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인지하는 나침반, 뇌 - '우리는 희로애락을 어떻게 인지할까?'우리는 희로애락을 어떻게 인지할까?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의 감정 변화를 느낄까.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때까지, 아니 어쩌면 잠을 자는 동안에도 수많은 감정이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우리는 그 속에서 슬픔과 좌절을 경험하기도 하고 기쁨과 행복을 맛보기도 한다. 감정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걸까? 흔히 감정을 인지하는 나침반을 뇌라고들 한다. 뇌 연구자들은 아직 수수께끼인 감정과 뇌의 인지 관계를 파악하고자 뇌 연구에 파고들고 있다. 과연 뇌 연구는 감정의 작동원리를 알려주는 안내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감정과 두뇌 관계의 연구들은 주로 특정 감정과 뇌 부위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히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특정 감정을 느낄 때 뇌의 어떤 부위가 활성화된다거나 뇌의 어느 부위가 손상되거나 자극을 받을 때 정서상 변화가 생긴다는 내용들이다. 연구의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감정을 탐구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특정 뇌의 활동이 '왜' 우리로 하여금 특정 감각을 느끼게 만드는지 설명하지 못한 상태다. 편도체 신경세포들의 활동이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이유, 몇몇 뇌 부위의 활동이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지 말이다. 다시 말해 뉴런의 움직임이 감정을 만든다고 하지만 수억 개의 뉴런이 보내는 전기신호가 어떻게 감정을 만들어내는지 자세하게 모른다는 얘기다. 실제 뇌 안을 들여다보면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와 인지와 학습을 관장하는 뇌 부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어쩌면 두뇌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모두 밝혀낸다 하더라도 '왜'라는 근본적 질문은 여전히 미지수로 남을지 모른다. 하기야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나는 미묘하고도 복잡다단한 인간의 감정을 칼로 무 자르듯 분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 감정은 뇌와 불가분의 관계 : '감정의 관문' 편도체감정은 자극에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 귀신이 나오는 공포물을 보았다고 하자. 먼저 눈의 망막에 귀신이라는 자극체가 포착된다. 뇌의 시각피질이 귀신의 존재를 파악하자 감정과 연관된 뇌의 여러 영역이 자극 반응을 일으킨다. 마지막으로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사람의 감정 변화에 반응하는 뇌 부위는 대뇌 변연계(limbic system) 깊숙한 곳에 위치한 편도체(amygdala)다. 변연계는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기쁨과 슬픔, 분노와 행복 등 다양한 감정을 관장하는 신경망이 고리처럼 연결돼 있다. 편도체는 '감정의 관문'이다. 크기는 작지만 각 부분이 각기 다른 감정을 관장하는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구조다. 때문에 적절한 자극에 자물쇠가 열리듯 반응하고 감정의 여러 반응을 이끌어낸다. 감정 반응의 마지막 단계는 호르몬 작용이다.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도파민, 세로토닌(행복, 즐거움 등 긍정적 정서를 느끼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 등 호르몬 분비가 시작되면서 얼굴 근육이 변화한다. 웃거나 찌푸리는 등 표정이 바뀌고 손사래를 치거나 도망가는 등 특정 행동이 취해진다. 한편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의 일부 영역도 감정을 유발한다. 전전두피질은 보다 복잡한 감정 자극인 동정심이나 죄의식 등 사회적 감성에 관여한다. 개인적 경험으로 기억된 감정 자극도 전전두피질이 작용한다. 전전두피질은 자기를 인식하고, 행동을 계획하고, 불필요한 행동을 억제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등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능력에 관여한다.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 도파민 시스템과도 직결되어 있다.
편도체가 감정을 관장한다면 전전두피질은 이런 감정들을 조절하면서 상호작용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불안이나 분노, 우울과 같은 불쾌한 감정을 느낄 때, 편도체와 오른쪽 전전두피질이 활성을 나타낸다. 반대로 낙천적이고 열정에 차 있고 기력이 넘치는 긍정적 감정 상태에 있을 때는 편도체와 왼쪽 전전두피질이 활기를 띤다. 즉 오른쪽 전전두피질이 활발해지면 불행과 고민이 많아지고, 왼쪽 전전두피질이 활발해지면 행복감과 열정이 넘치는 것이다. 만약 극단적으로 오른쪽 전전두피질 쪽만 활성화되면 어떨까.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간혹 우울증・조울증 환자에게 자살 충동이 생기는 이유가 바로 전전두피질과 편도체의 연결망이 빈약해지면서 두 기관의 상호작용에 오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 감정 솔직히 표현할 때 뇌 변화 나타나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자극을 정확히 파악하기도 전에 편도체가 이미 활성화돼 거의 무의식적으로 감정 자극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희로애락에 대한 반응은 각각 다르다. 편도체가 유전적으로 강하냐 약하냐의 차이에 따라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령 대형 사고를 경험한 뒤 극심한 공포를 겪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자'의 경우 이성적 판단을 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진 반면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의 반응이 높게 나타나 공포감을 더욱 크게 느낀다. 편도체가 손상되면 공포영화를 봐도 겁먹지 않지만 편도체가 발달한 사람일수록 감정이 풍부해 사회적 네트워크에도 더 많은 관심을 보일 수 있다.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매투 리버먼 (Lieberman) 교수팀에 따르면,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편도체와 오른쪽 전전두피질이 서로 상쇄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슬픔이나 분노를 말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편도체의 활동이 현저히 줄어들고 절제된 사고를 관장하는 오른쪽 전전두피질이 매우 활성화돼 격한 감정을 누그러뜨려 진다는 것. 슬플 때 '슬프다', 화날 때 '화났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감정을 조절하는 데 낫다는 얘기다. “ 현대과학의 마지막 프론티어, 뇌 연구다시 뇌 연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뇌 연구는 흔히 현대 과학의 마지막 정복영역으로 불린다. 그래서 각국이 엄청난 자원을 투자해 각축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유전자 조작 쥐를 이용해 뇌 기능을 연구하고 있는 '1호 국가과학자'이자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및사회성 연구단의 신희섭 단장, 뇌 연구와 치료에 필수적인 최첨단 PET(양전자방사단층촬영기), MRI(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 등의 장비를 개발한 조장희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뇌의 기억 재구성 메커니즘을 밝혀낸 강봉균 서울대 생명공학부 교수 등이 이 분야의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인간 감정 조절에 관여하는 4개의 뇌 신경섬유 발견조장희 박사는 2013년 세계 최초로 인간의 감정 조절에 관여하는 4개의 뇌 신경섬유를 발견해 우울증 치료의 길을 열었다. 분노, 슬픔, 우울 등 부정적 감정에 관여하는 신경섬유(ATR)와 기쁨, 웃음, 행복, 사랑, 보상 등 긍정적 감정에 관여하는 3개의 신경섬유(slMFB, imMFB, SPT)를 새롭게 찾아낸 것. 이 가운데 긍정적 감정에 관여하는 3개의 신경섬유가 담당하는 감정의 종류도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파악했다.
