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빛, 나쁜 빛, 좋은 빛이 글의 제목에는 “빛”이란 단어가 세 번이나 들어가 있습니다. 이미 눈치챈 독자들도 있겠지만 10여 년 전 인기를 끌었던 한 영화의 제목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순서가 거꾸로 바뀌었지만요. 빛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매일 빛을 보고 느끼고 빛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누군가 빛의 정체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선뜻 바로 대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상한 빛" 빛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설명은 19세기 전자기학을 수립한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 - 1879)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 당시 알려진 전기학과 자기학을 집대성해 전자기학을 완성하고 전자기파를 이론적으로 예측한 맥스웰은 빛도 전자기파의 한 식구임을 알아냅니다. 전기학과 자기학에 이어 광학까지 하나의 이론적 틀 내로 통합된 것이지요.
전자기파는 전기장과 자기장이 같은 위상으로 진동하며 진공을 초속 299,792,458 m로 날아가는 횡파입니다. 전자기파는 전기장(그리고 자기장)이 한 번 진동하며 나아가는 거리인 파장으로 분류하는데 빛의 파장은 약 380~780 nm 정도에 걸쳐 있습니다([그림 1] 참조).1 이를 전기장이 1초에 진동하는 횟수인 진동수로 환산하면 약 (4~7)ⅹ1014 Hz나 됩니다.2 가시광선을 기준으로 파장이 긴 쪽으로는 적외선, 마이크로파, 라디오파, 전파 등이 이어지고 파장이 짧은 영역에는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 등이 있습니다. 빛에 대해 이해는 맥스웰의 전자기파 이론으로 완벽히 끝났다고 생각했던 20세기 초, 빛의 정체에 대한 관점에 근본적인 전환이 생깁니다. 위에 언급한 빛의 속도는 우주에 존재하는 속도의 상한선으로서 특수상대성이론이 탄생하는 기반이 됩니다. 또한 미시세계를 다루는 학문인 양자물리학은 빛 에너지가 양자화(quantization)되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즉 빛에너지는 빛알(광자, photon)이라는 최소 덩어리 단위로만 전달된다는 것이지요. 빛알 하나의 에너지는 전자기파의 진동수에 비례하고 파장에 반비례합니다. 가시광선 중에서도 파장이 짧은 파란색 빛알의 에너지가 더 크고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 순으로 갈수록 빛알의 에너지가 더 커집니다. 이로서 빛은 20세기의 과학자들 앞에 자신의 이상한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간섭이나 회절(에돌이)같은 친숙한 현상들은 빛이 파동임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알려주지만 정밀한 검출기에 자신을 드러내는 빛은 에너지를 알갱이, 즉 입자의 형태로 나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입자-파동 이중성은 비단 빛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닙니다. 전자와 같은 기본 입자들도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수백 개의 원자로 구성된 거대 분자들 역시 정교한 실험을 통해 파동의 간섭 현상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아니 그 둘 다의 모습을 띤 이중적인 빛은 우리에게 정말 ‘이상한 놈’이죠. 1) 거리의 단위인 nm는 nanometer(나노미터)의 약자로 10억분의 1미터를 의미합니다. 2) 진동수의 단위인 Hz(헤르츠)는 전자기파의 존재를 실험으로 확인한 독일 물리학자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Heinrich Rudolf Hertz, 1857 - 1894)를 기념하기 위해 붙인 것으로서 1초에 1회 진동하면 1 Hz가 됩니다. "나쁜 빛" 지구의 생명에게 우주는 그야말로 적대적 환경입니다. 우주는 완벽한 진공에 가깝고 영하 약 270도 정도의 극저온의 세계일 뿐 아니라 생체 조직에 치명적 위해를 가하는 것들이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공간입니다. 