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연장 꿈 이뤄주는 힘센 난쟁이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점점 더 작은 세계로 진출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원자 수준에서 물질의 기존 물질을 변형하고 새로운 기능을 창출하기에 이르렀다. 초미립자의 영역, 나노 기술이다. 나노 기술은 100 나노미터(nm) 이하 수준의 원자나 분자를 조작하고 제어해 물질의 구조나 배열을 바꾸는 기술을 통칭한다. 난쟁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그 이름을 딴 나노(nano)는 10억분의 1(보통 10-9)을 나타내는 단위로도 쓰인다. 1m의 10억분의 1인 1나노미터(nm)는 머리카락 굵기의 약 8만분의 1크기에 지나지 않는다. 당연히 이 정도의 영역에서는 기존의 물질이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른 특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나노 영역에서는 물질의 광학적, 기계적, 전자기적인 성질 모두가 변한다. 크기에 따라 색이 변하거나 자기적인 성질을 띠기도 하며 강도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식이다. 물질 전체의 표면적이 급격히 커짐에 따라 독특한 화학적 특성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독특한 특성을 바탕으로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능을 가진 나노 구조물(nanostructure)을 만드는 것이 나노기술의 핵심이다. 모든 곳에 나노기술이 있다
나노기술은 이미 미래 산업을 이끌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기, 전자, 소재, 생명공학, 에너지, 의료, 우주항공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용가능하기 때문이다. 표면 과학(surface science), 유기 화학(organic chemistry), 분자 생물학(molecular biology), 반도체 물리학(semiconductor physics) 등 최신 융합 학문에서도 나노기술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나노융합산업연구조합에 따르면 2016년 세계 나노융합기술 시장의 규모만 해도 1조 6,465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나노기술은 우리 실생활과도 밀접하다.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인 갤럭시 S6의 뛰어난 성능은 나노기술의 덕을 보고 있다. 14nm 공정으로 제작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데이터 처리 능력은 전보다 향상됐고, 소비전력은 감소했다. OLED TV처럼 최신 트렌드인 얇은 TV 역시 나노기술의 덕을 보고 있다. 광고로도 잘 알려진 은나노 제품들은 항균 및 살균 기능이 뛰어난 은을 나노 수준으로 입자화해 물체에 코팅하거나 재료에 섞은 제품들이다. 요즘에는 마루, 젖병, 양말에까지 은나노 입자가 들어가 있다. 이 밖에도 화장품, 치약, 의류 등과 같은 생필품에서부터 태양전지, 반도체, 초소형로봇 등 첨단소재에까지 나노기술의 활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최근에는 소재 쪽에서 나노기술이 인기다.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탄소나노튜브(CNT), 2010년 노벨물리학상의 주역인 그래핀(graphene)은 물론이고, 이들보다 전기전도성이 낮은 나노다이아몬드 역시 주목받는 소재다. 나노수류탄, 미사일로 질병 잡는다이렇게 다재다능한 나노기술의 쓰임 중에서도 그 활약이 가장 기대되는 분야는 의료기술이다. 염기서열 분석, 생체이식소자, 약물전달 시스템, 생체 친화적 인공기관 제작, 나노센싱, 나노의료로봇, 나노 주사기 등 그 활용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이 나노기술을 활용한 의료 연구에 앞장서고 있다. 그 대표적인 연구가 IBS 나노입자연구단-가톨릭대학교 공동 연구팀이 2014년 4월 발표한 나노 수류탄 개발이다. 이는 종양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연구팀이 개발한 나노 수류탄이 암 조직에 도달하면 형광빛과 함께 MRI시그널이 강하게 나와 3mm 이하의 초기 종양 조직을 진단할 수 있다. 이에 더해 나노수류탄과 함께 터져 나오는 광감작제(photosensitizer)에 레이저를 쏘는 광역학 치료(photodynamic therapy)를 수행하면 기존의 암치료 방법으로는 제거가 어려웠던 이질성 종양을 깨끗이 제거할 수 있다. 