 암세포 내 신호전달을 연구 중이다. 분자의 움직임은 보통 겹치고 뭉개져서 개별 분자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 어려운데, 단분자 실험으로는 단일 분자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손 연구원은 암 세포내 중요 단백질간의 신호전달 체계가 망가지는 원인과 암세포의 전이 과정, 신호전달 메커니즘 등을 상세히 밝히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어렸을 때의 꿈대로 줄곧 과학자의 길을 걸어온 그가 연구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일까. 그는 영화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의 결말을 이야기하면서 주인공 플린트가 과학자로서 쉐블론 시장의 꼬임에 넘어간 장면을 언급했다.

▲ 시장 쉐블론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플린트에게 더 많은 음식 비가 내리도록 기계를 조작하라고 설득한다. 플린트는 쉐블론의 설득에 넘어가게 된다.

"과학자 플린트는 더 많은 음식 비를 내리자는 시장 쉐블론의 말에 넘어가게 되죠. 실제로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연구 방향이 틀어지거나, 중도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로 힘들어하는 연구자들이 있어요. 과학자에게는 연구자로서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과 성과를 내야하는 현실이 항상 상충합니다. 저 역시 이 부분이 가장 힘들지만, 연구자로서 옳은 판단을 내리고 균형을 맞춰가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단한 노력으로 어린 시절의 꿈을 좇아 현재 과학자가 된 손 연구원. 그의 과학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은 영화 주인공 플린트와 닮은 듯하다. 연구 소신과 성과의 균형을 잘 맞춰나가며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과학자로 발전해 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