국제우주정거장의 우주인들이 우주 유영 때 입는 거대한 우주복은 이런 환경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태양이 뿜어내는 강력한 하전 입자들의 흐름인 태양풍을 포함하는 우주선(cosmic rays)도 생명에는 치명적이지만 전자기파에서 빛알의 에너지가 높은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 역시 인체에 유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행히 지구는 이들로부터 생명체를 보호할 수 있는 천연의 장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액체상태를 유지하는 지구의 외핵의 움직임에 의해 만들어지는 지구 자기장은 전하를 띤 우주선의 방향을 틀어 밴 앨런대로 몰아내고 단파장 자외선과 엑스선, 감마선 등은 지구의 대기가 전리작용 등을 통해 막아줍니다. 특히 성층권에 존재하는 오존층은 단파장 자외선을 흡수해 지구 생명체가 지상에서 번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런 천연 보호막들이 없었다면 지구는 화성과 같은 볼모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외선 중 에너지가 가장 센 단파장의 UV-C는 오존층에 모두 흡수되지만 중간 파장의 UV-B는오존층을 뚫고 일부가 내려와 백내장을 유발하거나 피부에 홍반을 만드는 등 인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3 파장이 짧을수록 자외선 빛알이 나르는 에너지 덩어리가 커지기 때문에 생체조직에 더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우리가 한여름에 선크림을 발라 자외선을 차단하는 건 이 때문이죠. 가시광선 대역에서도 빛알의 에너지가 가장 센 청색 빛이 말썽을 부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디스플레이 중 액정표시장치(LCD)는 청색 발광다이오드(LED)에 파장변환 물질인 형광체나 양자점(quantum dot)를 코팅해 백색광을 구현한 광원을 사용합니다.4 청색 LED가 내는 발광 스펙트럼의 중심 파장은 약 450 nm인데 이 빛은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를 방해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취침 전에 디스플레이를 장시간 활용하면 충분한 숙면을 취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전자기파 중 일부는 사람이나 다른 생명에 끼치는 영향에 따라 ‘나쁜 빛’ 취급을 받고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정말 나쁜 빛이기만 한 것일까요? 3) 생물학적 영향에 따라 자외선을 파장이 긴 UV-A, 중간 파장의 UV-B, 그리고 파장이 짧은 UV-C로 구분합니다. 4) https://blog.naver.com/jh_ko/221490713384 : “양자점 디스플레이의 진면목” "좋은 빛" 빛은 지구에 빌붙어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의 근원입니다. 식물들의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영양분은 다양한 동식물로 순환되면서 지구 생태계를 유지하는 근본 바탕이 됩니다. 생태계뿐 아니라 대기와 해류의 순환, 자연의 역동적인 변화도 궁극적으로는 태양에서 지구로 공급되는 빛에너지에 기인합니다. 지구라는 별에 얹혀 있는 생명체는 모두 태양에 빚지고 의존하며 살고 있는 셈이지요. 빛은 또한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강력한 수단입니다. 사람의 눈이 태양의 발광 스펙트럼 중 가장 강한 세기를 가진 가시광선 대역을 보도록 진화해 온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가장 강한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빛을 반사하는 물체, 포식자, 혹은 먹이의 움직움직임을 잘 포착해서 살아남고 번성할 수 있었겠지요. 오늘날에도 사람의 눈은 가시광선만을 볼 수 있지만 과학자들이 발명한 다양한 과학적 도구는 인간에게 전자기파 전체를 “볼” 수 있는, 그리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가령 지상과 우주 공간에 설치된 다양한 천체 망원경들은 자신들이 볼 수 있는 전자기파 대역을 측정해 우주의 이야기를 천문학자들에게 들려줍니다. 이런 다양한 “눈”으로 바라본 우주의 모습은 사람의 눈을 통해 보는 가시광선의 우주에 비해 훨씬 더 풍부하고 다채롭습니다. 천문학자들에게는 다양한 눈을 제공해 주는 전자기파가 인류 문명에서는 정보를 전달하는 무선 통신의 핵심이 됩니다. 