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물리학상은 기후변화와 복잡계 연구를 수행한 세 명의 물리학자에게 돌아갔다. 이중 마나베 슈쿠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클라우스 하셀만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은 물리학적 기후모델링과 지구온난화의 수학적 예측 가능성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공동 수상자인 조르조 파리시 이탈리아 사피엔자대 교수는 원자에서 행성 단위에 이르는 물리학적 체계에서 무질서와 변동의 상호작용을 연구했다.
이번 수상자들은 필자와 유독 인연이 깊다. 특히, 하셀만 연구원은 막스플랑크 기상학연구소에서 필자의 박사학위 지도 교수였다. 한편 슈쿠로 교수와는 북대서양 순환 변동성에 대하여 공통 관심사를 나눴다. 두 기후과학자의 지적 관대함, 끊임없는 호기심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연구에 큰 기여를 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아 왔다. 가까운 동료이자 후배로서, 두 수상자의 공적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하셀만 연구원, 지구온난화가 인류의 활동에 의한 것임을 입증1976년 발표된 하셀만 연구원의 ‘확률적 기후 모델(Stochastic Climate models)’ 논문은 게재 이후부터 지금까지 대학생이 꼭 읽어야 하는 논문으로 꼽힐 정도로 기후 물리학계의 디딤돌이 됐다. 하셀만 교수는 본 논문에서 1905년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브라운 운동’을 기후시스템에 전격 도입했다. 날씨의 일시적 변동은 천천히 반응하는 기후시스템에 가해지는 무작위적 강제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일시적 날씨 변동이 지속 축적되면, 기후 시스템의 변동이 발생한다. 이 기본 개념은 모든 자연 발생적 기후 변동의 95%를 설명한다. 기후과학자들은 이러한 이론적 예측이 관측 자료에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기후의 ‘귀무 가설 모델(Null Hypothesis model)’이라고도 한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포함되지 않은 확률적 기후 모델에서도 며칠에서 몇 주 사이에 발생하는 무작위적인 날씨 변동성에 반응해 자연적 기후 시스템(예: 해양 온도)이 느린 속도로 변하는 것이 뚜렷이 나타난다. 이러한 발견은 오늘날 계절 기후 예측의 탄생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하셀만 연구원의 이론 모델을 하나 이상의 수학적 차원으로 확장하면, 전 지구 날씨 패턴을 크게 바꾸는 엘니뇨 남방 진동(El Niño-Southern Oscillation)과 같은 기후 현상을 이해하고 예측하는데 적용할 수 있다.
노벨 위원회가 인정한 하셀만 연구원의 두 번째 공적은 최적지문법(optimal fingerprinting)이다. 오늘날에는 기후-CSI(Crime Scene Investigation)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공간적 데이터를 필터링하는 기발한 방법으로 이를 통해 20세기 관측 온도 변화에서 인간의 영향을 탐지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1979년 하셀만에 의해 처음 발명된 최적지문법을 온도 관측에 적용하는 것은 지구온난화와 인간 활동을 연결하는데 핵심 방법으로 사용되어 왔다. 하셀만 연구원은 함부르크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한스 폰 스토르흐 교수와 가브리엘 헤겔 박사와 함께 완전히 새로운 연구 분야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것이 현재 알려진 ‘탐지와 원인규명(Detection and Attribution)’ 방법론으로,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 평가보고서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현재 최적지문법은 인간의 화석 연료 사용이 지구 온난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입증하는 도구로 쓰인다. 슈쿠로 교수의 물리모델, 현존 기후분석 모델의 시초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또 다른 기후과학자는 현대 기후 모델링의 창시자인 마나베 슈쿠로 교수다. 슈쿠로 교수는 1960년대에 미국 프린스턴 지구물리학 유체역학연구소에서 기후 시스템의 복잡한 물리 방정식을 풀 수 있는 최초의 컴퓨터 수치 모델을 1세대 슈퍼컴퓨터에 입력하고 계산했다. 