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대유행 속 떠오르는 금속, 구리(Cu) 코로나19 바이러스가 3년째 우리 일상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덕에 특수를 맞은 기업도 있죠. 마스크 산업이나 비대면 서비스업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금속도 코로나19로 특수를 맞은 사실을 아시나요? 바로 동전의 원료로도 쓰이는 원자번호 29번의 구리(Cu)입니다.
구리는 대표적인 항균·항바이러스성 금속입니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구리가 지닌 항균과 항바이러스성이 주목을 받은 거죠. 현재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금속 중 유일하게 구리만을 공중보건위생용 금속으로 승인하고 있으며, 지난 2021년 2월에는 구리 표면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억제에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작년 4월에는 캐나다 워털루대학교 기계공학과 케빈 머슬만 교수팀이 구리의 항바이러스 능력을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연구팀은 구리, 은, 아연 산화물 등 6종의 금속 물질을 얇은 박막 코팅으로 제작해 바이러스에 노출시켰으며, 그 결과 구리와 산화구리의 항바이러스 성질이 가장 뛰어났음을 확인했습니다. 바이러스는 구리에 15분만 노출되어도 처음의 10% 수준으로 검출량이 줄었으며, 1시간 경과 시 기존의 1% 정도까지 낮췄습니다. doi/10.1063/5.0056138 사실 구리의 이러한 항균 항바이러스 능력은 오랜 기록으로도 전해져 왔습니다. 고대 이집트나 페르시아에서는 구리 그릇에 식수를 담아 보관하거나 상처를 소독했으며, 히포크라테스는 다리궤양 치료에 구리를 쓰기도 했다죠. 로마인들도 구리를 공중보건과 치료에 활용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도 흔하게 구리의 항바이러스 활용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진, 엘리베이터를 타면 키보드 덮개 마냥 층간 버튼 위를 덮은 구리 항균 필터가 그 증거가 되어줍니다. 최근엔 마스크 표면에 구리 나노입자를 코팅해 겉면에 묻은 바이러스를 죽이는 항바이러스 마스크도 출시되는 등 구리의 항균·항바이러스 능력은 폭넓게 활약하고 있습니다. 구리뿐만 아니라 나노입자 형태의 금속은 현재 신소재, 센서, 촉매 등 4차 산업혁명 곳곳에서 쓰입니다. 하지만 금속이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하나 있죠. 바로 금속의 적, ‘산화’입니다. 구리 나노입자는 특히 금속 나노입자 중 활용도가 뛰어난 편에 속하지만 쉽게 산화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노화와 산화의 주범 산소(O2) 사람은 80년, 개는 15년…. 생명체는 짧은 성장기를 지나고 나면 이후엔 필히 노화를 거칩니다. 생물에게 평균 수명이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생명체에게만 노화가 있을까요? 무생물의 대표 격인 금속 또한 노화를 합니다. 금속의 노화인 ‘산화’ 현상으로 말이죠.
산화(酸化, oxidation), ‘물질이 산소와 화합하는 현상’. 산화를 말하자면 수소나 산화수 등을 기준으로 한 여러 정의가 있지만, 간단하게는 물질이 산소랑 결합하는 반응입니다. 체내의 미토콘드리아는 호흡으로 들어온 산소와 반응(산화)하며 에너지를 만들고, 노화를 일으키는 활성산소를 소량 발생시킵니다. 산화와는 반대로 산소를 잃는 현상은 환원(還元)이라 하고요. 금속도 공기 중에 노출되면 마찬가지로 공기 속 산소와 만나면서 산화가 일어납니다. 산소 원자는 금속 표면에서 금속 원자가 지닌 전자를 가져가며 금속 원자와 결합합니다. 쉽게 말해 금속이 부식되는 거죠. 이렇게 순수한 금속이 산소와 결합하며 산화되면 표면에 녹(금속산화물)이 생기는데, 이때 부식된 금속은 원래의 성질을 잃습니다.