각종 방송통신용 전파나 휴대전화의 신호뿐 아니라 블루투스, 와이파이 등 우리는 전자기파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게다가 신체에는 유해한 자외선의 강한 에너지도 살균 작용을 포함한 다양한 용도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자외선보다 에너지가 훨씬 더 센 엑스선은 의료 진단의 필수품으로, 혹은 방사광가속기에서 물질의 비밀을 파헤치는 첨병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나쁜 전자기파, “나쁜 빛”은 없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다방면에서 사용되고 있는 빛의 기술, 광기술이 요즘에는 유전학(genetics)의 분야에서도 맹활약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2002년 빛을 감지하는 단백질인 채널로돕신(Channelrhodopsin)이 해조류에서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은 후 광유전학(optogenetics)이 본격적인 학문의 한 분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광유전학에서는 특정 세포처럼 생체 조직 내 원하는 대상에 빛을 느끼는 센서를 달고 빛을 이용해 이를 제어함으로써 생체 조직에 대한 새로운 조절의 가능성을 탐색한다고 합니다.5
5) http://scienceon.hani.co.kr/122269 : “‘신의 리모컨’ 광유전학, 뇌의 판도라 상자를 열까” 기초과학연구원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6에서는 최근 면역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항체의 조각에 청색 빛을 쪼여서 비활성화 상태를 활성화 상태로 바꾸는데 성공한 바 있습니다.7 녹색형광단백질을 인지하는 항체 조각이 빛 에너지를 받아 서로 결합해 활성화 상태로 바뀌면서 미토콘드리아에 있던 녹색형광단백질에 결합하는 과정을 확인한 것이지요([그림 2] 참조). 이 활성화된 항체를 이용해 세포 이동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억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연구는 기존에 화학적 방법으로 제어하는 것에 비해 훨씬 더 빠른 시간 내에 빛을 이용해 항체 활성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6) https://www.ibs.re.kr/cop/bbs/BBSMSTR_000000000901/selectBoardArticle.do?nttId=13406 : “광유전학, 빛으로 뇌의 비밀 풀고 새로운 치료법 찾는다” 7) https://www.ibs.re.kr/cop/bbs/BBSMSTR_000000000511/selectBoardArticle.do?nttId=17749 동일 연구단은 2019년 초에도 빛을 이용해 살아 있는 쥐의 뇌 속 유전자 발현을 제어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8 연구팀은 직접 설계한 유전자 재조합 효소를 생쥐의 뇌의 해마에 주입한 후에 생쥐의 머리에 청색 LED를 부착해 빛을 쪼여주었다고 합니다. 비활성화 상태로 나누어져 있던 효소는 빛에너지의 도움으로 결합하며 활성화 상태로 바뀌었고 연구팀은 이 효소에 의해 발현된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 3] 참조). 이를 생쥐의 뇌 속 다른 부위에 심어서 쥐의 물체 탐색 능력을 제어했던 결과도 같이 얻었다고 합니다. 뇌의 빛에 대한 투과도가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뇌 속에 침투한 희미한 빛을 이용해 단백질을 활성화시켰다는 게 매우 놀랍습니다. 화학적 방법을 사용하거나 뇌 속에 무엇인가 삽입하는 침습적 방법에 비해 빛을 이용한다면 그에 반응하는 부위만을 정확한 시간에 제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이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인류에게는 아직 미지의 영역인 뇌의 비밀을 밝히는데 광유전학이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흥미를 끌려고 흡사 좋은 빛, 나쁜 빛, 이상한 빛이 존재하는 것처럼 제목을 달았으나 빛은 그냥 빛일 뿐입니다. 빛과 전자기파의 본성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20세기부터입니다. 디스플레이나 광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의 삶을 바꾸고 IT 문명의 혁신에 기여한 광기술은 이제 유전학과 같은 새로운 분야로도 활용의 폭을 넓혀 나가고 있습니다. 우주의 초기부터 존재해 왔던 빛은 현재도 우리와 함께 있고 몇 세기 후에도 우리 주위에 있을 것이며 인류의 문명이 사라진 머나먼 미래에도 이 우주를 가득 채우며 존재할 것입니다. 인류는 그런 빛에 기댄 기술, 즉 광기술을 이용해 어떤 미래를 개척해 나갈 것이며 환경 문제 등 당면한 위기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요? 8) https://www.ibs.re.kr/cop/bbs/BBSMSTR_000000000511/selectBoardArticle.do?nttId=16668 본 콘텐츠는 IBS 공식 블로그에 게재되며, https://blog.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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