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중매쟁이 촉매, 환경 지키는 구원투수로 나선다
촉매는 화학반응을 만드는 중매쟁이다.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중매쟁이처럼 물질 간의 화학반응이 잘 일어나도록 돕는다. 촉매는 다재다능하다. 생명체 속 단백질 촉매인 효소는 생명체가 유지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을 하고, 공업에 쓰이는 다양한 촉매들은 비료를 만들고 환경오염을 해결하며 수소연료전지 같은 대체에너지 기술에서도 핵심 역할을 한다. 화학 반응의 속도를 더 빠르거나 느리게 조절하는 촉매는 반응 후 처음 상태로 되돌아간다. 즉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화학 반응을 도와주는 것이다. 촉매는 그 구성 물질이나 반응방식에 따라 금속촉매, 광촉매, 분자촉매, 생체촉매 등으로 나뉜다. 지구의 환경을 지키고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촉매를 만나보자. 수소연료전지에 적용 가능한 새로운 나노촉매 개발최근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대안 중 하나로 수소연료전지가 주목받고 있다. 현대차의 투싼ix Fuel Cell, 도요타의 미라이처럼 수소연료전지를 적용한 상용 차량도 출시되고 있다. 수소연료전지에서도 촉매의 역할은 중요한데, 그 발전효율을 좌우하는 핵심소재가 바로 백금 촉매다.
수소연료전지는 백금 촉매가 포함된 탄소다공체 전극과 고분자 전해질로 구성된다. 수소가 연료극에서 전자를 내놓으면 전류가 발생한다. 동시에 수소이온이 환원극으로 이동하면서 표면적이 넓은 탄소다공체에서 공기 중 산소와 반응해 물을 부산물로 남기게 된다. 학계에서는 수소연료전지의 환원극에서 산소 환원반응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촉매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돼 왔다. 특히 백금 촉매는 고가라서 전지의 경제성 확보에 큰 부담이 돼, 많은 연구자들이 그 함량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연구에는 크게 3가지 방향이 있는데, 코발트, 니켈, 철 같은 값싼 전이금속을 백금과 섞는 방식(합금), 백금을 값싼 물질의 표면에 감싸는 방식(core-shell), 백금의 모양을 조절해 표면적을 넓히는 방식 등이다. IBS 나노입자 연구단(단장 현택환 서울대 교수) 성영은 그룹리더(서울대 화학생물학부 교수) 연구진은 연료전지의 백금 사용량을 줄이면서 성능을 높이기 위해 합금 촉매에 주목했다. 백금과 전이금속을 원자 단위로 배열해 반응성을 높이는 동시에, 연료전지 구동 시 쉽게 녹아 입자끼리 서로 뭉치는 현상을 막고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실제로 새로운 나노촉매를 수소연료전지의 환원극 활성 촉매로 적용해 실험한 결과, 백금 1g당 발전량이 기존 대비 10배 상승했고, 1만 회 구동했을 때도 성능 저하가 나타나지 않았다. 상용화 연료전지 시스템에 적용했을 때에도 100시간 구동 시 단지 3%의 성능 저하만이 나타났다. 연구를 주도한 성영은 그룹리더는 “저비용, 고성능, 고안정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촉매를 제작했다”며 “수소연료전지 차량의 보급 확대와 연료전지 기반 사업 활성화의 획기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배기가스 잡고 식량 문제 해결하는 팔방미인수소연료전지 차량뿐 아니라 전통적인 휘발유, 경유 자동차에도 촉매는 중요하다. 자동차 배기가스를 처리하는 삼원촉매장치는 백금, 팔라듐, 로듐 등의 촉매를 활용해 일산화탄소, 탄화수소, 산화질소 등을 분해, 자동차 배출 공해 물질의 98% 이상을 제거해 준다. 일산화탄소와 탄화수소는 산소와 반응시켜 이산화탄소와 물로, 산화질소 계열은 질소와 산소로 분해해 배출한다. 촉매는 인류의 식량문제 해결에도 크게 기여했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구가 급증하자 더 많은 식량이 필요했고, 곡식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비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10년경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가 공기 중의 질소와 수소를 이용해 질소비료의 주원료인 암모니아를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하버-보슈법이라 불리는 이 방법에서 철, 산화알루미늄, 산화칼륨으로 구성된 촉매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실 우리 생활 곳곳에서도 촉매의 활약은 계속되고 있다. 