금속과 금속산화물은 전혀 다른 물질입니다. 녹이 슬면 표면의 광택이 사라지거나 전기전도성을 잃는 등 원래 지녔던 성질과 다른 성질을 띠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산화가 심할 경우 금속을 원래 용도로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구리 또한 오랜 시간 공기에 노출되면 항균·항바이러스 능력이 서서히 떨어집니다. 바이러스도 막는 구리 입자지만 산화는 막을 수 없는 거죠. 과거 진시황의 불로초부터 현대의 안티에이징까지, 사람의 노화를 막기 위한 연구가 끝없이 이어져 온 것처럼 금속의 산화를 막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도 지속되어 왔습니다. 금속 표면 도금법이나 음극화 보호 등이 그 대안으로 나왔죠. 하지만 어떠한 방법도 금속 산화의 근원을 완벽히 막을 순 없었습니다. * 구리 나노입자의 백신이 되어줄 기술, ‘전자 코팅’ 결론은 산소를 막아야 합니다. 금속은 생명체와 다르게 산화의 역반응인 환원이 가능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사전에 산화를 차단하는 방법입니다. 환원이 코로나19 확진 이후 맞는 치료제라면, 산화를 사전에 차단하는 건 금속이 백신을 맞는 셈이겠죠.
이를 위한 묘책이 지난 2월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구조물리 연구단에서 등장했습니다. 연구단 소속 김성웅 연구위원(성균관대학교 에너지과학과 교수)이 전자를 씌워 산소 접촉을 막아 공기 중에서도 산화되지 않는 구리 나노입자를 공개한 것입니다. 어떠한 표면처리 없이도 공기 중에서 산화되지 않는 구리 나노입자였습니다. 김 위원의 연구 내용은 나노 분야에서 최고 권위지 중 한 곳인 ‘네이쳐 나노테크놀로지’에 2월 11일 게재됐습니다.
연구팀은 금속에 페인트를 칠하듯 구리 입자에 다량의 전자를 덧씌우는 방안을 떠올렸습니다. 말 그대로 구리 입자 겉에 ‘전자 코트’를 입힌 거죠. 그 결과 구리 입자 표면을 덮은 전자만이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했으며, 구리 나노입자는 산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전자 망토를 씌운 구리 나노입자를 수개월 이상 공기 중에 노출시켜도 전혀 산화되지 않았죠. 항바이러스성 등 구리의 성질을 온전히 유지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는 수년간 연구해온 신소재 전자화물을 이용한 결과였습니다. 많은 전자를 지닌 전자화물 위에 구리 나노입자를 가져다 놓으면, 전자화물에 있던 다량의 전자가 구리 나노입자로 전달되어 구리 나노입자의 표면에 과잉의 전자가 씌워집니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을 응용하여 산화되지 않는 은 나노입자 합성에도 성공했죠.
연구를 이끈 김성웅 연구위원은 “다른 물질로 표면을 덮는 등의 표면처리 없이도 공기 중에 장시간 산화되지 않는 현상”이라며 “이번에 개발한 구리 나노입자는 우수한 살균능력을 오래 지속할 수 있어 K-방역에 크게 기여할 것이며 나노소재 합성 및 응용 연구에도 문을 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연구팀은 나아가 ‘전자 코팅’ 구리 나노입자를 대량 생산할 용액공정도 개발했습니다. 기술 개발의 다음 단계는 양산입니다. 아무리 좋은 물질이라도 극소량밖에 만들 수 없다면 가치와 효율이 떨어지겠죠. 용액공정이란 구리 금속 이온이 녹아있는 액체에 전자화물을 넣고 반응시키며 구리 나노입자를 다량으로 생산하는 방법입니다. 이는 구리뿐만 아니라 다른 금속 나노입자 합성에도 적용 가능해 앞으로의 나노입자 생산 기술에 응용할 수 있을 거란 전망입니다.
이번 연구는 기존의 금속 산화 반응의 개념을 다시 쓴 연구였습니다. 즉, 모두가 늙고 산화된다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기술인 거죠. 이는 우리나라의 주요 미래 산업 중 하나인 2차전지에 활용도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2차전지의 중요한 부품인 동박 및 알루미늄박 생산에 이번 기술을 적용하면, 금속성은 유지하되 더 얇은 소재를 만들 수 있어 기술 경쟁력을 한층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죠. 전자로 백신을 맞은 구리 나노입자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보다 효과적으로 막아준다면, 길고 긴 팬데믹 종식에도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전자 코트를 입은 구리 나노입자가 일상과 산업에 널리 쓰이게 되며 활짝 웃는 미소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소망을 담아 봅니다. 본 콘텐츠는 IBS 공식 포스트에 게재되며, https://post.naver.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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