조 박사팀은 초고해상도 촬영 기기인 7T(테슬라·1T는 지구 자기장의 5만배 세기) PET-MRI를 이용해 살아있는 사람의 뇌를 가로 세로 1㎜ 단위로 촬영한 후 3차원으로 복원, '뇌 백질 지도(7T Brain White Matter Atlas)'를 완성했다. 기존에는 보이지 않던 세세한 혈관과 신경줄기들을 볼 수 있게 되자 존재와 기능이 막연히 알려져 있던 감정 조절에 관여하는 신경섬유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보다 앞서 조 박사팀은 '회백질(gray matter. 신경세포가 모여 있는 부분으로 회색을 띤다. 대부분 대뇌피질에 분포) 지도'를 완성하기도 했는데, '뇌 회백질 지도'는 뇌의 치밀한 구조를 보여주는 데 그친 반면 '뇌 백질 지도'는 신경의 기능적인 연결망까지 나타내고 있다. 조 박사는 4개의 뇌 신경섬유 발견 당시 "사람이 어떻게 울고, 웃고, 기분이 좋고 나빠지는지 등 감정의 작용을 알아낼 수 있는 근거를 찾은 셈"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신경섬유 다발들이 각각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 기능에 관여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더욱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감정에 이상이 생긴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수술이나 약물로도 치료가 안 되는 심한 우울증이나 강박증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공감 능력 조절하는 유전자와 뇌 신경회로가장 최근 연구로 주목할 성과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의 성과다. 신희섭 단장이 이끄는 연구진은 공감 능력의 차이를 결정하는 뇌 신경회로를 규명하는데 성공했다. 생쥐 실험을 통해 대뇌에서 공감 능력 조절 유전자 관련 신경회로를 밝힌 것이다. 유전자 수준에서 공감 능력 조절 메커니즘을 밝힌 것은 세계에서 처음이다. 연구팀은 생쥐의 '관찰 공포(observational fear) 행동 모델'을 이용해 실험했다. 관찰 공포 행동 모델은 상자 속 두 마리 생쥐 가운데 하나에만 전기 충격을 주고, 다른 하나의 생쥐는 이를 관찰하게 하면서, 관찰한 생쥐가 얼마나 공포에 공감하는지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생쥐는 공포를 느끼면 곧바로 동작을 멈추기 때문에 공감 능력을 측정하기 쉽다.
연구팀은 18종의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한 결과 공포에 크게 공감하는 생쥐 그룹을 추려낼 수 있었다. 이 그룹에서는 'Nrxn3'라는 유전자가 변이돼 있었다. 유전자 Nrxn3가 공포 공감 능력 조절에 관여하는 유전자였던 것이다. 연구진은 추가로 전두엽의 전대상피질(관찰 공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부위) 신경세포에서 Nrxn3 유전자를 제거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억제성 SST 뉴런(신호의 강약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뉴런)'에서 Nrxn3 유전자가 제거된 경우 생쥐의 공감 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확인했다. 결국 Nrxn3 유전자는 SST 뉴런의 시냅스 전달 기능을 조절해 공감 능력에 관여한다고 볼 수 있다. SST 뉴런을 빛으로 억제한 경우에도 공포 공감 능력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희섭 단장은 "이 연구는 공포 공감을 조절하는 중요 유전자를 밝혀내고, 전대상피질의 정보처리를 담당하는 신경회로의 작용기전을 구체적으로 규명한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한다. “ 뇌 연구로 밝히는 감정 작동원리, 인간을 더 인간답게공감은 사회적 관계 형성과 생활 영위에 필수적인 요소다. 그러나 공감은 매우 복잡한 인지 영역인 탓에 이를 관장하는 유전자나 뇌 신경회로 연구가 거의 이뤄진 바 없다. 신희섭 단장은 "공포 공감을 관장하는 유전자의 발견은 인간의 위로, 동정, 이타심 등과 같은 다른 형태의 공감 능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공포 공감 능력이 없는 사이코패스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환자를 과학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도 보여 주고 있다. 감정과 인지 관계를 연구하는 것은 인간을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과정과도 같다. 뇌 연구에 있어서 감정과 인지 연구는 길라잡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뇌 과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감정과 육체의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더 자유롭게 만드는 데 있다. 감정 작동 과정에서의 유전자를 규명하고 기능을 밝힌다면 인간 스스로 자신의 뇌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까지 연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때의 우리는 어떤 뇌를 갖고 살게 되는 것일까?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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