추울 때 손으로 만져주면 따뜻해지는 주머니난로, 가스레인지, 에어컨이나 공기청정기의 필터, 가스경보기 등에 촉매가 쓰인다. 주머니난로는 벤젠이 든 천을 밀폐용기에 넣고 입구를 백금이 든 석면으로 막는데, 백금이 촉매로 작용해 벤젠이 공기 중에서 산화되면서 열이 발생하게 된다. 또 촉매는 음식을 조리할 때 발생하는 유해가스를 정화하거나, 담배냄새를 잡을 때, 가스경보기 센서가 누출된 가스와 접촉할 때 반응을 일으키는 데 사용된다. 최근에는 대기 정화, 항균, 탈취 등의 기능을 하는 광촉매가 생활환경을 쾌적하게 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광촉매는 빛에너지를 받아 화학반응을 촉진시키는 물질로, 이산화티탄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산화티탄은 대기오염의 원인물질을 제거할 수 있어 건물 외벽, 터널 벽, 고속도로 방음벽 등에 설치하면 다양한 유해가스를 분해할 수 있다. 또 광촉매를 욕실타일에 설치하면 세균 번식을 막을 수 있고 유리 표면에 코팅하면 기름얼룩을 분해하고 김 서림을 방지할 수 있다. 우리 몸속에도 촉매가 있다. 몸속에서 작용하는 각종 효소가 바로 생체촉매이다. 소화효소는 음식물이 몸 안에서 잘 소화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촉매가 많이 쓰이는 수요처는 화학제품의 생산 공정이다. 석유화학제품 제조뿐 아니라 석유정제, 가스제조, 고분자중합, 의약품 및 식품제조 등에서 촉매가 핵심 역할을 한다. 경제성과 친환경성 2마리 토끼 잡아라IBS에는 촉매반응을 주로 탐구하는 연구단이 있다. 바로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이다. 연구단의 장석복 단장은 촉매를 통한 탄화수소 치환반응 활성화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연구단은 크게 두 갈래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하나는 친환경적으로 가치 있는 탄화질소 화합물을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가의 중금속 촉매를 저렴한 유기촉매로 대체해 경제성을 높이는 연구이다. 경제성과 친환경성이라는 2마리 토끼를 잡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중화학공업과 제약업계에서는 자연계에 흔한 탄화수소 화합물(C-H bond)의 수소 원자를 질소 원자로 대체해 탄화질소 화합물(C-N bond)을 합성한다. 생성물은 합성수지, 생리활성물질, 의약품 등의 핵심물질로 다양하게 쓰인다. 일반적으로 탄화질소 화합물은 로듐, 이리듐, 루테늄 같은 전이금속 촉매를 이용해 제조하는데, 제조과정에서 독성 부산물이 생기는 산화제가 필요해 환경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연구단은 3개의 질소원자로 구성된 N3기를 포함하는 아지드 화합물이나 디옥사졸론 같은 질소화합물을 이용해 탄화질소 화합물을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아지드의 경우 자체 산화제가 포함되어 있어 부산물로 질소만 생성되어 친환경적이며, 또한 별도 정제과정이 필요치 않아 경제적이다. 질소화합물인 디옥사졸론의 경우 합성 시 이산화탄소만이 부산물로 생성돼 별도의 후처리 과정이 필요 없다. 특히 디옥사졸론을 이용한 탄화질소 화합물 제조법에서는 로듐 촉매 사용량을 기존보다 60% 이상 줄일 수 있었다.앞으로 연구단은 고가의 로듐 촉매를 저가의 전이금속 촉매로 대체하는 탄화질소 화합물 반응을 연구하고, 탄화질소 화합물 합성 경로도 단축할 계획이다. 또한 연구단은 의약품 합성에 필수적인 화합물 피리딘, 니트릴 등의 규소수소화 환원반응에 이용되는 중금속 촉매를 대체할 촉매를 찾았다. 기존의 규소수소화 반응에는 고가의 중금속 촉매가 사용돼 왔는데, 제작비용이 높을 뿐 아니라 환경오염을 초래할 위험도 있었다. 이에 연구단은 유기붕소 촉매를 사용해 기존 촉매가 갖는 단점을 완벽히 보완하는데 성공했다. 유기붕소 촉매를 사용해 얻을 수 있는 탄화-규소(C-Si) 화합물은 신약, 신소재 등의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은 새로운 촉매반응을 개발하고 그 메커니즘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응성이 낮은 탄화수소의 탄소-수소 결합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시스템을 개발해 다양한 물질들의 합성에 도전하고자 한다. 천연물, 의약화합물, 기능성 분자들의 합성 등 다양한 분야에 폭넓게 적용할 수 있는 화학반응을 연구하는 것이 연구단의 목표다. 화합물 합성의 안정성, 유기촉매 대체를 통한 경제성, 제조공정의 친환경성까지 3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인지, 연구단의 미래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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