광역학 치료는 빛과 산소를 접하면 특정작용을 하는 광감작제의 화학 반응으로 활성산소를 발생시켜 종양세포를 파괴하는 치료법이다. 간암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나노 미사일도 개발됐다. 나노입자연구단 현택환 단장은 싱가포르 국립암센터와 공동연구를 통해 간암 억제 효과가 뛰어난 나노미사일을 만들었다고 2014년 8월 밝혔다. 연구팀은 먼저 천연 간암치료제 트립톨리드(triptolide)에 주목했다. 미역순나무에서 발견된 트립톨리드(triptolide)는 간암 세포 치료효과가 기존 약물에 비해 훨씬 뛰어났지만 독성이 너무 강해 정상 조직에 영향을 미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해결책은 나노기술이었다. 연구팀은 나노기술을 활용해 수소이온 농도지수(pH)가 중성인 정상 조직에서는 그대로 있지만 산성인 간암조직에서만 터지는 고분자를 만들어 트립톨리드를 가두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미사일 유도장치와 같이 간암세포 표면의 수용체에 결합하는 엽산(foliate)을 붙였다. 그 결과 정상 조직에서는 약물 방출이 억제돼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간암조직에는 선택적으로 간암치료제를 전달할 수 있게 돼 치료효과가 극대화됐다. 연구팀은 이어진 동물실험에서 나노 미사일이 기존 치료제의 3배 정도의 효능을 가졌음을 확인했다. 암세포에만 약물 전달하는 나노입자 구조체한편 기초과학연구원 복잡계자기조립연구단 김원종 그룹리더 연구팀은 DNA 나노구조체를 이용한 고효율 항암 치료기술을 개발했다고 2014년 9월 밝혔다. 연구팀은 암세포를 만났을 때만 약물 및 유전자를 전달하는 나노입자 DNA 구조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이 제작한 구조체의 정체는 DNA 나노머신이다. 금 나노입자와 ‘pH 감응형 DNA에 상보적 결합을 하는 DNA’, 치료 유전자인 ‘안티센스 DNA(antisense DNA)’를 붙여 세포 내 pH에 반응하게 만들었다. 이 나노머신은 세포 밖 중성 pH 환경에서는 나노입자 군집을 유지하다가 산성인 암세포 내부로 들어가면 나노입자가 서로 흩어지면서 내부에 있는 약물을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안티센스 DNA가 약물에 내성을 보이는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해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이를 활용하면 암세포 부위에만 약물 및 약재 내성 억제 유전자를 방출시켜 질병세포의 사멸을 유도할 수 있다. 또 정상세포까지 공격해 문제됐던 기존 방식의 부작용도 낮출 수 있다. 나노의학연구단 출범에 거는 기대이렇게 암의 진단 및 치료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나노의학은 그 중요성과 활용도가 날이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 리서치 업체인 BCC리서치(BCC Research)에 따르면 2016년 나노의학의 시장 규모는 무려 131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시장 규모를 차치하더라도 나노의학의 발전은 현대의학의 난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는 고령화 사회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더욱 절실한 일이기도 하다. IBS의 신규 연구단, 나노의학연구단(Center for Nanomedicine)의 시작을 반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 4월 연세대학교 천진우 교수가 신규 연구단을 이끌 단장으로 선정됐다. 나노의학의 세계적 석학이자 권위자인 천 단장은 12월 연구단을 출범했다. 연구단은 연세대 내 부지에 내년에 건축될 계획이다. 성공적인 연구단 출범을 위해 지난 4월 30일 IBS는 연세대학교와 연구단 운영 및 지원을 위한 협약(MOU)를 체결했다. 나노의학연구단은 나노물질합성 연구, 나노 이미징, 나노물질 안정성 연구 등을 포함해 나노 의학 연구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또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전망이다. “물질과 생명을 매개하는 융합연구로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는 천 단장의 포부처럼 한국 이 나노 선진국으로 발돋움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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