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을 거부하는 뇌 : 모성애는 당연한 걸까?

최근 신문 1면에 너무나 처절한 사진이 실렸다. 아프간 주민 2명이 공항 철조망 너머 미군에게 아기를 건네는 장면이다. 아버지는 아이를 높이 들어 올리고 어머니는 온 힘을 다하여 뒷받침하고 있다. 탈레반의 무자비한 처형으로부터 자식만이라도 살리려는 부모의 절박함이 절절히 묻어나온다.

이처럼 세상에는 자식을 위하여 희생하는 부모, 특히‘어머니’의 이야기가 많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서 아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킴,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에서 게이샤 초초산의 희생이 그렇다. 모성애는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를 혼동과 분노로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세 살 딸을 사흘 동안 홀로 방치하여 숨지게 한 30대 엄마의 아동학대 살해사건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일들이 그리 희귀하지 않다는 것이다.

동물에게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본능은 생존과 번식이다. 본능이란 본래 타고 난 기능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오로지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확정되는 것일까? 아니다. 인간의 모든 기능은 유전자와 환경의 합작품이다. 태아는 수정란 착상 순간부터 엄마를 통해 모든 환경 정보를 고스란히 전달받는다. 이는 유전자 설계와 더불어 태아 발달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임신 중 식습관, 몸가짐, 마음가짐을 바르게 갖추는 태교가 중요한 까닭이다. 생후 환경도 중요하다. 특히 유아기 환경은 뇌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뇌 회로 형성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뇌 회로의 기능 발현에 따라 이루어진다. 모성애 역시 뇌 회로에 문제가 생기면 무너질 수 있다. 특정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나면 어미생쥐의 새끼 돌봄 행동이 사라진다는 연구가 보고됐다. 임신 중의 극심한 스트레스도 돌봄 행동 저해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비행기 추락에 기체 결함, 기상 이변, 조종사의 실수 등 무수히 많은 원인이 있음과 마찬가지다. 당연하게 생각되던 모성애가 실제로는 복잡한 뇌 회로에 따라 작동함을 알 수 있다.

출산 후 어미 쥐의 뇌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이는 동물 실험을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생쥐 실험에서 새끼들을 여기저기 흩어 놓으면 어미는 이들을 하나하나 입으로 운반하여 둥지로 모아 따뜻하게 품고 젖을 먹인다. 뇌 시상하부의 가장 앞부분에는 ‘내측시삭전야(mPOA)’란 부위가 있다. 이곳에 새끼에 관한 감각 정보들이 모여 들어와 에스트로젠 등의 호르몬과 상호 작용함으로써 새끼 돌봄 명령이 만들어진다. 이는 뇌의 각 부위로 전달되어 새끼 돌봄에 최적화된 뇌 변화와 행동을 유도한다.

사람의 경우도 그렇다. 엄마는 자기 아기의 울음소리에 특별히 민감해진다. 잠든 아기를 침실에 누이고 거실에서 손님들과 웃고 떠들다가도 아기의 미세한 울음소리에 화들짝 놀라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어미 생쥐 뇌의 청각피질에는 신경 가소성 기전에 의하여 새끼의 울음소리에 각별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경세포들이 있다고 알려졌다. 이들 신경세포의 변화에는 ‘옥시토신’ 호르몬의 작용이 필수적이다. 옥시토신은 출산과 모유 분비를 돕고 유대감, 신뢰, 배려심 등에 관여해 ‘사랑 호르몬'이라고도 불린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신경세포의 변화가 교육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처녀 생쥐를 어미 생쥐와 함께 살게 하면, 새끼 돌봄 행동을 배운다. 이는 투명 칸막이 너머 관찰만으로도 가능하다. 돌봄 행동을 배운 처녀 생쥐의 청각피질에도 새끼의 울음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포들이 생긴다. 고모의 조카 사랑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인간은 본능을 거부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번식과 자기 생존 본능을 거부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UN의 최근 보고에 의하면 한국의 출산율은 198개국 중 꼴찌인 반면 자살률은 OECD 1위다. 유전자 변이가 그리 빠르게 일어날 수는 없으니, 이는 우리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냥 넘겨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