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두 가지 지도, 정원과 도시1000억은 큰 수다. 우리은하 안에 있는 별의 숫자가 대략 그 정도다. 그런데 인간은 모두 머릿속에 이 큰 수를 품고 있다. 바로 뇌 안에 들어 있는 신경세포의 수다. 뇌의 지도를 그려라!
뇌지도는 이런 뇌를 좀더 제대로 항해하도록 도와줄 획기적인 도구다. 뇌지도를 만드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 아이디어가 있다. 큰 곳에서 시작해 자세히 들어가는 방법과, 작은 곳에서 시작해 큰 지도를 만드는 방법이다. 구글지도를 보자. 세계지도가 보일 것이다. 확대하면 아시아, 한반도 순으로 나타나고, 잠시 뒤에는 여러분이 사는 동네까지 볼 수 있다. 조금만 더 확대하면 집의 형태나 마당의 모양까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원을 장식한 꽃의 종류까지 확인할 수 있을까. 아직은 한계가 있다. 언젠가는 극복될 한계지만. 도시계획가라면 위성지도만으로 충분하다. 정원사는 다르다. 세계지도나 한반도, 도시의 도로 구조보다는 마당이 궁금한데, 위성으로는 마당 안쪽을 볼 수 없다. 대안은 직접 가보는 것이다. 가서 마당의 크기를 측량하고 꽃의 종류를 기록한다. 지나는 사람의 동선을 관찰하고, 필요하면 직접 대화도 나눈다. 정원사의 방법은 느리고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하지만 궁금한 정보를 더 확실히 얻을 수도 있고, 때로는 유일한 방법일 때도 있다. 도시계획가의 인공위성 지도와 정원사의 마당 지도 중 어느 것이 더 낫다고는 말할 수 없다. 둘은 각각 쓰임이 다를 뿐이다. 크게 보기: 영역과 변화뇌지도도 비슷하다. 뇌라는 하나의 대상을 놓고 지도를 그리기 위해 도시계획가와 정원사가 출동했다. 뇌의 도시계획가가 주로 사용하는 것은 첨단 영상장비다. 약 20년 사이 뇌과학 연구의 상징이 된 fMRI(기능자기공명영상)와 PET(양전자방출단층사진), MRI의 특수한 변형인 DTI(확산텐서영상)가 대표적이다. 영상장비의 단점은 빨라야 초 단위 간격으로만 측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진처럼 한 순간의 뇌 활성을 측정할 수는 있지만, 변화는 잴 수 없다. 또 해상도(사물을 구분해 보는 능력)가 높지 않아 자세히 보는 데 한계가 있다. fMRI와 PET은 약 2~4mm 정도의 뇌 영역을 구분할 수 있다. 가장 성능이 뛰어난 MRI는 이보다 약간 나은 1mm 정도를 구분할 수 있다.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은 뇌파(EEG)와 뇌자도(MEG) 등 전자기 신호 분석으로 보완할 수 있다. 해상도는 계속해서 기기의 성능을 높여 해결하고 있다. 최근 각광받는 분야로는 '그래프 이론'이 있다. 요즘 유행하는 '네트워크 과학'의 수학 버전으로, 점과 점 사이를 연결하는 방법에 대한 이론이다. 네트워크 이론에서는 네트워크를 점과 선, 노드와 링크로 나누어서 각 노드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연결이 집중되는 특정 노드는 무엇인지 찾아내고 네트워크의 특성을 분석한다. 이런 '선긋기 놀이'는 뇌 안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놀랄 일은 아니다. 뇌의 본질이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아니라, 이들이 만드는 150조 개의 연결, 즉 시냅스이기 때문이다. 뇌 기능 연구에서 '선긋기'에 주목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뇌는 특정 영역이 특정 기능을 도맡아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뇌의 일부가 망가져도 다른 영역이 그 일을 대체하곤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뇌 가소성'이라는 성질이다. 이는 특정 영역이 망가져도 특별히 많은 링크를 보유하는 '허브'를 통하면 그 기능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뇌과학자들도 이런 영역별 연결성에 주목하고 있다. '휴먼커넥톰프로젝트'다. 2009년부터 5년 동안 미국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3850만 달러(약 432억 원)의 예산을 받아 진행 중인데, 뇌의 기능적, 해부학적 연결성을 함께 파헤치는 게 목적이다. 이 연구는 두 개의 연구 그룹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300쌍의 쌍둥이와 그 형제 1200명의 뇌를 fMRI, 뇌자도, 확산MRI 등 다양한 장비로 관찰해 유전자와 함께 비교하는 워싱턴대-미네소타대 연구팀이 있다. 두 번째인 하버드대, UCLA, 메사추세츠병원 연구팀은 이런 영상 기기의 성능을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구 결과는 알츠하이머, 자폐, 조현병 등 뇌질환을 고치는 데 활용할 예정이다.
세밀하게 보기: 시냅스의 골목길뇌의 정원사는 대상과 가까운 시각으로 본다. 그래서 미세한 세포와 세포 사이의 연결(시냅스)까지 추적할 수 있다. 여기에는 영상장비보다는 생물학적인 방법을 이용한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엠그래스프(mGRASP)'라는 기술이다. 녹색형광단백질(GFP)로 뇌세포의 연결, 즉 시냅스를 찾은 뒤 광학현미경으로 추적하는 기술로, GFP 분자를 두 부분으로 나눈 뒤 서로 가까워지면 마치 스위치가 켜지듯 형광을 내도록 조작하여 이들이 시냅스의 양 쪽 끝에서 빛을 내는 것을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방법이다.
광학기술을 이용해 시냅스를 추적하는 기술에는 그밖에도 신경세포에 다양한 형광색소를 주입한 뒤 무작위로 붙여 개별 신경세포를 확인하는 '브레인보우' 기술(결과 영상을 보면 세포 하나하나가 각각 빛나 알록달록한 무지개 빛으로 보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과 '투명뇌' 기술, 그리고 소수지만 광유전학 기술 등이 뇌지도를 그리기 위해 경합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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