처음 만들어진 모델들은 대기의 움직임만을 묘사했지만, 커크 브라이언 박사와 오랫동안 협력한 덕분에 추후에는 해양 순환도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 ‘접합 대기 대순환 모델(Coupled General Circulation models)’이라고 불리는 이 모델은 처음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두 배 증가하면 지구 온도가 2-4℃ 상승하고 육지와 극지방에서의 온난화가 지구 평균보다 훨씬 더 높을 것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최초 빙하기 시뮬레이션을 포함한 슈쿠로 교수의 선구적인 연구는 하셀만 연구원을 포함한세계 모든 기후 과학 연구소들의 기후 모델 개발로 이어졌다. 수많은 연구팀에 의해 반복적으로 실험 되고 추후 IPCC 의해 평가되어 온 수천 개의 독립적인 기후 모델 시뮬레이션에서 나온 결론은 매우 간단하다.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며, 인류가 탄소 배출을 멈추지 않는다면 지구는 계속 뜨거워지고, 해수면이 상승하며, 강우 패턴이 대규모로 변화할 것이라는 결론이다. ‘기후 모델링의 아버지’로 꼽히는 슈쿠로 교수는 기후 시스템, 특히 ‘컨베이어벨트’로 알려진 대서양 해양 대순환(Atlantic Meridional Overturning circulation)에 대한 이해를 전환하는데 획기적인 공헌을 했다. 슈쿠로 교수는 프린스턴 지구물리학 유체역학 연구소 동료 로날드 스토퍼와 함께 같은 환경 조건에서도 대서양 순환이 ‘작동(on state)’ 또는 ‘멈춤(off state)’ 상태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접합 대기-해양 시뮬레이션(coupled atmosphere-ocean simulations)에서 발견했다. ‘작동 상태’는 현재의 기후 상태와 일치하며, ‘멈춤 상태’는 빙하기의 상태와 비슷하다. 1988년 이 내용이 발표 되었을 당시, 이 결과는 해양의 순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큰 패러다임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모델에서 예측한 기후 시스템 ‘다중 평형(해양 순환의 여러 상태가 함께 존재하는)’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찾기 위해 과학자들은 많은 노력을 했다. 과학계는 1993년 그린란드의 빙하로부터 두 상태(on-off states) 사이에 온도가 돌발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밝혀냈다. 추후 해양 고기후 자료를 이용하여, 단스가드 오슈가 이벤트(Dansgaard-Oeschger events, D-O events)와 대서양 해양 대순환 작용이 비슷하게 작용됨을 알아냈고, 이는 슈쿠로 교수의 컴퓨터 모델링을 통해 다시 한 번 검증됐다.
아직 풀리지 않은 핵심 질문들기후 물리학의 두 선구자에게 노벨상을 수여하며, 노벨상위원회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기후 연구는 물리학의 한 부분이며, 다른 세부 분야들과 같이 단단한 기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지구온난화는 이산화탄소 분자의 양자역학적 특성으로 공기 중의 적외선 흡수가 변화하면서 발생하는 지구의 복사 균형 변화에 의해 유발된다. 두 과학자가 선구적인 발견을 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기후 연구의 핵심 질문들에 대한 의문점은 풀리지 않고 있다. ‘주요 빙상과 지구 해수면은 지구 온난화에 어떻게 반응할까?’, ‘미래에 급격한 기후 변화가 일어날까?’, ‘증가하는 기후 스트레스 속에서 지구 생명체는 어떻게 반응 할까?’, ‘우리가 자초한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셀만 연구원과 슈쿠로 교수와 같은 거물급 연구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부산대학교에 위치한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 연구단의 과학자들은 지구의 미래 거주 가능성에 대한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 중 하나인 ‘알레프(Aleph)’를 이용해 기후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글 | 악셀 팀머만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 연구단 단장 번역 | 서유정 IBS 기후물리 연구단 사이언스커뮤니케이터 본 글의 저작권은 기초과학연구원에 있습니다. 공유 및 재사용 시에는 출처를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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